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코인 투자한 뒤 실패로 붕어빵 장사를 하기까지
서산서 '칸트와 잉어빵' 운영하는 36살 김선우씨의 삶
▲ 공장 다니며 붕어빵 굽는 서른여섯 김선우씨의 ‘칸트와 잉어빵' ⓒ 최미향
"한 번뿐인 인생인데 한 번의 타이밍? 한탕주의를 경계하세요. 로또 한 번 기다리듯이 그렇게 투자하는 것보다 적어도 20~30대라면 건강한 노동을 믿고 꾸준히 헤쳐나가야 합니다. 젊을 때는 자신에게 투자하고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불로소득은 나중에 나이 들어 투자하셔도 늦지 않아요. 안 그러면 저처럼 인생 힘들게 사셔야 합니다."
투잡으로 붕어빵을 굽는 서른여섯 청년 김선우씨의 말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사상이 마치 반죽과 빵틀처럼 잉어빵 굽는 과정과 흡사한 것 같아 가게 '칸트와 잉어빵'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선우씨는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붕어빵과 어묵을 팔기 위해 서산예천2지구중흥S-클래스 도로가 옆 공터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낮 시간에 어머니가 장사할 재료를 준비해주시죠. 저 때문에 많이 힘들만도 하신데 전혀 내색하지 않으세요.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부업이 배달대행이었어요. 어머니가 밤이 늦어도 잘 안 들어오니 너무 걱정을 많이 하시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 붕어빵 장사를 하게 된 겁니다."
▲ 서산예천2지구중흥S-클래스 도로가 옆 공터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선우씨의 붕어빵 사업장 ⓒ 최미향
▲ 꼬마손님과 선우씨 ⓒ 최미향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그리고 선우씨의 학창시절 얘기도 듣고 싶어요.
"부모님 두 분 다 자녀들의 인성교육에 힘써 주신 분이셨어요. 특히 저희 어머니는 허리를 다친 아버지를 대신해 다섯 식구를 부양하며 그 힘든 삶의 무게를 견뎌내셨습니다.
중학교 3학년 초반까지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쳤지만,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학업에 매진하게 됐습니다. 상당히 따뜻하고 성실하시며 지혜로운 분이셨죠. 누구를 만나도 예절교육을 강조하셨고요.
아버지는 과묵한 성격으로 큰 실수를 해도 크게 화를 내거나 매를 든 적 없이 스스로 깨닫도록 지켜봐 주셨어요. 연년생인 누나와 제가 건강한 상식을 지닌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신 두 분의 사랑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가끔 20대의 제 삶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때는 암울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당시 좋은 대학에 가려고 수능을 여러 번 치렀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자괴감에 빠져 한참 슬럼프에 허덕였죠. 하지만 그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스무살의 삶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고, 그때부터 철학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굴곡은 유난히 제 곁을 비껴가진 않더라고요."
- 인생의 굴곡이라면? 서른여섯 선우씨에게 큰 어려움이 있었군요.
"빚을 크게 졌어요. 코인에 투자했다가 실패를 본 거죠. 처음에는 하루에 천만 원도 더 벌다 보니 재능이 있는 줄 알고 빚투(빚 내서 투자)를 했어요. 그게 잘못된 길로 접어든 거죠. 들어올 수 있는 돈이란 돈은 다 끌어와서 했어요. 이 나이에 1억 7천만 원 정도요. 이거다 싶으면 올인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러다 한 번에 무너진 거죠.
저를 합리화하는 건 아니지만 사회현상을 보면 또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아니에요. 집은 사고 싶은데 값이 워낙 비싸니까 빨리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단 생각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실패들을 거쳐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건너며 스스로 자문합니다.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묻고 반성하면서요.
어쨌든 저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투자실패를 하면서 고된 삶의 행로를 거치게 됐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투잡을 뛰고요. 무엇보다 제 실수를 책임지려는 태도를 항상 유지하고 정말 독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 36년간 고향 서산에서 살아오면서 붕어빵을 팔면 힘든 점도 있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고단함을 무릅쓰고 일을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고객들을 만나면 힘든 걸 잊어버려요. 특히 저희 단골들은 주로 학생들이거든요. 미주알고주알 일상이야기를 나누죠, 특히 학생들이 맛있다는 얘기를 하며 행복해할 때 보람을 느껴요.
지난번 보니 한 친구는 먹는데 안 먹는 친구가 있더라구요. 물어보니 "다음에 먹으면 돼요"라고 하는데 의외로 요즘 애들이 나눠 먹는 것에 소극적이구나 싶었어요. 슬쩍 하나 더 넣어주며 "공부 잘돼요? 하나 더 넣었으니까 나눠 먹어요"라고 했어요. 그럴 때 괜히 기뻐요.
아 참, 고향에서 하다 보니 힘든 점보다 창피하지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네요. 솔직히 너무 간절했으니까, 당장 뭐라도 해야 해결이 되니까 창피할 겨를이 없었어요. 제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빚)기도 했고요.힘든 점이라면 부지런히 돈을 벌어 빚을 청산해야 한다는 부분이 머리에 늘 남아있다는 거예요. 붕어빵 때문에 힘든 건 아니고요(웃음)."
▲ 김선우 씨의 '칸트와 잉어빵' ⓒ 최미향
- '칸트와 잉어빵' 이름은 어떻게 만들게 됐어요?
"20대 시절 철학자 도올 김용옥 교수님이 EBS에서 중용강의를 찍으신 적이 있었는데 그 현장강의를 직접 들은 적이 있어요. 교수님께서 '칸트와 붕어빵'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었죠.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는 분의 인식론이 붕어빵을 만드는 절차와 유사하더라고요. 당시 저도 '언젠가 붕어빵 장사를 하게 되면 상호를 칸트와 잉어빵으로 지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칸트의 철학 이론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을 인식론이라고 부르는데, 그 앎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붕어빵이 '반죽과 틀' 둘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붕어빵이 만들어질 수 없듯이 우리의 앎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비록 고졸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자본주의' 다음의 사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거든요. 사실 자본주의라는 말 또한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잖아요. 그런 사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세상을 바꾸는 일 중 하나가 그런 위대한 사상가들이 많이 나와야지 더 좋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늦어도 상관없어요. 언젠가는 꼭이요. 꼭 공부해서 철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 철학자를 꿈꾸는 선우씨 ⓒ 최미향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서른여섯 해를 살면서 제가 이 정도의 빚을 질지는 감히 상상도 못 했어요. 때로는 회피하거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벌인 일이고 실수한 거니 스스로 화가 나지만 어쩌겠어요. 책임져야지요.
이 자리를 빌려 혹시 모를 투자에 유혹되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욕심내서 투자하는 건 정말 경계했으면 좋겠어요. 빚내서 투자하는 건 더더구나 아니고요. 본인의 여윳돈으로 꾸준하게 분석해서 투자하면 모를까요. 너무 욕심내시면 저처럼 이런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없잖아요.
현실이 너무 힘겹지만, 전 어떻게든 살아서 극복하겠지만 막상 이런 일이 다시 닥치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열 번 백번을 강조해도 무리한 빚투는 절대 하지 마시길 바래요.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좀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해가는 일상이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