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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의 정규리그 우승 이끈 '조연 3인방'

[여자프로농구] 보이지 않게 팀에 크게 기여한 고아라-나윤정-김정은

등록|2023.02.15 09:21 수정|2023.02.15 09:21
지난 13일 여자프로농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우리은행 우리원은 BNK 썸과의 원정경기에서 76-52로 대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5경기를 남겨두고 .840의 독보적인 승률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20-2021 시즌 이후 두 시즌 만에 차지한 정규리그 우승이자 우리은행의 통산 14번째 정규리그 우승이었다. 이는 당연히 여자프로농구 6개구단 중 독보적인 최다 우승 기록이다.

사실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우승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많은 농구팬들이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은행이 비 시즌 동안 FA 최대어로 꼽히던 '팔방미인 포워드' 김단비를 영입하면서 전력을 대폭 끌어올린 데 비해 지난 시즌 통합 우승팀 KB스타즈는 박지수가 시즌 초반을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박지수는 작년 12월 17일 복귀전을 가졌지만 지난 1일 손가락 탈골로 인한 인대손상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됐다).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두 주역은 이적하자마자 18.48득점9.16리바운드6.40어시스트 3점슛성공률40.2%를 기록하며 에이스로 활약한 김단비와 15.92득점8.38리바운드4.54어시스트를 기록한 '우리은행의 미래' 박지현이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원투펀치로 활약한 두 선수 외에도 이 선수들이 '조연'으로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면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조기 우승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아라] 골밑과 외곽 넘나드는 베테랑 포워드
 

▲ 2012년까지 우리은행에서 활약했던 고아라는 작년 10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여자프로농구에는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주전으로 활약해 빠른 시간 안에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하는 선수도 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입단했지만 프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찍 선수생활을 접는 선수도 있다. 그리고 스타 선수로 화려한 조명을 받진 못해도 소금 같은 활약을 하며 리그에 오래 생존하는 선수들도 있다. 우리은행의 고아라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선수다.

2007년 금호생명 레드윙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고아라는 우리은행과 삼성생명 블루밍스, 하나원큐를 거치며 15년 넘게 프로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2012년 삼성생명 이적 후 주전급 선수로 도약한 고아라는 2015-2016 시즌부터 꾸준히 30분 내외의 평균 출전시간을 기록했다. 하지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시즌은 하나원큐에서 활약하며 10.33득점을 기록했던 2019-2020 시즌이 유일했다.

고아라는 2021-2022 시즌이 끝나고 트레이드를 통해 10년 만에 우리은행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고아라의 이적과 함께 부임한 위성우 감독과 한솥밥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고 박혜진 정도를 제외하면 과거 호흡을 맞췄던 동료들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고아라는 리그 16년 차를 맞는 베테랑답게 우리은행의 팀 색깔에 빠르게 녹아 들면서 이번 시즌 우리은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벤치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고아라는 이번 시즌 평균 18분40초를 소화하며 5.41득점2.68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원큐 시절에 비하면 출전시간이 줄어 들었고 그만큼 개인기록도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하지만 고아라는 정통센터가 없는 우리은행에서 골밑과 외곽을 오가면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주고 있다. 최이샘이 부상으로 출전시간이 많지 않았던 이번 시즌 고아라마저 없었다면 우리은행은 더욱 고전했을 것이다.

[나윤정] 박혜진 공백 최소화한 백업가드
 

▲ 나윤정은 이번 시즌 프로 데뷔 후 가장 오랜 시간 코트를 누비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이번 시즌 우리은행은 김단비가 가세하기 전 팀 내 부동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또치' 박혜진이 발바닥 부상으로 시즌 중반에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결장한 경기는 4경기였지만 이번 시즌 12.86득점6.38리바운드3.81어시스트로 개인기록이 크게 하락했을 정도로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박혜진이 부진했던 이번 시즌에도 우리은행의 승률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백업가드 나윤정의 좋은 활약 덕분이었다.

박지수와 같은 분당경영고 출신으로 박지수가 프로에 입단한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우리은행에 입단한 나윤정은 지난 시즌까지 박혜진과 박지현 같은 쟁쟁한 선·후배들에 가려 많은 출전시간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나윤정은 이번 시즌부터 상대의 단신가드를 막기 위한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코트에 등장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간간이 외곽슛까지 터트려 주면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 시즌 우리은행이 치른 25경기 중 24경기에 출전해 평균 18분35초를 소화한 나윤정은 4.58득점1.42리바운드1.08어시스트0.46스틸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크게 대단할 게 없는 평범한 벤치 멤버의 성적이지만 나윤정은 출전시간과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 모든 부문에서 데뷔 후 최고성적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위성우 감독으로부터 20분에 가까운 출전시간을 보장 받은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나윤정은 작년 12월 3일 하나원큐와의 경기에서 3점슛 5개를 포함해 19득점을 올리며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친 바 있다. 나윤정도 충분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돋보이는 활약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혜진과 박지현이 플레이오프를 위해 출전시간을 조절한다면 남은 5경기에서는 나윤정에게 많은 출전시간이 주어질 확률이 높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나윤정으로서는 다시 한 번 위성우 감독의 눈도장을 찍을 좋은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김정은] 조연 자처한 노장, 승부처에선 주연으로
 

▲ 우리은행의 최고참 선수 김정은은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코트 안팎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사실 김정은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신세계 쿨캣에 입단한 후부터 지난 시즌까지 한 번도 팀의 중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김정은은 루키 시즌부터 평균 35분45초의 출전시간을 기록하며 신세계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고 2010-2011시즌과 2011-2012 시즌에는 두 시즌 연속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김정은은 우리은행 이적 후에도 네 시즌 연속으로 30분 이상의 출전시간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선수로 활약했다.

김정은은 지난 2021-2022 시즌 평균 29분5초의 출전시간을 기록하며 부상으로 고전했던 시즌을 제외하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30분 이하의 출전시간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27분17초로 출전시간이 더욱 줄어 들었다. 게다가 지난 시즌 38.3%까지 끌어 올렸던 3점슛 성공률은 이번 시즌 22.5%로 뚝 떨어졌다. 얼핏 보면 에이징커브(나이에 따른 기량하락)를 의심할 법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팀 내 역할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평소 좀처럼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지 않는 김정은은 팀이 위기에 빠지거나 4쿼터 승부처에서 어김 없이 나타나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득점력으로 점수를 쌓아 나간다. 4쿼터에만 10득점을 퍼부으며 우리은행의 10연승을 이끌었던 작년 12월16일 삼성생명과의 홈경기가 베테랑 김정은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경기였다.

김정은은 이번 시즌 3점슛 성공률이 많이 떨어진 대신 지난 시즌 38.2%까지 떨어졌던 2점슛 성공률이 47.9%로 다시 상승했다. 2점슛 성공률이 크게 올랐다는 것은 과거 신세계 시절처럼 링과 가까운 곳에서 저돌적인 돌파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번 봄 농구에서 수술을 받은 박지수가 뛸 확률이 매우 낮은 만큼 김정은의 골밑 공략은 다가올 봄 농구에서 우리은행에게 아주 좋은 무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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