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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한일 안보협력... '이것' 먼저 해결돼야 한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역사문제 청산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협력'은 요원해

등록|2023.01.26 14:09 수정|2023.01.26 14:09
한·일 군사협력을 향한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내각의 움직임도 상당하지만, 이를 적극 촉구하는 미국의 움직임도 끊임없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장관이 대북 경고를 발신하고 한미일 협력을 공고히 하고자 방한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미 인도태평양 육군사령부가 자위대 육상막료장을 포함시키는 한·미·일 육군총장회의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24일 나왔다.

3국 합참의장 회의는 매년 한두 번 열린다. 이에 더해 3국 각군 총장들의 회동도 잦아지고 있다. 작년 8월에는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호주 국제참모총장 회의에서 미·일·호주 회담 자리에 참석했다. 11월에는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이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에서 사카이 료 해상막료장과 만났다. 이렇게 한·일 군수뇌부의 만남이 많아지는 속에서 미국이 3국 총장회의까지 추진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B-29 폭격기 및 전폭기 300대를 동원해 신의주와 평양 등을 공습한 1951년 1월 9일로부터 72주년이 된 이달 9일, 유엔군사령부가 그날의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사진 중 하나는 폭격기 3대에서 새떼처럼 떨어지는 폭탄들을 보여줬다.

이날의 사진 공개는 북한에 경고하고 한국을 안심시키려는 뜻을 담은 동시에, 한국 안보와 일본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는 뜻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폭격 사진 바로 다음 사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 본문에 인용된 사진. ⓒ 유엔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가 올린 건 미군 소령인 해리 베일리(Harry Bailey)가 한반도 및 일본열도가 그려진 대형 지도 앞에서 신의주 폭격에 관해 브리핑하는 사진이다. 베일리 소령이 쥔 지휘봉은 지도 속의 폭격 대상인 신의주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지도에서는 직선을 통해 한반도와 연결된 일본 요코다 공군기지가 강조돼 있다. 요코다 기지에서 출격한 폭격기가 신의주 등지에 가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에 붙은 설명문은 "해리 베일리 소령이 잦은 출격 목표인 북한 신의주를 가리키고 있다"라며 "지도 오른쪽에는 출격 지점인 일본 도쿄 인근의 요코다 공군기지를 표시하는 붉은 점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 안보와 일본의 연관성을 보여주고자 이런 설명을 달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쉽지 않은 한일 안보협력

한국과 일본는 군사적 목표에서부터 차이점을 갖고 있다. 한국군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과 일본군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다르다. 이는 지난달 16일 채택된 일본의 <국가안전보장전략>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외교·안보의 최상위 지침인 이 문서는 "현재 중국의 대외적인 자세나 군사동향 등은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 사항"이라고 한 뒤 "이제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뒤 문단 두 개를 건너뛰어 "북한의 군사동향은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서 종전보다 한층 더 중대하면서도 임박한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최대의 도전, 북한은 종전보다 중대해진 위협이라고 평한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서열 구도는 미국-일본-한국의 순서로 돼 있다. 한국보다 상위에 있는 일본이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한일 안보협력이 대중국 견제에도 활용될 여지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한일 안보협력이 대중국 견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남북관계를 완충해줄 중국의 역할이 감소하리라는 전망을 갖게 만든다. 한일 안보협력이 한국과 중국의 대립 가능성을 높이고 한반도 불안정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역사문제 미해결'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협력관계가 한국에 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고 볼 수도 있다.

불안한 시선들은 이 관계를 적극 주선하는 미국 쪽에서도 나오고 있다. 합중국 해군연구소(U.S. Naval Institute)가 운영하는 < USNI 뉴스 >가 지난 13일 보도한 '길데이 해참총장, 남한과 일본 군사협력 확대는 필수(CNO Gilday: Expanding Military Cooperation Between South Korea, Japan 'A Necessity')'라는 기사에 따르면, 마이크 길데이 해군참모총장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두고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면서도 이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기사는 "길데이는 두 나라 간에는 계획된 훈련을 방해하거나 지속적인 정보 공유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역사적인 고충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했다"라며 "일본과 한국은 이 문제들에 대해 '서로의 눈을 찌르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Tokyo and Seoul have "to get beyond poking each other in the eye" over these issues)라고 전했다. 강제징용(강제동원)이나 '위안부' 같은 역사문제가 한·일 쌍방의 눈을 찔러 '필수품'인 한미일 안보협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다니엘 스나이더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한·일 갈등은 세월로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021년 7월 9일 발간한 < Debating Japan >이라는 뉴스레터에서 "일본과 남한 사이의 현재 긴장은 경쟁, 전쟁과 식민지배라는 오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며 "시간의 흐름은 역사 기억의 힘을 거의 감소시키지 못했다"고 평했다. 그런 뒤 "과거의 짐은 쉽게 극복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전략부서, 한미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 들어간 캐서린 보토는 재단 홈페이지에 실린 2020년 3월 18일자 기고문 '합중국-대한민국-일본 삼각 상호운용성의 장애물 극복(Overcoming Obstacles to Trilateral U.S.-ROK-Japan Interoperability)'에서 "한국과 일본의 서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긴밀한 3자 협력을 가로막는다"라며 한·일 역사문제 등을 거론한 뒤 "단순한 불일치 이상으로, 이런 문제들은 두 나라가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안보 파트너로 바라보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한일관계를 안정시키려면
 

▲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지난 2022년 12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 선언을 규탄하며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와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윤석열 정부가 역사 문제를 풀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윤 정부 출범 이후에 역사로 인한 갈등은 오히려 더욱 부각됐다. 이는 한·일 갈등이 "단순한 불일치 이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이 손잡기를 가장 열렬히 바라는 제3국은 미국이다. 그런 미국 쪽에서 볼 때도 한일 안보협력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나타난다. 한일관계의 위험성이 자국 내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도. 미국 정부는 불안정성을 제거하기보다는 안보협력 확대만 서두르고 있다. 이 역시 한일 안보협력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다.

한일관계를 올바로 안정시키는 길은 '과거의 짐'을 제대로 정리한 상태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인들의 상처를 외면한 채 한국보다는 미·일의 이익에 부합하는 안보협력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한일관계에서는 덜커덩 소리가 더 많이 날 수밖에 없고 미국이 추구하는 '필수품'의 수명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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