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군' 쇼군, 이제는 역사속으로…
지난 UFC 283대회 마지막으로 파이터 인생 은퇴
▲ 마우리시오 쇼군은 이호르 포테리아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20년넘게 뛰어온 격투무대를 은퇴했다.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대장군' 마우리시오 쇼군(41‧브라질)은 '불꽃하이킥' 미르코 크로캅, '얼음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도끼살인마' 반더레이 실바 등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해외 파이터 중 한 명이다. 국내에 격투기 열풍이 불었던 프라이드 시절 맹활약했던 선수였기 때문으로 그러한 친근감을 바탕으로 UFC로 무대를 옮겨서도 많은 응원을 받았다.
격투기 자체의 인프라는 현재가 더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상당수 국내 팬들은 동양 정서가 가득했던 '낭만의 시절' 프라이드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쇼군까지 은퇴함에 따라 더이상 프라이드색이 강한 선수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많은 팬들이 쇼군의 은퇴를 더더욱 가슴 아파하는 이유다.
통산 27승 14패 1무의 통산 성적은 쇼군이 남긴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커리어 초반 13경기에서 1패만을 허용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말년에 패수가 많아지면서 보여준 것에 비해 아쉽게 됐다. 가장 최근에는 3연패를 당하며 승수를 쌓지 못했다. 하지만 27승 중 21승을 넉아웃(78%)으로 장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이팅 스타일 자체는 끝까지 화끈했고 그로 인해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았다.
프라이드 간판스타로 우뚝! 화끈했던 젊은 싸움꾼
넘치는 파이팅을 바탕으로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전면전을 즐기는 쇼군은 '악의 소굴'로 불리던 슈트복세 아카데미 출신답게 근성과 공격 본능 만큼은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기술적으로 우월한 선수마저 투지와 체력을 앞세워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뜻 보면 투박해보였지만 누구보다도 싸움꾼 기질이 넘쳐 흘렀다.
프라이드 시절 쇼군은 실질적인 동 체급 일인자였다. 프라이드에 막 입성했을 때만 해도 채 여물지 않은 미완의 대기라는 평가가 높았지만, 그러한 혹평을 비웃듯 퀸튼 잭슨,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 히카르도 아로나 등 각기 파이팅 스타일이 다른 정상급 강자들을 연파했다. 자존심 강한 퀸튼이 사커킥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손사레를 쳤던 장면에서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후에도 퀸튼은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신들을 쇼군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선수인지 모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쇼군은 당시 그랑프리 챔피언을 지낸바있는데 의형제처럼 지냈던 반더레이 실바가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 아니었다면 미들급(라이트헤비급)벨트마저 가져갔을 가능성이 크다.
쇼군의 최대 장점은 빼어난 적응력이다. 막 전성기에 들어갔던 프라이드 시절 그는 타격과 그라운드 어느 쪽에서도 정상급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웠다. 오히려 타격의 경우, 유도가 출신인 나카무라 카즈히로에게도 펀치 대결에서 밀리며 물주먹이라는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쇼군은 상대를 이기는 법을 알았고 해당 단체 룰을 누구보다 잘 활용한 선수였다.
▲ 은퇴를 선언한 '대장군' 마우리시오 쇼군 ⓒ UFC
타격, 그래플링, 클린치 등 상대의 약한 부분을 콕콕 찍어 공략하거나 기세와 체력으로 잡아먹었다. 최근 UFC 선수들처럼 미리 전략적으로 꼼꼼하게 플랜을 짜서 실행에 옮긴다기보다는 경기 중 본능적으로 승리 메뉴얼을 가동하는 느낌이 짙었다. 마치 한 마리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같았다.
더불어 그는 MMA 역사상 ´스탬핑 킥´과 ´사커 킥´을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였다.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거나 마무리용으로 쓰기도 했지만 스텝을 묶거나 다음 동작을 위한 페이크 동작으로도 곧잘 활용했다. 일단 상대가 바닥에 등을 대고 눕기만 하면 다양한 레퍼토리로 괴롭히기 일쑤였다. 누운 상태에서 무자비하게 발이 날아드는지라 상대 입장에서는 굉장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인 싸움꾼, 생존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다
그런 쇼군에게도 UFC 진출은 상당한 모험이었다. UFC 룰에서는 스탬핑, 사커킥이 금지된 기술이었던데다 대신 프라이드 출신들에게 생소한 팔꿈치 공격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차, 포떼고 혹까지 달고가는 격으로 무에타이 선수가 복싱 무대에 진출하는 꼴이었다. 이럴 경우 적응을 위한 세심한 전략 변화가 필요했지만 '본능적인 싸움꾼 쇼군이 얼마나 변할수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대다수였다.
훗날 명예의 전당 헌액자 포레스트 그리핀에게 UFC 데뷔전에서 패할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리핀이 자신에게 익숙한 무대에서 우월한 신체조건을 살려 편안하게 경기했던 것과 달리 쇼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쇼군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고 평소의 살기등등했던 눈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쇼군의 적응력은 남달랐다. 장기인 그라운드 타격을 쓸 수 없게 된 쇼군은 타격 강화에 남다른 신경을 쏟았다. 특히, 연타보다는 한 방의 파괴력이 실린 펀치 카운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러한 쇼군의 노력은 금세 결과물로 돌아왔다. 열세를 예상했던 척 리델전에서 깜짝 놀랄 카운터를 꽂으며 TKO승을 따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복싱으로 따지면 인파이터가 슬러거가 된 듯 했다. 이러한 쇼군의 변신은 그리핀과의 2차전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쇼군은 1라운드 초반 너무도 가볍게 그리핀을 펀치로 때려 눕혔다. 마치 '1차전은 내가 룰에 적응하지못해서 그렇다. 너정도는 내 상대가 아니다'라고 시위하는 듯 했다.
료토 마치다와의 일전에서도 쇼군은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잘 알려진대로 마치다는 킥 마스터다. 일정 거리를 두고 킥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능한 선수로, 펀처스타일의 상대들에게는 그야말로 극악의 상성이었다. 실제로 경기가 펼쳐지자 팬과 관계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에타이식으로 가드를 굳건히 한 채 마치다를 상대로 킥 싸움을 벌였고 오히려 우세를 잡아버렸다. 마치다가 거리싸움을 벌이려하면 끊임없는 압박으로 흐름을 깨트려버렸다. 당황한 마치다는 평소처럼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어려웠고 결국 1차전 판정승, 2차전 넉아웃패로 쇼군에게 챔피언벨트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당시까지가 쇼군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오랫동안 경쟁력을 보이기는 했지만 최상위권에서는 내려와야 했다. 존 존스라는 체급 역사상 최고의 괴물에게 완패하며 벨트를 내준 이후 여러 강자들과 승패를 주고받으며 '재미있는 경기를 펼치는 선수'정도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2002년 공식 데뷔전을 치렀던 쇼군은 2023년까지 무려 20년을 넘게 싸워왔다.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많은 팬들의 가슴 속에서 '누구보다도 피가 뜨거웠던 남자'로 살아숨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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