이 많은 '미친 여자'들을 어떻게 모았냐고요?
[책이 나왔습니다] 에세이 <나를 키운 여자들>
모임 자리에서 '인생 최고의 일탈이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쓰리고(학사 경고 3번), 해외에서 대마초 피운 경험 등이 나오는데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해본 일탈이 뭐지? 일탈을 해본 적 있나?
학창 시절 친구들이 지어준 내 별명은 '사임당 홍씨'였다. 선생님 말을 잘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열심히 공부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스물두 살에 만난 남자와 8년 연애 후 결혼했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 9년을 다녔다.
살면서 마감을 어겨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마감을 미리 해둬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에서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진땀이 났다. 허둥지둥하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까 신경 쓰였다. 반듯하고 단정하게, 나만의 선을 정해놓고 선을 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나도 모르게 목과 어깨에 늘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모범생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 안에는 자주 '미친년'이 꿈틀댔다. 결혼 후 엄마가 되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미친년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이건 아니지 않냐'고, '이렇게는 못 산다'고. 엄마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 앞에서 나는 자주 억울하고 화가 났다. 뭐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3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지난 4년간 3번의 퇴사를 했다. 이직을 하고 창업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나를 증명하고 나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었다. 나를 잃게 될까 두려웠다. 번아웃 때문에 노트북 여는 것조차 힘들어져서야 나는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서른아홉에 백수가 됐다. 내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일탈이었다. 1년간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선물하기로 했다.
<나를 키운 여자들>(느린서재)은 안식년 기간 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나를 키운 여자들'에 그동안 썼던 글을 더해서 새롭게 엮은 책이다. 질풍 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지난 4년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싶을 때마다 꺼내봤던 32편의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의 서사를 통해 내 안의 진짜 욕망을 들여다보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일에 대해, 관계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엄마로, 딸로, 아내로 살아가는 고민에 대해 썼다.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나만 미친 게 아니었어
세상이 정해둔 기준에 맞춰 대학에 가고, 직장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으면 저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어찌 된 일인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엄마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여성 노동자로, 여성 시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지러운 날이면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봤다. 거기에는 나처럼 어딘가 이상하고 뒤틀린 미친 여자들이 있었다.
남편의 죽음이 슬퍼 회사 모든 직원들과 잠을 잤다는 여자(<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제자의 글쓰기 재능을 탐내다 다섯 살 제자를 납치한 유치원 교사(<나의 작은 시인에게>),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회사 컴퓨터를 초기화해버린 인턴(<아워바디>), 밤마다 술 취한 척 연기하며 성범죄 가해 남성을 응징하는 여자(<프라미싱 영 우먼>), 어린 남자와 불륜에 빠져 고객 돈을 횡령한 은행원(<종이달>), 커리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미스 슬로운>), 두 아이 대신 자신의 욕망을 선택한 엄마(<로스트 도터>)...
<나를 키운 여자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조금씩 미쳐 있는 인물들이다. 어떤 여자들은 실존 인물이라면 언론 사회면 헤드라인에 등장하고도 남는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고 저마다 결함을 갖고 있으며 그 결함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의 삶마저 망가뜨리기도 한다. 네 글자로 '지팔지꼰', 지 팔자를 지가 꼬는 여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안다. 피가 철철 흐르고, 남들에게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른다. 처음에는 '저 여자, 대체 왜 저래?'라며 팔짱을 끼고 영화를 보던 나는 어느 순간 두 손을 꼭 쥐고 영화와 드라마 속 여자들을 응원하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처럼 조신해 보이던 여자들이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책을 낸 후, '어떻게 이렇게 많은 미친 여자들을 모으게 됐나'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답했다. 신문기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저 '저 여자 뭐야'라고 치부될 여자들의 서사와 맥락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결국은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쟤 뭐야' 소리를 듣는 여자였다. 안정적인 직장 다니며 애나 잘 키우지, 회사 그만두고 계속 일을 벌이고 번아웃을 겪고 결국 일을 그만두고… 누군가는 내게 욕심이 너무 많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게 팔자가 좋다고 했다. 남들의 시선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나를 가장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영화 속 여자들의 결말은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다. 직장을 잃고, 이혼을 하고, 감옥에 가고, 평생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 미쳐본 여자들의 이야기는 내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줬다. 안온한 세계를 제 손으로 부수고 나오는 여자들, 눈을 크게 똑바로 뜨고 싸우는 여자들, 경계를 넘어 끝까지 가보는 여자들, 그렇게 해서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된 여자들의 서사를 보며 생각했다. '아, 나만 미친 게 아니었구나', '조금 더 미친 채로 살아도 괜찮겠구나'.
내게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
언젠가 나의 번아웃 경험담을 나눈 적 있다. '내가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많은 여자들이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 줬다. 재밌는 것은 내 이야기에 유독 격하게 공감해 준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처럼 반듯하고 단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너무 많은 여자들이 지나치게 애쓰며 살아가고 있구나. 더 잘하려고, 욕먹지 않으려고, 더 완벽해 지려고.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똑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며 '저 여자는 왜 저랬을까', '저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헤아리다 보면 자연스레 내 주변에 있는, 내 삶에 머무른 적 있는 여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도 저런 심정이었겠구나', '그래서 그랬겠구나' 뒤늦은 공감과 후회, 고마움이 밀려왔다. 우리는 픽션을 통해 타인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 나만 가득했던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우주를 상상할 수 있다. 32개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 덕분에 내 안의 공고했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오랫동안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며 살았지만 이 책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도 작품 속 여자들처럼 뼛속까지 솔직하고 싶었다. 성찰 없는 솔직함은 끔찍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너무 안쓰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은 채 똑바로 바라보려 했다. 잘 됐는지 모르겠다.
추천사를 쓴 박초롱 작가(<어른이 되면 단골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 저자)는 "영화 속 여자들 못지않게, 대담하리만큼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 역시 미친 여자의 서사 속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도 당신의 뒤틀림에 대해 고백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정말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내게 어깨를 빌려준 수많은 여자들을 생각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을. 나도 누군가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나는 나 혼자 노력해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자들이 다른 누군가가 되려 애쓰지 않는 세상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줘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 교정을 끝낸 후, 편집자님은 메일에 이런 문장을 썼다. "많은 여자들이 자기 안의 미친년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짐작하겠지만 역시나 편집자님도 모범생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지어준 내 별명은 '사임당 홍씨'였다. 선생님 말을 잘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열심히 공부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스물두 살에 만난 남자와 8년 연애 후 결혼했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 9년을 다녔다.
모범생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 안에는 자주 '미친년'이 꿈틀댔다. 결혼 후 엄마가 되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미친년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이건 아니지 않냐'고, '이렇게는 못 산다'고. 엄마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 앞에서 나는 자주 억울하고 화가 났다. 뭐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3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지난 4년간 3번의 퇴사를 했다. 이직을 하고 창업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나를 증명하고 나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었다. 나를 잃게 될까 두려웠다. 번아웃 때문에 노트북 여는 것조차 힘들어져서야 나는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서른아홉에 백수가 됐다. 내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일탈이었다. 1년간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선물하기로 했다.
<나를 키운 여자들>(느린서재)은 안식년 기간 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나를 키운 여자들'에 그동안 썼던 글을 더해서 새롭게 엮은 책이다. 질풍 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지난 4년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싶을 때마다 꺼내봤던 32편의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의 서사를 통해 내 안의 진짜 욕망을 들여다보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일에 대해, 관계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엄마로, 딸로, 아내로 살아가는 고민에 대해 썼다.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나만 미친 게 아니었어
▲ <나를 키운 여자들>(느린서재) ⓒ 느린서재
"좀처럼 사랑하기 힘들어 보이는 뒤틀린 여성 캐릭터를 애정한다.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 <나를 키운 여자들> p. 35
세상이 정해둔 기준에 맞춰 대학에 가고, 직장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으면 저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어찌 된 일인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엄마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여성 노동자로, 여성 시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지러운 날이면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봤다. 거기에는 나처럼 어딘가 이상하고 뒤틀린 미친 여자들이 있었다.
남편의 죽음이 슬퍼 회사 모든 직원들과 잠을 잤다는 여자(<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제자의 글쓰기 재능을 탐내다 다섯 살 제자를 납치한 유치원 교사(<나의 작은 시인에게>),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회사 컴퓨터를 초기화해버린 인턴(<아워바디>), 밤마다 술 취한 척 연기하며 성범죄 가해 남성을 응징하는 여자(<프라미싱 영 우먼>), 어린 남자와 불륜에 빠져 고객 돈을 횡령한 은행원(<종이달>), 커리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미스 슬로운>), 두 아이 대신 자신의 욕망을 선택한 엄마(<로스트 도터>)...
<나를 키운 여자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조금씩 미쳐 있는 인물들이다. 어떤 여자들은 실존 인물이라면 언론 사회면 헤드라인에 등장하고도 남는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고 저마다 결함을 갖고 있으며 그 결함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의 삶마저 망가뜨리기도 한다. 네 글자로 '지팔지꼰', 지 팔자를 지가 꼬는 여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안다. 피가 철철 흐르고, 남들에게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른다. 처음에는 '저 여자, 대체 왜 저래?'라며 팔짱을 끼고 영화를 보던 나는 어느 순간 두 손을 꼭 쥐고 영화와 드라마 속 여자들을 응원하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처럼 조신해 보이던 여자들이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책을 낸 후, '어떻게 이렇게 많은 미친 여자들을 모으게 됐나'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답했다. 신문기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저 '저 여자 뭐야'라고 치부될 여자들의 서사와 맥락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결국은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쟤 뭐야' 소리를 듣는 여자였다. 안정적인 직장 다니며 애나 잘 키우지, 회사 그만두고 계속 일을 벌이고 번아웃을 겪고 결국 일을 그만두고… 누군가는 내게 욕심이 너무 많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게 팔자가 좋다고 했다. 남들의 시선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나를 가장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영화 속 여자들의 결말은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다. 직장을 잃고, 이혼을 하고, 감옥에 가고, 평생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대로 미쳐본 여자들의 이야기는 내게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줬다. 안온한 세계를 제 손으로 부수고 나오는 여자들, 눈을 크게 똑바로 뜨고 싸우는 여자들, 경계를 넘어 끝까지 가보는 여자들, 그렇게 해서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된 여자들의 서사를 보며 생각했다. '아, 나만 미친 게 아니었구나', '조금 더 미친 채로 살아도 괜찮겠구나'.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나 지금껏 머물던 안온한 세계를 부수고 나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 - <나를 키운 여자들> p.100
내게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
언젠가 나의 번아웃 경험담을 나눈 적 있다. '내가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많은 여자들이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 줬다. 재밌는 것은 내 이야기에 유독 격하게 공감해 준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처럼 반듯하고 단정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너무 많은 여자들이 지나치게 애쓰며 살아가고 있구나. 더 잘하려고, 욕먹지 않으려고, 더 완벽해 지려고.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똑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며 '저 여자는 왜 저랬을까', '저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헤아리다 보면 자연스레 내 주변에 있는, 내 삶에 머무른 적 있는 여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도 저런 심정이었겠구나', '그래서 그랬겠구나' 뒤늦은 공감과 후회, 고마움이 밀려왔다. 우리는 픽션을 통해 타인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 나만 가득했던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우주를 상상할 수 있다. 32개 작품 속 여성 캐릭터들 덕분에 내 안의 공고했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오랫동안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며 살았지만 이 책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도 작품 속 여자들처럼 뼛속까지 솔직하고 싶었다. 성찰 없는 솔직함은 끔찍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너무 안쓰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은 채 똑바로 바라보려 했다. 잘 됐는지 모르겠다.
추천사를 쓴 박초롱 작가(<어른이 되면 단골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 저자)는 "영화 속 여자들 못지않게, 대담하리만큼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 역시 미친 여자의 서사 속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도 당신의 뒤틀림에 대해 고백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정말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내게 어깨를 빌려준 수많은 여자들을 생각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을. 나도 누군가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나는 나 혼자 노력해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자들이 다른 누군가가 되려 애쓰지 않는 세상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줘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 교정을 끝낸 후, 편집자님은 메일에 이런 문장을 썼다. "많은 여자들이 자기 안의 미친년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짐작하겠지만 역시나 편집자님도 모범생의 얼굴을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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