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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딸기를... 고마 이제 우리도 부자다"

딸기 한 알에 떠오른 추억 하나와 행복

등록|2023.02.23 10:15 수정|2023.02.23 10:37
생활력과 친화력이 만렙인 동네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제철에 나는 식재료들의 원산지를 두루두루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산지의 농가와 직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력과 인맥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지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전국 유명한 갖가지 싱싱한 농수산물들을 대단히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음이다. 봄에 드는 초입이면 야들야들 연하디 연한 '미나리'를 밥상에 올릴 수 있고, 인근 동해바다에 배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김없이 때깔도 선명한 '고등어 한 손'이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식이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합체된 하루, 외식을 하러 나서는 길이었다. 동네친구들이 여럿 모여 있는 단톡방에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산지직송 딸기 한 박스에 만 오천 원입니다. 특상이랍니다."
"어? 벌써 딸기가 나왔어? 나 한 박스."
"아, 그쪽에 사장님이 주문 좀 받아주면 안 되냐고 전화가 왔어요."
"나도 한 박스!"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주문이 쏟아지는 게, 대화창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거래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 데다, 거래를 통해서 구입했던 거의 대부분의 농산물이 싱싱하고 품질이 최상급이었기에 주부 9단인 동네친구들이 마다할 리 없었다.

그 와중에 혹시나 주문량이 많지 않아 직접 가지러 가야 되면 패스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친구의 거대한 인맥이라면 이 주문은 거의 성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더군다나 그 사이 인근의 큰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슷한 품질과 양의 딸기가 13000원이라는 정보를 입수해서 가격 할인까지 받아 놓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제법 이름이 있는 산지의 딸기가, 그것도 싱싱하게 물이 오른 딸기 한 박스가 내 몫으로 할당이 돼 집으로 왔다. 딸기 몇 알을 흐르는 물에 씻어 꼭지도 따지 않고 먹는데, 과육에서 나온 단맛이 혀의 돌기 하나하나를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 산지에서 직송된 딸기 ⓒ 김혜원


인공의 단맛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기에 딸기가 내뿜는 붉은 단맛이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단맛이 입에서 다른 장기로 전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기억 하나가 봄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아닌가.

거기엔  딸기를 먹기 위해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떠났던 대학생 시절의 어수룩한 내가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길을 한참 달려서야 닿게 되는 도시 인근의 딸기밭 입구, 스무 살의 내가 따가운 봄 햇살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기대에 찬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시절, 딸기는 참 귀한 과일이었다. 지금처럼 하우스재배가 용이하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재배를 한다 해도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대부분 노지 딸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딸기를 사 먹을 수 있는 집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여유가 있는 집들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같은 과 동기들이나 동아리 친구들이 모여 딸기밭으로 딸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큰 연례행사였다. 계절의 흐름도 지금과는 무척 달라 딸기를 먹으려면 4월을 지나 대학축제가 열리던 5월쯤을 기약해야 했는데, 딸기 여행을 위해 미리 비용도 비축을 해 놓아야만 했다.

지금처럼 돈만 있으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단 얘기다. 그래서 뭐랄까, 딸기밭을 직접 찾아가 싱싱한 딸기를 먹는 일은 대학생 정도나 돼야 누릴 수 있는 호사였던 것이다. 이런 얘길 아이에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무리 딸기가 맛있다 해도 그렇게까지 해서 딸기를 꼭 먹어야 했어?"

그래,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했었다. 4월에서 5월 사이 딱 한 철이 아니면 딸기를 맛볼 수 없었기에...... 딸기가 가진 봄의 맛, 달콤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산도가 살아 있는 그 맛은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런데 2월에 딸기라니! 그것도 한 자리에서 다 못 먹을 만큼 많은 양이라니! 딸기의 하우스 재배가 이뤄지고 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어느 날, 엄마는 말씀하셨더랬다.

"야이야, 딸기를 이래 겨울에도 먹을 수 있으니 참 신기하다 아니가, 그라고 딸기를 눈치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네 고마 이제 우리도 부자다. 그쟈?"

산지에서 바로 따 내 곁으로 온 딸기 몇 알에 마음이 너무 풍성해진다. 소소하지만 꽉 찬 행복이라고나 할까. 우수가 지났다고는 해도 아직 시린 바람이 남아 있는 2월에, 봄의 향기를 미리 전해 준 딸기로 인해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 기분, 너무 감사하다. 그래, 살아간다는 것은 늘~ 감사함을 전제로 함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혜원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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