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장을 넘보는 딸, '내면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잠자리에서 아이와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읽으며 도란도란
▲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헨리 블랙쇼 지음·서남희 옮김, 길벗스쿨, 2020), 가격 13000원 ⓒ 길벗스쿨
점심 무렵, 외출 준비로 분주하다. 새로 시작한 일로 많이 들떠 있다. 앞머리를 돌돌 말고 거울 보며 변장 중이다. 큰딸 방에서는 기타 선율이 문 너머로 들려온다. 몇 달 전 새로 산 악기에 흠뻑 빠져 날 새는 줄 모른다. 독학으로 깨우쳐 가는 중이다. 딸은 손톱 아래가 아프다며 방에서 나온다.
딸 "(화장하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 오늘 어디 가?"
나 "응, 저번에 말한 약속에 가야 해서."
딸 "나도 엄마처럼 화장하고 싶어."
나 "그렇구나. 왜?"
딸 "엄마처럼 화장하면 왠지 어른이 된 것처럼 기분 좋아질 것 같아서."
엄마 "그래. 엄마도 네 나이 때는 그랬단다.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화장품이 얼마나 바르고 싶었는지 몰라. 그 맘 이해해. 요새는 못난 얼굴 가리느라 화장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해. 화장 말고 변장."
말랑말랑 올록볼록 귀여운 뱃살과 엉덩이, 볼살을 자랑하던 파마머리 아이는 쑥쑥 자랐다. 얼마 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키는 어느덧 엄마만큼 자라 아빠와 걷는 뒷모습을 보면 새로운 여자친구냐며 놀려대는 짓궂은 엄마가 되었다. 이젠 엄마의 화장을 넘본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
▲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Henry blackshaw ⓒ 길벗스쿨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사는 줄 알았다.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훌쩍 커 버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면 아이가 불쑥 머리를 내밀곤 한다.
내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평생 자라지 않는 마음속 어린아이다. 호수 안 잠긴 돌처럼 마음 속 깊이 넣어두고 사느라 과거 상처나 아픈 기억을 잊고 산다. 살다 보면 가끔 스멀스멀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경험을 하곤 한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와 내면 아이를 간직한 어른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는 그림책이다 보니 삽화가 많다.
- 땡땡이 스타킹을 좋아하는 발레리나
- 야구모자가 잘 어울리고 미소가 멋진 아이
- 근육질의 운동선수
- 엄마처럼 뾰족구두를 신은 모습
각자 갈 길 가느라 바쁜 어른들이다. 서로 앞만 보고 간다. 그들은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 꿈을 안고 살아간다. 가슴 속 한켠에 묻고 가끔 꺼내 볼 것이다. 이런 적도 있었구나, 하며 추억을 더듬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모습을 타인에게 들킬까 봐 종종 두려울 때가 있다. 그 중 우산을 쓴 모습에 오래 눈길을 끈다. 억압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라고 한다.
▲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Henry blackshaw ⓒ 길벗스쿨
어른들의 내면에 꽁꽁 숨겨진 어린아이
어른들은 과거를 잊은 채 잰걸음으로 갈 길을 재촉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겨 놓는다. 우산은 내면을 숨기고 싶은 자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아이들이 새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갖고 싶은 것이 많다.
다만 잘 참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회사에 가면 상대방을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는 못된 내면 아이가 있기도 하다. 분노에 가득 차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뾰족한 말로 상대방 어깨가 움츠러들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즐겁고 재미났던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가 되어 이 책을 아이와 함께 읽다보니 자식들 키우느라 애쓴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 내가 어린시절의 나를 만나 안부를 묻는 시간이었다. 책 속 삽화를 보며 내 안에 있는 내면 아이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약속해 줄래? 네 안의 아이를 언제나 아껴주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겠다고. 왜냐하면, 그 아이는 네가 어른이 되는 것을…. 훨씬 재미있게 만들어 줄 거거든!"(본문 중에서)
책은 따스한 그림과 짧은 글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원서는 <Inner child>이다. 저자 헨리 블랙쇼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디자인 관련 직업)로,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거주한다. 영국 런던에서 공부를 마친 후, 자신만의 작품을 그리면서 어린이 책을 출간하고 있다. 옮긴이 서남희는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시리즈를 쓰고 <아기 물고기 하양이>시리즈, <동그라미>,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슬픔이 와도 괜찮아>등 수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멋진 어른을 꿈꾸는 아이와 퇴근 후 지친 부모가 잠자리에 도란도란 책 읽으며 아이와 멋진 어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화순매일신문에 실립니다. 네이버블로그(mjmisskorea, 북민지) "애정이넘치는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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