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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 검찰의 무리한 기소... 결말은 비극이었다

[시몬스 킴의 슬기로운 의정생활] 1심 무죄, 항소 기각... 세상 떠난 교사의 명복을 빕니다

등록|2023.05.07 12:17 수정|2023.05.07 12:17
오랜기간 시민단체 활동가와 변호사로 활약하다 도의원이 됐다. 시민단체 출신 변호사라는 다소 이례적인 삶의 경로와 그에 따른 시각으로 경기도를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의정활동 중 마주하는 사안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말]

▲ 보육기관. 사진은 기사 속 사례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 pexels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2021년 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교사는 아동학대 의심을 받고 있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해아동 부모에게 오해라면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그들은 강경했다. 지역 맘카페에 피해 고발 글을 올렸다. 순식간에 아동학대 어린이집으로 낙인찍혔다. 당연히 원아 충원은 끊겼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담임교사와 원장은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됐다. 경찰 출석을 앞두고 담임 교사는 결백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장은 어린이집 문을 닫아야 했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필자가 2022년 6월에 치러진 지방선거 출마를 고민하던 시기 찾아왔었다. 주위에서 필자를 '아동·청소년 사건 전문 변호사'로 소개하며 찾아가 보라 권유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선임하고 싶지 않았다.

필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주로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변호해왔다. 피의자 변호를 두 건 맡은 적은 있었지만, 결백하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한 건은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한 건은 중형이 선고됐다.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필자에게도 큰 상처를 줬다. 더욱이 변론 과정에서 "어떻게 당신이 그런 놈을 변호하느냐"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사건은 맡고 싶지 않았다.

선임을 거절했다. 사실 선거에 대한 고민도 컸다. 이미 맘카페에서 아동학대 사건으로 낙인 찍힌 데다, 담임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지역 사회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선거를 고민하는 처지에서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자칫 '돈만 밝히는 악덕 변호사'로 공격받을 수도 있다.

어떻게 기소했을까... 검찰의 허술한 수사기록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은 "사건 기록이라도 한번 읽어달라"고 했다. 마지 못해 원장이 놓고 간 서류를 훑어봤다. 사건을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검찰에 직원을 보내 사건기록 전체를 복사해 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의 억울함이 느껴졌다. 교사가 죽고 어린이집은 문을 닫은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수사기록은 너무나도 엉성했다. 도대체 검찰이 어떻게 이런 사건을 기소했지 싶을 정도였다. 특히 신체적 폭력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CCTV 동영상은 없고 온통 캡처 사진뿐이었다. 더욱이 진단서나, 하다못해 상처 사진 등 피해를 입증할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결국 필자는 사건을 선임했다.

증인만 6명이 신청됐고 이중 4명에 대한 신문이 이뤄졌다. 재판은 1년 6개월이 넘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핵심적인 증거인 CCTV 동영상 원본이 손상됐다'는 주장을 했다. 대신 10분 단위를 끊어 포렌식한 동영상에 증거능력이 있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10분 단위로 끊긴 동영상은 프레임 분석이 불가능했다. 프레임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동영상 재생 속도를 알 수 없음을 의미했다. 재생 속도에 따라 단순한 움직임도 폭행으로도 보일 수 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지방선거가 있었고 필자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원에 당선됐다. 고민은 더 커졌다. 무죄라고 확신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유죄가 선고된다면, 모든 비난은 내게 쏟아질 것이다. 뻔뻔하게 아동학대 피의자를 변론한, 돈만 밝히는 변호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겁이 났다.

선고날 주루륵 흐른 눈물 그리고 검찰 항소... 결과는
 

▲ 판사봉. ⓒ pexels


'지금이라도 사임할까? 선임료를 돌려주고 성실한 변호사를 소개해 주면 그만이지.'

온갖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위에서도 사임을 권했다. 특히 법률사무소 직원과 동료 변호사는 강력하게 사임을 고민해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사건기록을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2000쪽에 달하는 사건기록을 꼼꼼히 읽었다.

돌아가신 보육교사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이번 사건으로 평생 아끼고 모아 장만한 집 한 채를 투자해 마련한 어린이집을 제 손으로 닫은 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 사임서는 제출하지 못했다. 보육교사와 원장의 억울함도 중요했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진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증인을 신문하고 최후 변론을 했다. 선고기일을 받아놓고 피고인인 원장보다 내가 더 긴장했다. 아무리 무죄를 확신한다고 해도 대한민국 형사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될 확률은 1%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죄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지난 2023년 1월 13일 인천지방법원 제13형사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를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다. 원장의 얼굴 또한 눈물로 범벅이 됐다.

하지만 무죄의 기쁨도 잠시였다. 검사는 즉시 항소했다. 수사과정까지 더하면 2년이 넘는 기간이다. 엉터리 기소로 무고한 사람을 2년이 넘도록 고생을 시키고선 검사는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항소장을 보냈다. 항소 역시 필자가 수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당했다. 아동학대범이 아닌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변호였다.

항소심 역시 무죄를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1심에서 무죄를 받았는데, 항소심이라고 못 이기겠는가. 항소심에서는 증거나 법리에 관한 주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검사 기소의 부당함 그리고 그에 따른 피고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재판부에 전했다.

피고인의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잠시나마 사임을 고민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항소심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무죄를 강조했다. 그것이 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바른 자세라 믿었다. 여론의 들썩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보다 억울한 한 사람을 살피는 것이 정치일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하지만 역시나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는 2023년 4월 20일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후 검사는 상고를 포기했다. 이로써 원장은 2년 반 만에 아동학대범이라는 누명을 완전히 벗을 수 있었다. 누명을 벗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 한 담임교사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김광민 기자는 현직 변호사로 경기도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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