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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마다 '대출중'인 그 책, 새학기에 추천하는 이유

[서평] 나를 찾아 떠나는 노든의 여정 <긴긴밤>

등록|2023.02.19 11:17 수정|2023.02.19 11:17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 기사에는 책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구내 모든 구립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만 모두 대출 중이어서 이용할 수 없었던 책이 있다. 미술 이론을 공부한 루리 작가가 그리고 쓴 <긴긴밤>. 이 책의 문학성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온라인서점 YES24와 알라딘의 2021년 올해의 책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고, 제59회 전국도서관대회 어린이 분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 p.7

책 <긴긴밤>은 알쏭달쏭한 독백으로 시작된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첫 장의 독백이 비로소 이해된다. 책을 읽는다면 완독 후 첫장으로 반드시 돌아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돌봄'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특히 새 학기를 앞둔 어린이들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강력 추천. 아마도 주인공 노든에게 금방 몰입하게 될 것이다.

코끼리, 노든, 앙가부, 치쿠와 윔보, 이름 없는 펭귄까지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긴긴밤' ⓒ 문학동네


책 <긴긴밤>은 코끼리 고아원에 살던 코뿔소 노든이 코뿔소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나면서 겪는 긴 여정을 그린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과 노래가 있다. 책 <긴긴밤>은 아동문학 버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 p.12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한다. 코끼리들은 생김새가 다른 코뿔소 노든에게 살갑게 대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왜 노든은 살가운 코끼리들이 있는 고아원을 떠나기로 한 걸까? 어느 날 까마귀에게 고아원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코뿔소들이 바깥에 있음을 알게 된다. 닮은 듯 다른 코끼리들 사이에서 살아온 노든은, 뿔이 난 자기와 닮은 코뿔소가 있다는 바깥세상이 궁금해졌다.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그날부터 '긴긴밤'이 시작된다. 때론 혼자였지만 누군가와 동행할 때가 많았다. 고독한 긴긴밤을 보내기도 했고 누군가와 함께 머물고 걸으면서 긴긴밤을 보내기도 했다.

바깥세상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바깥세상에서 자신과 닮은 코뿔소도 만나 가족이 되었다가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혼자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동물원 사람들에게 붙잡히면서 앙가부라는 코뿔소 친구를 만난다. 이후로는 동물원 펭귄 치쿠를 만나고 치쿠와 함께 알을 품으며 바다를 찾아 떠난다. 안타깝게도 치쿠는 목숨을 잃지만 결국엔 노든 덕분에 밤하늘 별빛 아래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기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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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바깥세상에서 동물원으로, 또다시 바깥세상과 바다까지 이어지는 노든의 여정. 결국 노든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름 없는 펭귄은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까지 이어온 돌봄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바다에 닿는다.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 p.115

새 학기를 앞둔 학생, 선생님, 학부모, 보호자 모두에게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 p.15

노든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섰지만, 단순히 노든 자신만을 위한 여행은 아니었다. 긴 여정 위에서 만난 존재들과 서로 의지하고 돌봤다. 할머니 코끼리에게 받은 사랑과 응원을 발판 삼아 용감하게 떠날 수 있었고, 아내를 만나 바깥세상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동물원 내 코뿔소 앙가부에게 가르쳤고 앙가부는 동물원의 규칙을 배웠다. 돌봄의 연속.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3월이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괜스레 마음이 들뜨고 어수선해진다. 새 학기를 맞이해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알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면 불안함과 기대감이 함께 몰려오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지식을 향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때문 아니었을까.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다른 코뿔소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든을 코뿔소답게 만들었다. -  p.22

공동체 관점에서 보자면 학교는 단순히 지식만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다. 사회적 관계 맺음을 학습하는 장이다. 공동체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을 인식하고 경험하게 된다.

책 <긴긴밤>에서 노든의 여정 또한 단순히 코뿔소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경험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다. 서로가 다름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다름을 포용하고 돌본다.

새 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들 곁에 있는 선생님과 학부모, 보호자가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설렘과 두려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선행학습으로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독 뜨거운 학구열과 경쟁의식 때문에 선행 학습에 치여 지내는 건 아닌지 걱정도 앞선다. 자식도 없는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 정도만 잠시 멈춰 서서 이 책을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책 <긴긴밤>을 추천하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이 책은 동물권을 교육하고 토론하는 교재로도 부족함이 없다.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 간 공존에 관해 고민해 보고 상상해 보게 되기 때문이다.

노든이 비인간동물만 만난 건 아니다. 노든 무리를 공격하고 코뿔소의 뿔을 착취하는 사냥꾼들이 있었다. 반면 멸종위기동물이라는 이유로 노든을 붙잡아 동물원에서 보호하는 인간들도 등장한다. 이는 보호인가, 감금인가. 충분히 토론해 볼 만한 주제 아닌가?

공존이란 가능한 것인지, 비인간동물에게 가하는 인간동물의 불가피한 개입은 어느 영역까지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물론 생추어리(위급하거나 고통받는 환경에 놓인 동물을 돌보는 구역)와 같은 돌봄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 마치 노든과 다른 동물이 보여준 이상적인 돌봄 관계처럼 말이다.

다만 노든과 같이 이 세상에 단 하나 남은 멸종동물이라는 이유로 동물원이나 생추어리에 가두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학교와 사회가 깊게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동문학은 아동만 읽는다는 편견을 부수는 책

성인인 필자도 노든의 여정을 응원하면서 읽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노든의 여정에 내 삶을 투영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평소 하고 싶은 연구를 수행하며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졸업하고 대학원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다. 물론 학교에 더 남아 있고 싶어도 졸업생 신분이라 남을 수 없다는 점이 노든과는 다른 신세다. 여전히 불안하고 흔들리고 있지만 새롭게 펼쳐질 여정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시라. 아동문학이라고 어린이에게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란 오해 말이다. 우리는 아동문학이 아동에게만 적합하다는 편견을 깰 필요가 있다. 이 책이 그 편견을 부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책 <긴긴밤>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도전하려는 이들에게도 위로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마음 속 어딘가 흔적으로만 남아 있던 동물권 감수성을 깨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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