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신인상' 수상자 "욕되지 않도록 맑은 시 쓰겠다"
[인터뷰] 서산고등학교 교사 김일형 시인
▲ ‘윤동주신인상’을 수상한 서산고등학교 교사 김일형 시인 ⓒ 최미향
"진정한 시인이 되어 작은 희망의 씨앗을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사람들 가슴속에서 품고 있는 시의 씨앗이 용기를 내어 움트게 하는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파가 극성을 부린 1월 27일, 지금도 북간도에 누워있는 선생의 이름이 욕되지 않도록 영혼 맑은 시를 쓰겠다는 제1회 <윤동주신인상>을 수상한 김일형 시인을 만났다.
그는 "우리는 모두 동시대에 태어난 순례자들"이라며 "이생의 삶이 행복하길 두 손 모으고 응원하며 계묘년 새해 건강하기를 기원한다"라는 덕담을 보내왔다.
▲ 김일형 시인의 첫 시집 '눈발 날린다 풀씨를 뿌리자' ⓒ 최미향
- '시'라는 씨앗이 용기를 내어 움트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으시다고 했는데 시인님께 '글쓰기의 모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쓰기의 모체는 외로움입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책들이 '세계 명시' 시집입니다. 그중에서도 푸시킨의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는 외로운 소년을 위로하는 유일한 벗이었죠.
저는 서산시 대산읍 영탑리(靈㙮里)에서 태어났습니다. 영탑리는 신령스러운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있지요. 북쪽에는 망일산이 우뚝 솟아 있는 작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마칠 때쯤, 부모님이 산을 개간하여 만든 넓은 터에 집을 신축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드높은 망일산과 다정한 '삼 형제산'이 가슴에 안길 듯 잘 보였습니다.
저에겐 네 살 위 형,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우리 삼 형제는 언제나 어깨동무하고 있는 저 '삼 형제산'처럼 다정하게 살아가자고 약속했습니다. 중학생이 될 즈음, 중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동생과 저는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인 우등생 형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입학을 시켜주었습니다. 친구들이 교복에 교모를 쓰고, 커다란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할 때 저는 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친구라곤 자연과 동식물들이 전부였습니다.
슬프고 괴로울 땐 참나무 숲에 달려갔습니다. 그러면 커다란 참나무는 소년을 따스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혼자서 사색하기를 좋아했고 혼자서도 잘 놀았습니다."
▲ 홀로 산행을 다니며 외로움을 승화시켜 시를 짓는 김일형 시인 ⓒ 최미향
- 푸시킨의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를 유난히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린 소년의 외로움 깊이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였지요. 1년 동안 눈물로 밤을 새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쌍둥이 동생이 아버지께 "저는 학교 가지 않고 집에서 농사지을 거니 둘째 형만이라도 학교에 가도록 해주세요"라고 했을까요.
드디어 이듬해 대산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등교했지만, 친구들은 이미 선배가 되어버렸더라고요.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일 년의 공백은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고 평소 적었던 말수는 더 적어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 학교는 학생들의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 종목 한 가지씩을 선정해서 전교생이 점심시간에 모여 운동을 했는데 대산중학교의 교기(校技)는 태권도였습니다. 전교생이 태권도로 체력을 단련시키고 있었습니다. 빈혈이 심했던 저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것이 눈에 띄었는지 체육 선생님은 저를 태권도부원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저는 본래 누구를 때리고 맞는 운동은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어렵게 학교에 들어온 상황이라 더더욱 그랬습니다. 운동선수 생활을 거부했습니다. 엉덩이가 터지기 직전까지 맞기도 했습니다. 3학년 때는 제 의사와 관계없이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전교 부회장이 되었지만 과묵한 성격은 여전히 했고, 외로움 또한 좀처럼 사위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만난 시집이 지금도 책장의 가장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명시 푸시킨의 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외우고 있지요."
▲ 라자르 유흥식 추기경님과 함께 ⓒ 최미향
- 살아가면서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 계실까요?
"저는 한 권의 책이 저의 멘토가 된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人生讀本)'이란 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생독본은 자기 삶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파생된 질문, 즉 가치 있는 인생과 도덕적 신앙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내용이었죠. '톨스토이즘'이란 사상을 창조할 만큼 인류 스승들의 지혜를 모아 알기 쉽게 정리한 금언록인 셈입니다.
대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실업계인 서산농고(현, 서산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여 부모님을 도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저렴한 학비로 인해 아버님의 허리를 펴 드리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농고는 동일계 혜택으로 경쟁률은 높았습니다. 여전히 과묵한 성격이었지만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도호국단 간부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죠. 생각하는 사람 '로뎅'의 동상처럼 저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늘 운동장 소나무숲을 거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때 만난 책이 톨스토이의 '인생독본(人生讀本)'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저의 내면을 잡아준 책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고전은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삼촌이 선물해준 책입니다. 제가 관심을 보이자 선뜻 건네준 책입니다. 빌려보겠다고 한 것이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의 정신세계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끌어들인, 최초의 철학과 사유가 깊게 배어든 고전이기도 합니다. 이 지면을 통해서 제 친구의 삼촌께 감사드립니다."
▲ 이생진(94세) 시인의 덕담 '가야산 운무' 낭독 모습 ⓒ 최미향
▲ 출판기념식에서 가족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경기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딸, 여중에 근무하는 아내, 그리고 서산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김일형 시인의 가족은 교육가족이다.) ⓒ 최미향
- 교사의 길로 가다 보면 힘들었을 때도 있겠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보람이라면 우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충남 교사 임용고시 문제 출제 위원, 연구수업 컨설턴트, 교육현장 미담 사례 발표, 왕성한 환경교육 활동 등의 활발한 교육 활동으로 제1회 충남교육을 빛낸 교사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 부총리상을 받고 백두산에서 겨레의 얼을 가슴에 품은 한민족의 후손으로 큰 결심을 하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국민과 청소년들에게 단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되는 논문을 쓰고야 말겠다고 스스로에 다짐했었습니다.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 박사 논문 'Nectar 思考와 복합운동이 비만 청소년의 Ghrelin 호르몬과 Leptin 호르몬에 미치는 영향'을 완성했습니다. 생리학과 연동되는 스포츠의학은 세 번의 혈액검사와 통계는 수학자도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졸업장을 받기 위한 논문이었다면 3년이면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브 논문 2편을 1등급 학회지에 등재하고 최종적으로 본 논문을 발표하며 5년 6개월 만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은 박사과정 4명 중 가장 빨리 마친 기간이기도 합니다. 후배 연구자들에게 참고문헌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논문을 펴냈다는데 보람과 자긍심을 갖습니다.
세 번째는 내면에서 오랫동안 갈구해왔던 문학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시가 아니고 자신만의 깊은 사유가 깃든 시를 쓰고 있다는데 저에게 칭찬하고 싶습니다. 또 서산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 동아리를 운영하며 학생들과 공동의 꿈을 실현해가고 있다는데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충남문인협회에서 출간한 '충남문학대관 소설 희곡' ⓒ 최미향
- 선생님 하면 '따개비'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첫 자전적 소설인 따개비의 비화를 듣고 싶습니다.
"'따개비'는 세상에 발표한 저의 첫 자전적 소설입니다. 따개비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립니다. 주인공은 제가 담임이었던 학급의 중학교 1학년 남학생입니다.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쓰러져가는 작고 낡은 토담집, 작은 섬에서 80세 할머니와 앞을 보지 못하는 30대 삼촌 그렇게 세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른버짐이 얼굴을 덮고 있던 학생은 중학생인데도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보였습니다. 학생이 토요일 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발을 손에 들고 물이 들어오는 다리를 건너가다가 빠른 물살에 휩쓸려버린 아픈 내용입니다.
돼지고기를 사서 들고 가정방문을 수도 없이 다녔습니다. 우거지고 쓰러진 대나무가 지붕을 넘어 안뜰까지 덮고 있어 햇볕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쑥쑥 했던 집안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데 걸린 기간은 주말과 여름방학을 반납해야 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낫과 톱, 도끼만 있으면 처리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년이 1학년을 잘 마치고 2학년이 되면서 담임도 바뀌고 친구들도 달라진 환경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도 아픕니다. 지금 살아 있다면 청년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소설 속에서 그의 영혼이라도 영원히 살아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따개비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따개비는 2020년에 발간된 충남 문학 대관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다면 꼭 껴안고 토닥여 주고 싶은 아픈 손가락입니다."
▲ 출판기념식 후 방송사에서 ⓒ 최미향
- 마지막으로 축하드릴 일이 있더군요. 이번에 큰 상을 받으셨습니다.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제1회 <윤동주신인상>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월간 '시'에서 그동안 추천 신인상을 통하여 많은 시인을 배출하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에 시 잡지 100호 발간기념으로 제1회 윤동주 신인상을 제정하기에 이르렀고 전국에 공고를 내었던 것입니다.
윤동주신인상의 취지는 윤동주의 시 정신을 이어갈 후계자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에 등단했거나 시집을 낸 분들과 신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참가했습니다만 운도 따라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여성 두 분과 함께 세 사람이 예심을 통과하고 본심에 올라간 20여 명 속에 제 이름이 올려졌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세 사람을 뽑았는데 여성 두 사람은 이미 시집을 냈던 분으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인으로 수상하게 되어 자긍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쁨보다도 윤동주의 시 정신을 이어가야 하는 책임이 뒤따르고 있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윤동주 선생님은 지금도 북간도에 누워계십니다. 윤동주 선생님의 이름에 욕되지 않도록 영혼이 맑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시대에 태어난 순례자들입니다. 이생의 삶이 행복하길 두 손 모으고 응원하며 계묘년 새해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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