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딸기를... 고마 이제 우리도 부자다"
딸기 한 알에 떠오른 추억 하나와 행복
생활력과 친화력이 만렙인 동네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제철에 나는 식재료들의 원산지를 두루두루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산지의 농가와 직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력과 인맥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지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전국 유명한 갖가지 싱싱한 농수산물들을 대단히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음이다. 봄에 드는 초입이면 야들야들 연하디 연한 '미나리'를 밥상에 올릴 수 있고, 인근 동해바다에 배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김없이 때깔도 선명한 '고등어 한 손'이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식이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합체된 하루, 외식을 하러 나서는 길이었다. 동네친구들이 여럿 모여 있는 단톡방에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산지직송 딸기 한 박스에 만 오천 원입니다. 특상이랍니다."
"어? 벌써 딸기가 나왔어? 나 한 박스."
"아, 그쪽에 사장님이 주문 좀 받아주면 안 되냐고 전화가 왔어요."
"나도 한 박스!"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주문이 쏟아지는 게, 대화창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거래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 데다, 거래를 통해서 구입했던 거의 대부분의 농산물이 싱싱하고 품질이 최상급이었기에 주부 9단인 동네친구들이 마다할 리 없었다.
그 와중에 혹시나 주문량이 많지 않아 직접 가지러 가야 되면 패스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친구의 거대한 인맥이라면 이 주문은 거의 성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더군다나 그 사이 인근의 큰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슷한 품질과 양의 딸기가 13000원이라는 정보를 입수해서 가격 할인까지 받아 놓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제법 이름이 있는 산지의 딸기가, 그것도 싱싱하게 물이 오른 딸기 한 박스가 내 몫으로 할당이 돼 집으로 왔다. 딸기 몇 알을 흐르는 물에 씻어 꼭지도 따지 않고 먹는데, 과육에서 나온 단맛이 혀의 돌기 하나하나를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인공의 단맛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기에 딸기가 내뿜는 붉은 단맛이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단맛이 입에서 다른 장기로 전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기억 하나가 봄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아닌가.
거기엔 딸기를 먹기 위해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떠났던 대학생 시절의 어수룩한 내가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길을 한참 달려서야 닿게 되는 도시 인근의 딸기밭 입구, 스무 살의 내가 따가운 봄 햇살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기대에 찬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시절, 딸기는 참 귀한 과일이었다. 지금처럼 하우스재배가 용이하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재배를 한다 해도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대부분 노지 딸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딸기를 사 먹을 수 있는 집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여유가 있는 집들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같은 과 동기들이나 동아리 친구들이 모여 딸기밭으로 딸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큰 연례행사였다. 계절의 흐름도 지금과는 무척 달라 딸기를 먹으려면 4월을 지나 대학축제가 열리던 5월쯤을 기약해야 했는데, 딸기 여행을 위해 미리 비용도 비축을 해 놓아야만 했다.
지금처럼 돈만 있으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단 얘기다. 그래서 뭐랄까, 딸기밭을 직접 찾아가 싱싱한 딸기를 먹는 일은 대학생 정도나 돼야 누릴 수 있는 호사였던 것이다. 이런 얘길 아이에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무리 딸기가 맛있다 해도 그렇게까지 해서 딸기를 꼭 먹어야 했어?"
그래,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했었다. 4월에서 5월 사이 딱 한 철이 아니면 딸기를 맛볼 수 없었기에...... 딸기가 가진 봄의 맛, 달콤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산도가 살아 있는 그 맛은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런데 2월에 딸기라니! 그것도 한 자리에서 다 못 먹을 만큼 많은 양이라니! 딸기의 하우스 재배가 이뤄지고 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어느 날, 엄마는 말씀하셨더랬다.
"야이야, 딸기를 이래 겨울에도 먹을 수 있으니 참 신기하다 아니가, 그라고 딸기를 눈치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네 고마 이제 우리도 부자다. 그쟈?"
산지에서 바로 따 내 곁으로 온 딸기 몇 알에 마음이 너무 풍성해진다. 소소하지만 꽉 찬 행복이라고나 할까. 우수가 지났다고는 해도 아직 시린 바람이 남아 있는 2월에, 봄의 향기를 미리 전해 준 딸기로 인해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 기분, 너무 감사하다. 그래, 살아간다는 것은 늘~ 감사함을 전제로 함이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지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전국 유명한 갖가지 싱싱한 농수산물들을 대단히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음이다. 봄에 드는 초입이면 야들야들 연하디 연한 '미나리'를 밥상에 올릴 수 있고, 인근 동해바다에 배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김없이 때깔도 선명한 '고등어 한 손'이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식이다.
"산지직송 딸기 한 박스에 만 오천 원입니다. 특상이랍니다."
"어? 벌써 딸기가 나왔어? 나 한 박스."
"아, 그쪽에 사장님이 주문 좀 받아주면 안 되냐고 전화가 왔어요."
"나도 한 박스!"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주문이 쏟아지는 게, 대화창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거래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 데다, 거래를 통해서 구입했던 거의 대부분의 농산물이 싱싱하고 품질이 최상급이었기에 주부 9단인 동네친구들이 마다할 리 없었다.
그 와중에 혹시나 주문량이 많지 않아 직접 가지러 가야 되면 패스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친구의 거대한 인맥이라면 이 주문은 거의 성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더군다나 그 사이 인근의 큰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슷한 품질과 양의 딸기가 13000원이라는 정보를 입수해서 가격 할인까지 받아 놓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제법 이름이 있는 산지의 딸기가, 그것도 싱싱하게 물이 오른 딸기 한 박스가 내 몫으로 할당이 돼 집으로 왔다. 딸기 몇 알을 흐르는 물에 씻어 꼭지도 따지 않고 먹는데, 과육에서 나온 단맛이 혀의 돌기 하나하나를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 산지에서 직송된 딸기 ⓒ 김혜원
인공의 단맛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기에 딸기가 내뿜는 붉은 단맛이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단맛이 입에서 다른 장기로 전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기억 하나가 봄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아닌가.
거기엔 딸기를 먹기 위해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떠났던 대학생 시절의 어수룩한 내가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길을 한참 달려서야 닿게 되는 도시 인근의 딸기밭 입구, 스무 살의 내가 따가운 봄 햇살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기대에 찬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시절, 딸기는 참 귀한 과일이었다. 지금처럼 하우스재배가 용이하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재배를 한다 해도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대부분 노지 딸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딸기를 사 먹을 수 있는 집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여유가 있는 집들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같은 과 동기들이나 동아리 친구들이 모여 딸기밭으로 딸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큰 연례행사였다. 계절의 흐름도 지금과는 무척 달라 딸기를 먹으려면 4월을 지나 대학축제가 열리던 5월쯤을 기약해야 했는데, 딸기 여행을 위해 미리 비용도 비축을 해 놓아야만 했다.
지금처럼 돈만 있으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단 얘기다. 그래서 뭐랄까, 딸기밭을 직접 찾아가 싱싱한 딸기를 먹는 일은 대학생 정도나 돼야 누릴 수 있는 호사였던 것이다. 이런 얘길 아이에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무리 딸기가 맛있다 해도 그렇게까지 해서 딸기를 꼭 먹어야 했어?"
그래,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했었다. 4월에서 5월 사이 딱 한 철이 아니면 딸기를 맛볼 수 없었기에...... 딸기가 가진 봄의 맛, 달콤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산도가 살아 있는 그 맛은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런데 2월에 딸기라니! 그것도 한 자리에서 다 못 먹을 만큼 많은 양이라니! 딸기의 하우스 재배가 이뤄지고 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어느 날, 엄마는 말씀하셨더랬다.
"야이야, 딸기를 이래 겨울에도 먹을 수 있으니 참 신기하다 아니가, 그라고 딸기를 눈치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네 고마 이제 우리도 부자다. 그쟈?"
산지에서 바로 따 내 곁으로 온 딸기 몇 알에 마음이 너무 풍성해진다. 소소하지만 꽉 찬 행복이라고나 할까. 우수가 지났다고는 해도 아직 시린 바람이 남아 있는 2월에, 봄의 향기를 미리 전해 준 딸기로 인해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 기분, 너무 감사하다. 그래, 살아간다는 것은 늘~ 감사함을 전제로 함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혜원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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