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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설명하는데 독립군 때려잡은 일제 군가 표현이라니"

황상규 선생 묘소 추모비-밀양독립운동기념관 설명판에 '선구자' 등장... "수정해야" 지적 나와

등록|2023.01.31 11:10 수정|2023.01.31 14:46

▲ 밀양에 있는 애국지사 백민 황상규 선생 묘소에 있는 추모비. ⓒ 윤성효

  

▲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뜰에 있는 '추모동상' 설명판. ⓒ 윤성효


목숨을 내놓고 독립을 위해 싸웠던 애국지사를 기리는 추모비·설명판에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간도특설대가 부른 군가 속 '선구자'라는 표현을 쓴 것을 두고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남 밀양시 부북면 용지리에 있는 백민 황상규(白民 黃尙奎, 1891년 4월 19일 ~ 1931년 9월 2일, 1963년 국민훈장 독립장) 선생 묘소 추모비와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뜰에 있는 설명판의 을강 전홍표(乙江 全鴻杓, 1870년 1월 3일 ~ 1929년 8월 11일, 2018년 건국포장) 선생 부분이다.

황상규 선생 추모비는 '독립선구자'라고 돼 있다. 이 추모비는 1975년 11월 '애국지사 백민 황상규 선생 추모사업회'가 세운 것으로 돼 있는데, 현재 이 단체는 없다.

황상규 선생은 1918년 무오독립선언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3.1독립운동 후 북로군정서를 창설해 재정책임자로 군자금 조달에 활약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무력행동대인 '의열단'을 조직해 초대 단장으로 일제 중요기관과 요인 암살 공작을 계속 하다 징역 7년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신간회 중앙서기장을 맡았다.

추모비 뒷면에는 "불굴의 항일운동을 계속하시더니 일제의 겹친 박해와 옥고로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 하에서도 사회장을 거행됐다"며 "개인의 영예를 돌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몸 바치신 선생의 위업은 오늘 우리들의 교훈으로 되새겨지고 기리 후손들에게 현양돼야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국가보훈처는 2014년 12월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황상규 선생을 선정해 다양한 추모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을강 전홍표 선생은 동화학교 교장으로 김대지, 김원봉, 손일민, 윤세주, 황상규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고, 1919년 3월 13일 밀양 장날만세운동을 지도해 항일독립운동을 선도했다. 나라를 잃은 조선 유민의 한 사람인 자신의 심경을 글로 적어 하늘에 고(告)한 '고천문(告天文)'을 남기기도 했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뜰에 있는 추모동상에는 "밀양지역 독립투사 중 정부로부터 애족장 이상 서훈 받은 분은 37명이며, 이 가운데 사진 또는 초상화가 없어 흉상 제작이 불가능한 3명을 제외한 34명과 밀양지역 독립운동의 선구자인 을강 전홍표, 의열단장 조선의용대 대장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한 약산 김원봉 등 36명의 흉상이 설치돼 있다"라는 설명판이 있다.

'선구자'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을 때려잡기 위해 일제가 만들었던 '간도특설대'의 군가에 나오는 단어다. 윤해영 작사와 조두남 작곡으로 만들어진 가곡 <선구자>에 나온다. 윤해영과 조두남은 친일행적이 뚜렷하다.

특히 조두남은 1940년대 일본 중심의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설립된 만주작곡자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징병제를 찬양하고 대동아공영권을 고무하는 작곡과 연주 활동을 벌였다.

가곡 <선구자>는 1944년 봄 '신작가요 발표회' 때 발표된 <용정의 노래>로 불리었다가, 해방 이후 일부 가사와 제목이 바뀌었다. 이 곡의 가사는 독립군의 기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민주국의 창건과 영광을 기리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 최근에 나왔다.

이같은 사실은 2000대초 창원마산에서 '조두남기념관'을 세우려고 하자 그의 친일행적을 들어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선구자> 노래가 당초 <용정의 노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려졌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2022년 9월 19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에서 "한국에서 1970~80년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시기에 자주 애창됐던 가곡 <선구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 때 배경음악으로 연주됐다"며 "뒤늦게 친일음악인 윤해영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공식행사에서 더 이상 불리지 않았다"고 했다.

김 전 관장은 "당초 이 노래는 연변의 용정을 배경으로 <용정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있었으나 괴뢰 만주국이 수립되면서 그리고 가사에 나오는 '선구자'가 우리 독립군이 아니라 만주국의 일꾼이라는 해석이 제기되면서다"고 덧붙였다.

조두남기념관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간도특설대가 부른 군가에 자신들을 '선구자'로 지청했다. 선구자의 사명이 독립군을 때려잡는 것이었다"며 "선구자는 노래 제목 자체가 일본식 단어였던 것"이라고 했다.

김 고문은 "우리 독립운동 공간에서 '선구자'라는 말은 없었다"며 "그런데 애국지사의 추모비와 설명판에 선구자라는 표현을 해놓았다는 것은 모욕이다. 독립운동과 관련해서는 단어를 신중하게 쓰야 하고,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준설 밀양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사는 "'선구자'라는 말의 유래를 보면, 수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현재 황상규선생추모사업회가 없어 묘소를 관리하는 국가보훈처에서 해야 하고, 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운 밀양시에서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뜰에 있는 '추모동상' 설명판. ⓒ 윤성효

  

▲ 밀양에 있는 애국지사 백민 황상규 선생 묘소와 추모비. ⓒ 윤성효

  

▲ 밀양에 있는 애국지사 백민 황상규 선생 묘소.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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