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에게 눈을 치우는 일은 남을 돌보는 동시에 당신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 픽사베이
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눈 오는 낭만보다는 미끄러운 길이 걱정되고 느려진 교통편이 불편한 나이가 됐다. 특히나 오늘처럼 매서운 추위에 쏟아지는 눈은 더더욱 그렇다. 블라인드를 걷으며 밤새 눈이 얼마나 왔는지 가늠도 안되는 사이 하늘에서 슬로우모션으로 또 눈이 떨어진다. 맘이 급해진다. 전화를 해야겠다.
친정엄마와 아버지는 우리집에서 멀지않은 주택가에 사신다. 내가 시집오기 전부터 그동네 살았고 주택살이 n년차 평생을 주택에 사셨으니 아파트로 옮기면 좋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도 해봤지만 소용없다.
그래도 자식된 입장에서는 연세가 있으시니 되도록 걱정 안 되게 안전하게 사셨으면 좋겠는데 어림도 없다. 하도 싫다하시니 이제는 체념한 상태다. 그런데 이런 눈이 오는 날은 특히나 걱정이다. 눈이 오니 외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잔소리를 좀 해둬야 하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침부터 마음이 부산스럽다. '가봐야하나? 왜 전화를 안받지?' 시간차를 두고 여러 번의 전화에 답이 없다. 집히는 부분이 있긴하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데 설마 싶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의 아침상만 차려놓고 가봐야겠다 마음을 먹은 사이 벨이 울린다.
"전화를 전화를 왜..." 화가 나지만 화를 다 쏟아낼순없어서 말투가 경직된다. "전화했었구나." 뭐했냐고 왜 두 분 다 전화를 안받냐고 다그치는데 엄마의 대답은 천연덕스럽다.
"눈 치웠지 대문 앞 쓸었지, 앞집이 다해도 그래도 내 집 앞은 좀 치워놔야지."
"날 부르지 그랬어 눈맞음서 뭐하러 아침부터."
엄마의 대답인 즉슨 그렇다. 살살하면 괜찮다, 많이도 안 치운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 한 마디. "이렇게라도 해야 동네사람하고 말을 섞지."
생각해보니 어린시절 눈치우던 우리집 앞 골목길에선 앞집 옆집 할 것 없이 다 나와서 같이 치웠고 그 옆에서 눈을 굴리던 나도 있었다. 그러다보면 옆집에 누가 안 나왔는지 누가 아픈지 누가 아이를 낳았는지도 다 알았다. 말섞으면서 살아야지 하는 그 소리는 아마도 그런 뜻인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고독사가 빈번한 요즘 이런 눈치우는 골목이 새삼 따뜻하게 느껴진다. 시골살이만 이웃사촌이 있겠는가. 이런 도심언저리 주택살이도 마음만 먹으면 이웃사촌이 되는 거다. 너무 적나라하지만 생존여부를 물어주는 사이 그런 게 이웃사촌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눈 안 치워서 좋다, 구경만 해도 좋다 싶었는데 부모님 노년의 적적하지 않은 삶에는 이런 눈쓸기도 한 몫 하는 모양이다. 새삼 부모님이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아 안심이다. 하지만 전화 끝에 늘어지는 잔소리는 안 할 수 없었다.
"다음엔 내가 일찍 갈게요. 그리고 눈 치우러 나갈 때 옷은 여러 겹 입으셔야 해요. 집에 들어가면 따뜻한 차도 잊지 말고 드시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거, 눈 치우러 나갈 때 전화기 좀 갖고 나가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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