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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명예대표 윤석열'? 욕심이 참 과하십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당내에서 흘러나온 '명예대표설'... 권력 쏠림, 적절치 않아

등록|2023.02.16 16:33 수정|2023.02.16 16:33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당대표 선출 문제로 진통을 겪는 국민의힘 내에서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명예대표로 추대하는 방안이 제기됐다.

14일 <TV조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대통령실과 당이 함께 시너지를 내는 당정 융합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사실과 함께, 대통령이 명예 당대표를 맡는 방안이 당내에서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15일 친윤계 핵심인 이철규 의원은 기자들에게 "가능한 이야기"라며 긍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당과 대통령이 같은 방향을 보고 가야지, 지금까지 당정 분리론이라는 게 좀 잘못됐던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당을 용산 출장소로 만들 수 있다'라는 비윤계의 냉소적 반응도 있고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측근 그룹이 당권에 강한 의욕을 내비친 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흘려보낼 만은 일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대권뿐 아니라 당권에도 의욕을 보였다. 작년 1월 그는 "(대선 후보가) 선거 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라는 당헌 제74조를 근거로 이준석 대표를 배제한 채 당무우선권을 행사했다. 권영세 의원을 사무총장에, 이철규 의원을 전략기획부총장에 임명한 조치는 이 조항에 따른 것이었다.

대통령의 명예총재 겸직이라는 '현상' 

대선 후보의 당무우선권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2002년 3월 30일 당무회의 때 도입됐다.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후보의 대표 겸직을 금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이런 분리로 인한 대선 후보의 위축 가능성을 보완하고자 후보 확정일부터 대선일까지 후보가 우선권을 갖도록 했다. 그 후 20년간 이 당의 역사에서 당무우선권을 가장 인상적으로 활용한 인물이 바로 윤석열 후보다.

후보 시절에도 당권에 강한 의욕을 표출한 윤 대통령 진영에서 1년 만에 명예대표설이 흘러나왔다. 당대표 선거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명예대표 문제가 이 당의 운명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대통령이 집권당 명예총재를 겸하는 일이 보수정권 내에서 하나의 현상처럼 됐던 기간이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는 잘했다"고 평한 전두환 집권기의 막판인 1987년 6월항쟁 직후부터 10년간 이런 일이 보수정권 내에서 되풀이됐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전두환이 직선제 개헌 투쟁 2개월 뒤인 1987년 8월 5일에 민주정의당(민정당) 명예총재로 물러선 것은 노태우 후보와의 경쟁관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5·18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권위주의 질서가 타격을 받은 데에 가장 크게 기인했다.

6월항쟁을 계기로, 망명 가거나(이승만), 쿠데타 당하거나(윤보선), 죽임을 당하거나(박정희) 하는 방법이 아닌 선거에 의해 권력이 교체되는 정치문화가 정착됐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명예총재 겸직이라는 과도기 현상이 보수정권 내에서 발생하게 됐다.

항쟁 이후로 현직 대통령들이 청와대를 무사히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임기가 차면 물러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자씨는 2019년 1월 1일 <뉴스타운>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 "나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순전히 전두환의 공으로 돌렸지만, 이는 그의 남편이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발판으로 퇴임 뒤에 상왕 역할을 하려 했던 사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전두환이 죽거나 쫓겨날 때까지 대통령을 하지 못하고 임기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성장 때문이다.

그렇게 권위주의가 흔들리고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상황의 산물이 현직 대통령의 명예총재 추대였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며 죽을 때까지 혹은 쫓겨날 때까지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에서, 임기가 차면 대통령직과 총재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절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현상이었다. 현직 총재를 겸한 대통령을 예우하는 동시에 당에서 평화적으로 밀어내는 성격이 있었다고 평할 수 있다.

밀어내는 성격이 좀 더 강했다는 점은 전두환이 퇴임 2개월 뒤인 1988년 4월 13일 명예총재직을 사퇴한 데서도 확인된다. 전두환 처벌을 외치는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노태우 정권이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명예총재를 사퇴했으므로,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밀려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두환을 명예총재로 밀어올린 노태우도 동일한 경험을 했다. 통일민주당을 이끌고 노태우의 민정당 및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민자당) 창당에 참여한 김영삼은 대선 후보로 선출(1992.5.19)된 데 이어 총재로 뽑힌 8월 28일에 노태우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노태우가 이를 고마워하지 않았다는 점은 3주 뒤 민자당을 탈당하는 9·18 선언으로 충격을 준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김영삼 역시 5년 뒤에 같은 일을 겪었다. 민자당을 계승한 신한국당의 총재가 김영삼에서 이회창으로 교체된 1997년 9월 30일, 김영삼은 명예총재로 올라갔다. 이회창이 김영삼을 배려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다는 점은, 11월 21일 그가 신한국당을 깨고 조순과 함께 한나라당을 창당함으로써 김영삼의 명예총재직를 무의미하게 만든 사실로도 드러난다.

이처럼 현직 대통령의 명예총재 겸직이 보수정권에서 10년간 인상적으로 나타나다가 21세기 들어 자취를 감춘 것은, 현직 대통령을 쫓아내는 동시에 예우하는 절차가 더 이상 국민정서에 맞지 않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한층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민주주의의 성장은 인터넷 발달에 힘입어 대중의 정치참여가 활발해진 점, 1997년 IMF 위기로 국가권력이 위축된 점, 김영삼에 이은 김대중의 집권으로 3김 시대가 막을 내려감에 따라 정치세력들이 탈권위주의 질서를 모색한 점 등에 기인했다.

2002년 대선에 출마한 노무현과 정몽준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공약하고, 내각제를 꿈꾸는 김종필이 이에 호응한 사실로도 확인되듯이, 21세기 들어 한국 정치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시민들의 힘을 키우는 쪽으로 움직였다.

국제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6·15 남북공동선언, 북·일 수교교섭, 대만·중국의 양안 교류 확대 등이 보여주듯이 2000년 전후에는 동북아에 해빙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외적 위협 요인이 감소하면서 내부적으로 강력한 권력이 등장할 필요성이 약해진 것도 한국 정치에 영향을 줬다. 이런 제반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20세기 막판 10년간의 현상이 21세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당에 발을 들이미는 대통령?
 

친윤계 모임 참석하는 권성동-이철규지난 2022년 12월 7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의 공부모임 '국민공감'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 모임의 총괄 간사를 맡고 있는 이철규 의원도 보인다. ⓒ 남소연


지금 국민의힘에서 제기되는 명예대표직은 과거의 명예총재직과 다른 측면이 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때의 명예총재직은 현직 대통령을 집권당에서 평화적으로 밀어내는 과정의 산물이었다. 반면, 지금 논의되는 것은 대통령이 집권당에 한 발 들이밀도록 하는 의미가 강하다.

지금도 여전히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집중된 한국 정치 구조를 감안하면, 명예대표직 겸직은 대통령에게 더 많은 힘이 쏠리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집권당에서 한발 더 물러서도 시원찮을 대통령이 한발 들이미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의 세계 흐름에 비춰볼 때도, 명예대표 겸직은 긍정적이지 않다. 푸틴·시진핑·트럼프·네타냐후(이스라엘)·보우소나루(브라질) 등의 사례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세계 곳곳에서는 경제위기나 대중권력 강화에 맞서 강력한 국가권력을 구축하려는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스트롱맨 현상으로 불리는 이런 움직임은 시민권력의 강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에 역행하려는 정치적 욕심이 빚어낸 현상인 측면이 강하다. 권력을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시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국민이 아닌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조치는 대중의 생존 여건을 한층 팍팍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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