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풀리자 '조총련계 자금' 엮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3] 박정희 정권은 서민호를 찍었다
독재자들의 패악 중의 하나는 라이벌이나 유능한 인재를 중절시켜버리는 행위다. 수법에는 암살·테러·납치·사법조치(살인) 등 다양하다. 마치 도벌꾼이 잘자란 나무를 골라 도끼질을 하듯이, 독재(세력)자는 유능한 인재를 골라 찍어낸다.
박정희 정권은 서민호를 찍었다.
이승만이 8년 간이나 투옥했던 수법의 연장선이다. 특히 박정희는 일본군 출신의 콤플렉스였는지,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룬 서민호 등 독립운동가 출신을 박해하였다.
박정권은 서민호를 줄곧 주시해 왔다. 보수야당을 배격하고 혁신계에서 고고한 모습으로 고군분투하지만 정책과 철학 그리고 처신에서 웅지가 깃들어 있었다. 더 이상 자라기 전에 싹부터 잘라내야 했다. 민주사회주의 이념이나 남북서신교류, 기자교류 등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묶기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민 속에 뿌리를 둔 거물급 정치인을 톱질하기에는 부족했다. 해서 당시 약효가 큰 '조총련 관련'으로 엮었다. 조총련과 엮으면 국민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계여서 도벌작업이 그만큼 쉬웠다. 한 신문기사를 소개한다.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서민호씨 구속, '조총계 자금'받아 쓴 혐의 첨가"란 제목의 기사다.
민주사회당(가칭) 창당준비위대표 서민호씨의 발언을 수사해온 검찰은 3일 오후 1시 서씨를 반공법 4조1항 위반혐의로 구속, 서울교도소에 수감했다. 서씨의 구속영장을 검토한 서울형사지법 김용철 부장판사는 2일 오후 영장을 기각했다가 검찰의 2차 신청을 받고 새로운 소명자료가 첨부됐다는 이유로 이날 오전 11시 반에 영장을 발부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의 1차 영장신청을 받고 3시간에 걸친 검토 후 구속 사유로는 소명자료가 부족하다고 기각했었는데 검찰은 3일 아침 서씨가 ① 민사당 창당 자금 등으로 조총련에서 일화 4백만 원을 유입, 사용했고 ② 지난 4월 13일 "온 국민은 일어나라, 미국의 대리전쟁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을 실은 전단을 뿌렸다는 새로운 소명자료를 보강, 영장을 재신청했던 것이다.
이날 아침 새로 첨부된 소명자료인 전단의 내용은 "…민족의 고귀한 피를 진흙탕과 정글의 흙덩이 나라에 팔아넘기고 있다. 이것은 정권유지와 내외 상인들의 자본축적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리전쟁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온 국민은 궐기하여 일어나라"는 등으로 되어있다 한다.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 박종인 검사는 2일 중앙정보부의 수사보고를 받고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의 승인을 얻어 서씨의 구속을 서둘렀다.
서씨의 구속 사유는 남북한 서신교류 및 언론인 등의 교류와 김일성 면담 용의, 국군 파월은 대리전쟁이라는 주장 등으로 반공법 제4조 1항(적에의 고무 동조 등)을 위반했고, 지난 4월 조련계 김 모씨로부터 4백만 원을 받아다 동당 자금에 사용함으로써 동법 5조 1항(반국가단체와의 접촉 및 자금제공)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서민호 민사당 대표는 3일 구속이 집행되기에 앞서 "검찰이 일단 기각된 영장을 다시 딴 죄명을 붙여 발부받는 것은 연극이나 장난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하고 "국민을 위해서나 정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구속 이유 중의 하나인 조총련계 자금유입 문제에 대해서 "중앙정보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고 말하고 민주당 정권 때(당시 국회부의장) 재일교포의 국회옵서버 파견교섭을 위해 찾아온 김금석(현 민단고문) 씨가 교포 중에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다길래 깨끗한 돈이면 받겠다고 했고 또 돌아가면 서상록 씨를 만나 인하공대를 맡아보도록 일러 보냈는데 그후 김씨로부터 서상록 씨가 약 3천만 원 가치의 마산과 인천에 있는 재산이 처분되면 맡아보겠다 하더라는 편지가 왔는데 이 편지가 이번 사건으로 압수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 조봉암 씨 비서 이영근 씨와 접촉을 하고 양한모 씨한테 돈을 얻어 썼다고 하나 이씨는 교도소에서 한 번 본일이 있을 뿐이고 양씨는 만난 일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주석 1)
주석
1> <대한일보>, 1966년 6월 3일.
박정희 정권은 서민호를 찍었다.
박정권은 서민호를 줄곧 주시해 왔다. 보수야당을 배격하고 혁신계에서 고고한 모습으로 고군분투하지만 정책과 철학 그리고 처신에서 웅지가 깃들어 있었다. 더 이상 자라기 전에 싹부터 잘라내야 했다. 민주사회주의 이념이나 남북서신교류, 기자교류 등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묶기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민 속에 뿌리를 둔 거물급 정치인을 톱질하기에는 부족했다. 해서 당시 약효가 큰 '조총련 관련'으로 엮었다. 조총련과 엮으면 국민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계여서 도벌작업이 그만큼 쉬웠다. 한 신문기사를 소개한다.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서민호씨 구속, '조총계 자금'받아 쓴 혐의 첨가"란 제목의 기사다.
민주사회당(가칭) 창당준비위대표 서민호씨의 발언을 수사해온 검찰은 3일 오후 1시 서씨를 반공법 4조1항 위반혐의로 구속, 서울교도소에 수감했다. 서씨의 구속영장을 검토한 서울형사지법 김용철 부장판사는 2일 오후 영장을 기각했다가 검찰의 2차 신청을 받고 새로운 소명자료가 첨부됐다는 이유로 이날 오전 11시 반에 영장을 발부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의 1차 영장신청을 받고 3시간에 걸친 검토 후 구속 사유로는 소명자료가 부족하다고 기각했었는데 검찰은 3일 아침 서씨가 ① 민사당 창당 자금 등으로 조총련에서 일화 4백만 원을 유입, 사용했고 ② 지난 4월 13일 "온 국민은 일어나라, 미국의 대리전쟁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을 실은 전단을 뿌렸다는 새로운 소명자료를 보강, 영장을 재신청했던 것이다.
이날 아침 새로 첨부된 소명자료인 전단의 내용은 "…민족의 고귀한 피를 진흙탕과 정글의 흙덩이 나라에 팔아넘기고 있다. 이것은 정권유지와 내외 상인들의 자본축적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리전쟁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온 국민은 궐기하여 일어나라"는 등으로 되어있다 한다.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 박종인 검사는 2일 중앙정보부의 수사보고를 받고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의 승인을 얻어 서씨의 구속을 서둘렀다.
서씨의 구속 사유는 남북한 서신교류 및 언론인 등의 교류와 김일성 면담 용의, 국군 파월은 대리전쟁이라는 주장 등으로 반공법 제4조 1항(적에의 고무 동조 등)을 위반했고, 지난 4월 조련계 김 모씨로부터 4백만 원을 받아다 동당 자금에 사용함으로써 동법 5조 1항(반국가단체와의 접촉 및 자금제공)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서민호 민사당 대표는 3일 구속이 집행되기에 앞서 "검찰이 일단 기각된 영장을 다시 딴 죄명을 붙여 발부받는 것은 연극이나 장난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하고 "국민을 위해서나 정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구속 이유 중의 하나인 조총련계 자금유입 문제에 대해서 "중앙정보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고 말하고 민주당 정권 때(당시 국회부의장) 재일교포의 국회옵서버 파견교섭을 위해 찾아온 김금석(현 민단고문) 씨가 교포 중에 나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다길래 깨끗한 돈이면 받겠다고 했고 또 돌아가면 서상록 씨를 만나 인하공대를 맡아보도록 일러 보냈는데 그후 김씨로부터 서상록 씨가 약 3천만 원 가치의 마산과 인천에 있는 재산이 처분되면 맡아보겠다 하더라는 편지가 왔는데 이 편지가 이번 사건으로 압수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 조봉암 씨 비서 이영근 씨와 접촉을 하고 양한모 씨한테 돈을 얻어 썼다고 하나 이씨는 교도소에서 한 번 본일이 있을 뿐이고 양씨는 만난 일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주석 1)
주석
1> <대한일보>, 1966년 6월 3일.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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