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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왼쪽 절반을 잘라낸 아이를 통해 알게 된 것

올해의 질문을 건네 준 책, 데이비드 이글먼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등록|2023.02.05 20:21 수정|2023.02.05 20:21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운 좋게 최근 한 달간 호주에서 캠핑 여행을 했다. 서울에서도 캠핑을 해본 적 없으니 이 여행은 새로운 모험이었다. 이상하게도 큰 기대나 바람, 목적 같은 건 없었다.

독서와 글쓰기 같은 루틴으로 다져진 일상에 만족하고 있던 터라, 매일 즐겁게 해 오던 일이 어그러질 거라는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도 여행을 다짐한 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아이에게 자연과 친구가 되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보드 하나 달랑 들고 몸을 띄우는 젊은이들을 보며 부럽다고 중얼거리기는 했지만 굳이 서핑을 해야겠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걸 배우느라 짠 바닷물을 먹을 일이, 무수한 연습으로 팔다리엔 멍이 들고 다음 날엔 온몸이 결릴 일이, 눈에 훤했으니까.
 

파도야 놀자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아이들의 물놀이 ⓒ 김현진


보는 것만으로 짜릿하고 즐거웠다. 파도와 노느라 온몸을 흠뻑 적시고, 날마다 조개를 줍고 모래성을 쌓는 딸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얕은 바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수영으로 유유자적 떠다니는 것만으로 잔잔하게 기뻤다.

기쁨의 주머니가 소박해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서핑 강습을 받고 몇 시간짜리 트래킹 코스를 두 발로 직접 걸어야 만족했을 텐데.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짜릿함보다 익숙한 걸 반복하며 보이지 않게 쌓아가는 일상의 든든함이 더 좋다는 깨달음도 그랬다.

그만큼 변했구나. 그동안의 삶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다듬어져 가고 있다는 걸 여행을 하며 알게 되었다.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 뒤에서 핸드폰으로 인터넷 서점을 둘러 보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 성장기엔 다방면으로 호기심이 왕성했지만 지금은 조용한 데서 책만 읽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한 내게, 이 문장은 의미심장했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눈에 꽂힌 문장에 이끌려 책 한 권을 주문했다.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젊은 뇌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스탠퍼드대학교 신경과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이글먼의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김승욱 옮김, RHK)였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데이비드 이글먼의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김현진


이글먼의 책은 흡입력 있게 읽힌다. 기존의 뇌에 대해 알려져 있던 상식인 뇌에는 운동이나 감각, 언어 등 특정한 활동을 할 때 활성을 나타내는 부위가 정해져 있다는 가설을 뛰어넘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생후배선(livewired)'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글먼은 뇌가 경험에 따라 바뀐다고 말한다. 뇌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를 바꿔 가며 '생후배선(livewired)' 작업을 진행한다고. 우리의 뇌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신호를 데이터처럼 받아들이고 신체 기관으로 최적의 반응을 내보내기 위한 배선 작업을 날마다 하고 있다.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뇌라는 자기만의 동굴에 삶의 지도를 그린다.

저자는 이에 대한 예로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로 잦은 발작을 겪은 세 살짜리 아이 매슈가 뇌의 반구 하나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사례를 든다. 뇌의 반을 절제하는 수술이라니, 수술 후에도 아이는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또한 시력이나 청력을 잃은 사람, 한쪽 팔을 잃은 사람 등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들어 뇌가 상실한 감각 능력을 어떻게 대체하는지, 어떻게 연습을 통해 감각을 증강시키는지 설명한다. 시력이나 청력을 상실한 사람이 등이나 이마, 혀와 같은 피부로 전해지는 신호/감각으로 '보고', '듣는' 연습을 하고, 단 시간내에 (대체된) 시각과 청각을 회복한 실험결과를 보여준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뇌에서 어떤 활동(감각이나 운동, 언어, 심지어 생각이나 기억까지도)을 담당하는 영역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유전자에서 일부 배정을 하더라도 살며 겪는 자극과 연습을 통해 이에 반응하는 뇌의 영역은 언제든 축소되거나 확장될 수 있다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매슈는 오른손을 잘 쓰지 못하고 걸을 때 다리를 살짝 전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가 그토록 엄청난 모험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힘들 정도다.
28쪽

뇌의 왼쪽 절반을 잘라낸 매슈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부 손상은 남았지만 평범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그의 뇌는 커다란 상실을 경험하고도 역동적으로 회로를 재편했고 사라진 기능을 다른 영역이 나누어 담당하며 자기만의 지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섬세하고 복잡한 신경 전달 시스템을 통해 외부에서 주입된 데이터에 대한 최적의 반응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뇌의 기본 움직임이다. 불완전하게 태어나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며 배우고 성장하는 인간의 숙명이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다.

내 안에 그렇게 탁월한 장치가 있다니 놀라웠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뇌로 보내지는 신호, 즉 데이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뇌는 끊임없이 변하고 새롭게 탄생한다. 뇌는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해결법이나 대안을 찾아내고, 더 나아가 다른 기능(감각)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뇌는 스스로 무한정 업데이트가 가능하지만 그 작동 원리의 비밀은 여전히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 원리를 밝혀내 기계에 적용하고 인체에 연결해 신체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예언한다. 뇌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연구와 발견은 즐겁게 읽었지만 자연의 힘을 넘어서려는 일부 과도한 욕망에 대해서만은 경계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기술 실현에만 급급하기보단, 기술 적용에 있어 윤리 도덕적 문제는 없는지, 악용이나 오용, 빈부 격차로 인한 소외의 문제를 막는 사회 제도 및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도 함께 고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가

뇌는 계속 변한다. 어릴수록 유연하기에 변화의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수록 뇌의 가능성에서 손해만 보는 건 아니다. 유연성이 줄어드는 만큼 전문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러 방면으로 반응하던 뇌가 나이가 들수록 관심 갖는 한두 가지 분야에 강렬하게 작용한다.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276쪽) 과정도 나쁘지 않다.
 
삶의 짜릿함은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현재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가에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뇌의 마법도 구성요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요소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듬어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천을 짜는 방식에 달려 있다. - 30쪽

새해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다. 새해 결심이 작심 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역시 나는 안 돼, 사람이 어떻게 변해.' 이런 마음으로 벌써부터 우울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아니, 평생 변해야 한다.

지금도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당장보다는 멀리 보며 매일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이글먼의 표현을 바꾸어 말하자면 이 글을 읽은 당신은 글을 읽기 전의 당신과는 이미 조금 달라져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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