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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크레디트가 오르기 전 이렇게 마음먹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440] <바빌론>

등록|2023.01.27 15:57 수정|2023.01.27 15:57
오랜만이었다. 영화를 보며 감탄을 거듭한 것은. 그래, 영화를 보는 이유가 이런 것이었지! 하고 감탄하게 되는 장면이 여럿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이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영화 자체가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찬미이며 헌사와도 같았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이 영화의 단평을 무어라 적을지를 고민하였다. 그로부터 엔딩크레디트가 모두 오르기 전에 나는 이렇게 적기로 마음먹었다.

'순수한 여러 감정들, 말하자면 분노, 갈망, 열정, 우정, 상실, 열패감, 환멸, 환희, 절망이 그대로 담겼다. 그리하여 아름답다. 이 영화의 수많은 실패에도 이런 영화는 다시없음이 분명하다.'
 

바빌론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름다운 영화라는 것

말하자면 아름다웠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죽고 상하고 고통 받고 실패하는 이야기에 대하여 아름답다는 평을 붙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러나 그건 예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우리네 인생이 또한 그토록 괴로운 것이니. 그 모든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예술의 나아갈 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스스로 그렇게 말하듯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1920년대를 다룬다. 아는 이는 알겠으나 그 시절 할리우드는 그야말로 격번의 시기였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이 무성영화의 전성기를 열었고, 그레타 가르보, 루돌프 발렌티노, 메이 웡 등 1세대 은막스타들이 출현했다. 대공황과 전쟁에도 불구하고 산업은 성장을 거듭해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산업의 주도권을 쥔 시대이기도 했다.

이후 1930년대에 들어서며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일대 혁신이 이루어진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성공을 거듭하며 음향시스템도 급격하게 발전한다. 이 시기는 상당수 배우에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 전까진 전혀 중요하지 않던 발음이며 발성이 배우의 역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절반을 훌쩍 넘는 배우들이 자리를 잃었고 그만큼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바빌론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급변의 시대, 사라지고 떠오르는 것들

<바빌론>이 다루는 건 바로 이 시대다. 영화는 크게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처음 모습을 보이는 건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 분)다. 어느 부잣집 저택에서 있을 파티를 준비하는 매니는 메인이벤트에 쓰일 코끼리를 옮기려 분주하다. 사실상 말단 일꾼으로 고용된 신세지만 목적은 따로 있다. 파티를 주최한 건 유명한 영화제작자이고 당대 최고 배우인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분) 같은 명사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들 눈에 들어서 영화산업에 발을 들이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이끈다.

그날 밤, 매니의 눈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초대장도 없이 지나간 배우 이름을 들이미는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분)를 매니가 돕는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막무가내로 날뛰는 그녀에게 매니는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가 제가 스타로 태어났다 말하자 매니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언젠가는 그녀와 매니가 영화현장에서 만날 수도 있으리란 기대를 품어보면서.

기회는 빨리 찾아온다. 제작자의 눈에 든 넬리는 그날 밤 바로 캐스팅되고 급기야 반짝스타로 떠오른다. 매니 역시 잭의 수행비서 쯤으로 역할을 얻게 된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급진전된다.
 

바빌론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예술에 대한 데미언 셔젤의 헌사

영화는 갈망에 대한 이야기이자 열정과 실패, 환희와 절망, 분노와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주 많은 것들이 이뤄지고 또 무너진다. 누군가는 떠오르고 누군가는 사라진다. 영화 속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언론인 엘리노어 세인트(진 스마트 분)는 몰락해버린 배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끝났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냥 시대가 변한 거지."라고.

시대는 잔혹하고 아무리 발빠르게 변화하려 해도 누군가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시대가 변화했을 뿐.

<바빌론>은 변해가는 모든 것 사이에서, 그럼에도 변치 않는 하나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것은 무성영화가 주름잡던 1920년대와 유성영화의 시대가 열린 1930년대, 칼라영화가 도입되고 바야흐로 전성기가 열린 1950년대를 거쳐 CG와 3D, 아이맥스, 전 세계가 환호하는 찬란한 영화산업의 오늘까지 이어진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며, 감동시키고, 그로부터 움직여내는 종합예술에 대한 찬사가 <바빌론>이 보이고자 한 단 한 가지가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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