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첩단 조작 사건 저열... 헌법상 권리 무력화"
[인터뷰] 장경욱 변호사가 제주·창원 간첩단 수사의 불법성 지적하는 이유
▲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는 통일진보운동단체 활동가를 조사하기 위해 10일 강제구인해 끌고가고 있다 ⓒ 정권위기 국면전환용 공안탄압저지 대책위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수서경찰서 앞, 네 사람이 국정원·경찰 합동수사팀(아래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사지가 붙들려 끌려 나갔다. 한 사람은 외투에 양말도 신지 못한 채 포대 자루처럼 질질 끌려 나가 차량에 태워졌고, 그의 가족은 연신 '안 된다'고 소리치며 차 보닛에 드러누웠다. 한 여성은 강제로 끌어내는 수사관들 완력에 의해 양 팔에 피멍이 선명하게 뱄다.
지난해 11월부터 언론이 '창원 간첩단'이라고 보도 중인 피의자 4명이 당한 일이다. 이들은 국정원이 불법적이고 날조된 증거로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고 있다면서 수사 시작부터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진술거부권은 수사기관이 자백 등을 받기 위해 진행하는 피의자 신문에서 어떤 진술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피의자에게 불필요하게 여러 차례 출석 요구를 하지 않는다. 특히 진술을 거부하거나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필요하게 반복적인 출석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법무부령 '인권보호수사규칙' 37조 6호)
그러나 현실에서는 진술거부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피해자들이 국가보안법 사건 당사자다.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거듭 밝혀도 구속 기간(최장 50일) 동안 거의 매일 경찰·검찰·국정원 조사실에 불려나가 온종일 '진술하라'는 강요를 듣는 게 다반사다.
오랜 기간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을 대리해온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는 지난 23일 검찰의 강제 구인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1월엔 국정원을 상대로도 같은 심판을 청구했다.
장 변호사는 지난 십수 년간 공안당국의 불법 수사를 비판하고 각종 고발, 소송을 통해 일부 관행을 개선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장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국정원의 간첩단 조작 사건"이라 규정하며 "검찰·국정원 모두 윤석열 정권의 위기 국면 전환을 위한 종북·공안몰이에 공정성, 인권보호 다 내팽겨치고 복무하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4일 장경욱 변호사를 전화 인터뷰해 이 사건을 대리하는 이유를 들었다.
▲ 2022년 4월 28일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남북경협사업가 김호씨 석방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장경욱 변호사. ⓒ 천주교인권위원회
"변호인도 없이 피의자 신문 진행... 직권남용으로 공수처에 고발"
- 이번 사건에서 또 다른 국정원·검찰의 불법 수사 문제가 있었나?
"피의자들을 속여 국정원 조사실로 끌고 가다 들켰다. 국정원이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다'고 거짓말해 유치장 밖으로 나오게 했다. 변호인이 도중에 이 사실을 알고 중단시켰는데, 이중 한 명은 이미 조사실에 있었고 변호인 없이 신문이 강행되고 있었다.
변호인 항의로 중단되면서 조사실 CCTV가 꺼지자, 국정원 이OO 수사관이 '우리 총들 수 있습니다. 나중에 총 드는지 안 드는지 지켜보십시오'라며 피의자를 협박했다. 국정원 조사실은 검찰·경찰과 또 다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외부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다. 무슨 일이 이뤄지는 지 감시를 못한다."(이OO 수사관은 이후 '정들 수 있습니다'라 말했다고 검찰에 밝혔다.)
- 변호인 없이 진행한 강제수사는 형사소송법의 기본도 안 지킨 게 아닌가?
"국정원이 변호인 없이 진행한 피의자 신문은 지난 5일 직권남용으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한 형소법 243조 위반이다. 당시 국정원은 피의자들에게 '변호인 없어도 조사할 권한이 있다' '변호사가 수사를 방해한다' '민변 변호사들 믿지 마라. 승소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동시에 진행 중인 '제주 간첩단 조작' 사건에서는 국정원이 피의자를 체포하면서 이를 변호인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피의자를 구속한 때 지체없이 변호인에게 통보해야 하는 형소법 87조 위반이다. 또 피의자가 변호인 참여를 요구했음에도 변호인 없이 피의자 신문을 강행했고, 곧 변호사가 중단을 요청했음에도 신문을 중단하지 않았다. 모두 직권남용으로 고발할 계획이다."
- 수사기관 출석 요구에 피의자가 출석하지 않아도 되나?
"피의자 신문은 임의수사로 출석 의무가 없다. 그리고 헌법은 진술거부권을 보장한다. 피의자들은 수사기관에 처음 출석 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내용의 자필진술서도 계속 써서 냈다.
헌법 12조는 형사상 불리한 진술 강요를 금지하고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은 전부 혹은 일부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진술거부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정한다.
'미란다 원칙'이 왜 있나? 피의자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진술거부권이 침해되고 허위 진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없으면 수사기관은 매일 피의자를 불러서 압박하는 등 자백을 강요하는 식으로 수사할 수 있다. 피의자 신문엔 허위 진술, 허위 자백 위험성이 상존한다. 국정원의 고문, 폭력, 허위자백 유도는 이미 과거 여러 간첩 조작 사건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활동가들이 국가정보원에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관으로부터 욕설, 총기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한 확인서. ⓒ 국가보안법폐지 경남대책위
허위자백 유도 중심의 국정원 수사는 여러 간첩 조작 사건들에서 확인됐다. 7년 간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누명을 쓰다 2020년 12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홍강철씨는 24시간 CCTV가 돌아가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독방에 감금돼 조사관 이외엔 누구도 만나지 못하는 생활을 6개월 간 하면서 '쓰레기 같은 새끼' 등의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수시로 들었다.
조사관이 생각한 대로 답하지 않으면 윽박이 돌아왔고, 이에 맞춘 진술서 작성을 강요당해 조사 당시 그가 쓴 진술서만 1000장이 넘었다. 국정원은 유우성씨 사건에선 아예 핵심 물증을 조작했고 '간첩이 맞다'는 진술을 만들기 위해 동생 유가려씨를 감금하고 폭행과 협박 등을 일삼아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
장 변호사는 "수사관이 피의자와 말을 섞어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건 수사기법"이라며 "검사가 티타임, 면담이라며 변호인 없이 피의자를 불러 회유나 공포심 조성 발언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정무조정실장 사례가 최근의 예다. 정씨는 변호인이 없을 때 검사가 면담을 하자며 불러 '변호사가 당신에게 도움되는지 잘 생각해라' '(나중에) 교도소 가서 강력범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할 수 있는데 괜찮겠나' 등의 말을 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조작·불법 쌓였는데... 언론 '종북몰이' 결탁 여전
- 검찰이 진술거부권을 보장한 사례는 없었나?
"2015년부터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다. 2019년 주한미대사관 담을 넘어 반미 시위를 한 사건에서 피의자들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니, 담당 검사가 조사의 실익과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석 통보를 취소한 적이 있다. 2015년께 '목사 간첩단 사건'에서도 검찰이 매일 출석 통보 관행을 중단한 적이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를 알면서도 싹 무시하고 과거 부활시키는 거다. 윤석열 정권 공안정국 조성에 복무하기 위함이다."
- 수사 과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조작'이라고 보고 있는데.
"국보법 사건 증거는 불법이거나 날조된 경우가 많다. 한 탈북자가 '북한에서 저 사람 공작원으로 일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고 그대로 진실로 인정하는 게 맞나? 문건을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안보상의 이유로 비밀이라고 하는데, 검증도 안 되는 걸 인정하는 게 맞나?
국정원 증거 조작은 유우성 사건에서 명백히 확인됐다. 불법 미행, 채증, 도청, 감청, 해외 공무원을 뇌물로 매수했을 가능성이 있는 증거를 법원이 인정하는 게 맞나? 언론 보도 내용, 김정일·김정은 등에 대한 생일축하문 등을 이메일로 발송하는 게 대한민국 존립과 무슨 관계가 있나? 수많은 국보법 사건들이 이런 식이다. (파악한 사실관계들에 비춰) 이번 사건도 불법·날조라 본다."
장 변호사가 지적한 대표적 사건은 2016년 'PC방 간첩사건'이다. 증인 곽인수씨는 국정원이 제시한 증거 사진 속 공작원 2명이 '각각 35년 전에 1년 간, 21년 전에 3개월 간 같이 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20~30년 전 기억을 토대로한 진술이라 신빙성이 의심됐지만 법원은 사실로 간주했다. 1995년 검거된 남파공작원 곽씨는 2008년부터 국정원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이로, 민변이 "공작원 관련 증언이 필요할 때 단골 출연하는 검찰 측 증인"이라고 지적한 인물이다.
▲ 지난 2월 3일 국정원 수사관들의 강제 구인 과정에서 상해를 입은 '창원 간첩 의혹 사건' 피의자 모습. ⓒ 정권위기 국면전환용 공안탄압저지 국가보안법폐지
- 언론보도만 보면 무시무시하다. '반국가단체를 결성해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공작금과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피의사실 공표가 저열한 수준이다. 검찰이 법원을 설득하려고 가져 간 영장 내용을 아예 기정사실화 해버리고, 혐의의 엄격한 증명이 아니라 소명한 정도를 가지고 범죄자로 몰고 가는 데 말 그대로 여론재판이다. 영장만 봐도 불법·날조 의심이 가는 증거가 많은데, 언론은 그 일방적인 것 갖고 사실처럼 쓴다. 기정사실화하고 나서 우리보고 또 해명을 하란다. 무슨 해명을 하냐. 무죄추정의 원리라던가, 엄격한 증거의 증명력,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고, 재판을 뭣 하러 받느냐."
- 구속영장 내용이 수사기관에서 흘러나갔다면 피의사실공표죄가 성립한다.
"'정권위기 국면전환용 공안탄압 저지 및 국가보안법 폐지 대책위원회'가 제주 및 창원 간첩단 조작 사건과 관련해 지난 1월 11일과 17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한 안보수사국장과 대변인, 조선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 기자 등을 피의사실공표금지와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국정원·검찰은 내로남불이다. 2013년 4월 민변이 유가려의 고문 피해를 처음 폭로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언론플레이 하지 말라'며 날뛰었다. 검찰은 2014년 '여간첩' 이아무개씨 간첩 조작 의혹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를 두고 재판 기록을 다른 목적(언론 제보)으로 써 형소법을 위반했다며 변호사를 수사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기소유예 처분까지 받았다. 이 제보는 공익적 목적이 있었지만,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는 무슨 공익적 목적이 있나?"
- 현재 상황은?
"현재 창원 사건으로 구속된 피의자 한 명은 30일째 단식 중이다. 구속된 이들 중엔 혈액암과 강직성 척수염을 앓고 있는 환자도 있다. 진술거부권 보장, 강제 인치 중단을 요구한다. 국정원이 자행한 직권남용, 강제 인치 과정에서 입힌 상해 등 모든 위법 행위에 법적 대응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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