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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인 아사히 불법파견 2심 무죄... "김앤장 서면 받아쓴 수준"

불법파견 인정 대법원 판례와 상반... 법조계 "2심 판결대로면 모든 불법파견 정당화"

등록|2023.02.23 18:12 수정|2023.02.23 18:12

▲ 2021년 10월 18일 대구지법이 아사히글라스 측에 부과된 과태료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자 "아사히글라스 17억 8000만원 과태료 봐주기 재판! 니가 판사냐! 불량판사 OUT"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대구지법 청사에 붙었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파견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아사히글라스(현 AGC화인테크노·이하 AGC) 원·하청 사용자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혐의 사건'은 근로자 파견을 금지하는 제조업 생산 현장에서 원·하청 사용자에게 처음으로 1심 유죄가 선고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항소심 판결을 두고 대법원 판례는 물론 불법파견을 인정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2심(민사소송) 결과 등을 모두 무시한 자의적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노동계도 "판사가 사측 대리인 노릇을 하고 있다"라고 반발했다.

대구지법 형사4부(재판장 이영화, 배석 문채영·김아영)는 지난 17일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하라노타케시 AGC 회장과 AGC, B 하청업체와 대표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가 AGC 회장에게 징역 6월의 집행유예형을 선고한 지 1년 6개월 만에 1심이 파기됐다.

핵심 쟁점은 '위장 도급' 여부였다. 파견법은 사업주들의 무분별한 간접고용을 막기 위해 제조업 생산공정에 대한 인력 파견을 금지한다. 그러나 사업주들은 하청업체에 업무를 외주화하는 도급 계약을 악용해, 외양은 도급계약이나 실제는 인력파견인 '위장 도급'으로 법을 우회해왔다. 도급업체는 원칙상 원청과 업무적으로 직접적인 지휘·명령 관계를 맺지 않는다. 즉 도급업체가 원청과 '상당한 지휘·명령 관계'를 맺고 있다면 위장도급이자 불법파견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미 다른 민·형사 재판에서는 AGC의 불법파견을 여러 차례 인정했다. B 하청업체 해고노동자들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2심을 통해 자신들이 실질적으로는 원청 직원임을 확인받았다. 이들은 원청이 부당 해고기간 동안 자신들에게 임금을 줘야 한다는 '임금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도 승소하며 근로관계를 인정받았다.

이번 파견법 위반 혐의 1심에서도 30명이 넘는 증인이 출석하는 등 오랜 증거 조사가 이뤄졌다. 다른 민·형사 재판 과정에서 법원의 현장조사도 세 번이나 거쳤다. 고용노동부 수사 자료부터 원·하청 간 업무 관계가 자세하게 적힌 업무 지시서, 이메일 등 5000쪽 넘는 자료도 확보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2심 재판부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AGC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으며 근로자파견 관계를 형성했다 보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고 밝혔다. 원·하청이 맡은 업무는 서로 연동되지 않은 별개 공정이고, 하청업체 관리자가 독자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으며 하청업체는 전문성과 기술성을 담보한 독립적 생산조직이라는 것이다.

이례적인 2심 재판부의 판단... 대법원 판례도 '무력화'
 

▲ 2017년 12월 대구지검 김천지청의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 후 대구지검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한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과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들.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법조계에서는 2심 재판부가 사측에 유리한 증거들만 취사선택하거나 일부 사실을 왜곡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판결문을 검토한 장석우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이번 판결문은 근거 없이 판사의 '관심법'으로 썼다고 총평을 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보통 1심을 파기하는 경우 '이런이런 이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구절이 전혀 없다. 재판부 판단에 유리한 증거만 취사선택했고 사실이 왜곡된 부분도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재판부는 하청업체 관리자들의 증언을 배척하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수사 및 재판에서 '하청업체에 독자적인 작업 수행 권한은 사실상 없었다' '원청 지시와 다르게 생산일정을 정할 권한도 없고 작업인원·업무배치·정원 조정도 원청이 정해줬다' '신규채용도 원청 허가 없이 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밝혀왔다. 이번 사건의 핵심 증언이라고 볼 수 있지만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작업의뢰서, 생산지시서, 작업지시서 등 원청이 예상 수량이나 작업 방식 등 사소한 부분까지 일상적으로 지시한 자료가 방대하게 증거로 제출됐음에도, 재판부는 '업무를 구체화한 것'이라고만 해석했다. 1심이 "(하청업체가) 원청의 생산부서처럼 활동했다"는 근거로 본 증거들을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민법상 사업주의 지시권과 검수권(결과물에 대한 감독권한)으로 불법파견을 정당화한 대목이다. 원청이 상당한 지휘·감독을 행사하는지, 하청이 작업배치권과 인사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등 불법파견을 판단하는 기준이 대법원 판례로 확립돼 있는데, '민법 699조상 도급인(원청)은 수급인(하청)에 업무 이행 지시가 가능하다'는 법조항만 가지고 판례까지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는 "도급에서의 지시권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지시가 아니다. 가령 건물을 지을 때 '이런 건물을 지어달라'는 식의, 포괄적이고 비일상적인 지시"라며 "그러나 제조업의 사내하청은 그 특성상 원청과 일상적이고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지휘·명령 관계'를 맺는다. 파견에서의 지휘·명령과 도급에서의 지시권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2심 판결대로면 모든 사내하청, 불법파견이 다 도급인의 지시권으로 정당화되고 현행법의 불법 파견 금지 조항까지 무효로 돌린다"며 "나아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사내하청은 도급이 아니라 불법파견이라는 게 공식화됐다고 말할 정도로 판례 경향이 굳어졌다. 이에 비춰도 매우 이례적"이라고 비판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관련 재판을 빠짐없이 방청 중인 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은 "불법파견 징표를 사업자의 '검수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김앤장(법률사무소) 등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재판에서 끊임없이 되풀이한 주장이었다"며 "판결문이 김앤장 변호사들의 서면을 그대로 받아쓴 수준이더라"고 지적했다. 실제 AGC는 파견법 위반 사건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근로자 지위 확인과 임금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은 법무법인 태평양에 대리를 맡기고 있다.

차 지회장은 "판결문을 쓴 주심판사가 태평양 출신인데 영향을 준게 아닌가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며 "판사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보고 판단하라는 대법 판례까지 뒤틀어 전 노동현장에 불법파견을 확대하자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사히글라스지회는 "아사히글라스는 하청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문자 한 통으로 해고돼 9년째 다투고 있는 사건"이라며 "재판부가 대법원의 판례마저 무시하며 기업의 불법을 고의로 눈감아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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