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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하지 못한 정의는..." '법쩐'이 던진 묵직한 질문

[TV 리뷰] SBS <법쩐> 의미 심장한 이선균의 한마디

등록|2023.02.05 11:57 수정|2023.02.05 11:57

▲ 지난 4일 방영된 SBS 금토 드라마 '법쩐'의 주요 장면 ⓒ SBS


SBS 금토 드라마 <법쩐>이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 4일 방영된 제10회에선 좌천, 대기발령 당한 검사 황기석(박훈 분)이 사채업자 장인 명 회장(김홍파 분)에게 등을 돌리고 은용(이선균 분)과 손잡는 파격 전개가 눈길을 모았다.

​앞선 9회에서 가까스로 살인 혐의 누명을 벗고 풀려난 은용이었지만 죽마고우 이진호(원현준 분)가 중요한 장부를 얻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이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여기까지 온 은용은 조카 장태춘 검사(강유석 분)와 잠시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명 회장에 대한 칼날을 예리하게 다듬어 나간다.

​반면 한동안 잘 나가던 황기석은 하나 둘씩 자신에게 등 돌리는 주변 사람들, 특히 사위를 그저 본인의 돈장사를 위한 도구 취급을 하는 명 회장의 태도에 모멸감을 느낀다. 권력자들도 한 번에 쓰러 뜨리는 등 거침 없던 검사였지만 이젠 끈 떨어진 신세에 불과한 황기석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공정하지 못한 법과 돈의 결합
 

▲ SBS 금토드라마 '법쩐' 오프닝 시퀀스 ⓒ SBS


​<법쩐>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 드라마의 내용, 주제를 함축적으로 다루고 있다. 검정, 빨강, 흰색 등 최대한 단순하게 그려진 그래픽으로 처리된 장면 속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등장한다. 각종 조형물로 친숙한 이 그림은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여신의 형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법쩐> 속 여신이 든 저울의 한 쪽에는 여러 개의 동전이 쌓여져 있다. 당연히 무게추는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법과 정의는 그 대상이 누구이건 상관없이 공평해야 한다.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것과 더불어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눈을 가렸지만 결과적으로 법은 돈을 쥔 편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법쩐>이 지금까지 다뤄왔단 내용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돈을 쥔 사채 업자와 자금이 필요한 정치인 및 권력자들의 부정한 결탁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왔다. 이는 그저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이 그래왔으니까 말이다. 이에 맞선 은용과 박준경 전 검사(문채원 분) vs. 장태춘 검사는 같은 목표물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복수 혹은 심판에 나선다.

"영리하지 못한 정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 지난 4일 방영된 SBS 금토 드라마 '법쩐'의 주요 장면 ⓒ SBS


벼랑 끝에 몰린 황기석은 끝내 은용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특히 사냥개 취급하는 장인의 행동에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결국 살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에겐 돈도 중요했지만 권력, 힘이 더 소중한 존재였다.

이에 야당 정치인이 마련한 기자회견 자리에 깜짝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부고발자 자격으로 기자들 앞에서 "이 자리를 빌려 윤 회장님(김미숙 분)께 사죄드린다"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수사에 최선을 다하겠다. 내부고발자로서 명예로운 대한민국을 바로세우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등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그가 정말 반성을 했을까?

​반면 이 내용을 알게 된 조카 장태춘은 삼촌 은용을 찾아가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거냐. 황기석이랑 손 잡을 거냐"라며 거칠게 따져 물었다. 이에 장태춘은 "간단한 싸움도 못 이기면서 뭘 해?"라고 반문한다. 이어 "영리하지 못한 정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라고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장태춘과는 다른 방식을 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두 사람의 갈등은 다음주 진행될 11회와 마지막회의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같은 목적, 다른 방식...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
 

▲ 지난 4일 방영된 SBS 금토 드라마 '법쩐'의 주요 장면 ⓒ SBS


​장태춘은 법, 권력 등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고 악을 비호하는 데 쓰이는 걸 뼛속까지 느끼는 인물이었다. 배신의 칼날을 등 뒤에서 맞아보기도 했던 그로선 비록 편법과 의롭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한때의 숙적, 황 검사와 손잡고 최종 목표인 명 회장의 숨통을 조이기로 한 것이다. 이는 억울하게 어머니를 잃은 박준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장태춘 검사는 다른 선택을 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황 검사에게 모욕도 당해왔던 인물이지만 그는 여전히 법이야말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믿어왔다. 이에 변변한 조직 내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상일 계장(최덕문 분)과 함께 원칙에 의거한 수사를 진행해왔다. 갑작스런 황 검사의 기자회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장 검사는 삼촌 은용과 갈등을 빚으면서 법과 원칙으로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두 사람의 선택은 판이하게 달랐다. '끝판왕'급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은용은 한때의 적이자 또 다른 악과 손을 잡았다. 이러한 갈등은 <법쩐>의 재미를 키우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불의와 맞서기 위해선 때론 정의롭지 못한 방법도 필요한 것일까"?라는 문제 제기는 원칙이 무너진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편 이날 명 회장은 사위 황 검사를 향해 "센 놈이 돈을 쥐는 게 아니고 돈 쥔 놈이 센 놈이다"라고 소리친다. 지금까지의 '센 놈'은 분명 명 회장이었다. 하지만 진짜 센 놈은 이를 때려 잡기 위해 행동에 나선 은용과 장 검사가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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