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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여친 앞에서 애인이 치킨을 먹는다면

나는 어디까지 상대방의 육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등록|2023.03.03 10:54 수정|2023.03.03 10:54
비건으로서 선택권을 넓히고자 런던을 거쳐 베를린에 이사 와 살고 있습니다. 10년간 채식을 하며 일상에서 겪는 고충들과 동시에 더욱 풍부해진 비거니즘 문화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비건의 정체성으로 스스로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왔다하지만 나의 양육자들만 해도 여전히 육식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엄마와 아빠는 복날이면 내게 미안해하면서도 배려한답시고 내가 없는 사이 삼계탕을 끓여 먹곤 했다.

가족이기에 야속한 마음으로 왜 나만 빼고 둘이 챙겨 먹냐며 투정한 적도 있지만 단 한 번도 삼계탕을 먹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해외 거주에 자취 2년 차를 바라보며 요리 빈도 수가 늘었기에 아마 이제는 한국에 가면 손수 들깨버섯탕을 끓여드리거나 맛있는 채식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기지 정도는 발휘할 수 있을 거다.

런던으로 이주한 다음 일어난 일

아무리 내 삶에 비건인 사람이 많이 들어왔다 해도 여전히 그렇지 않은 이들이 주류이거나 대중이라 할 수 있는 지인들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살 때는 아무리 애쓰거나 배려받는다 해도 회식이나 모임에서 치킨 안주 등을 마주하는 것이 불가피했고, 주어진 상황 내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을 하겠다고 다짐했기에 그런 것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베지테리언/비건의 개념조차 낯설었기 때문에 지인들은 이 낯선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제법 진통을 겪었다. 얘가 치킨 정도는 먹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맥줏집에서 골뱅이나 강냉이만 먹겠다더니 그다음부터는 아예 맥주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기만 하는 게 아닌가.
 

▲ 닭 ⓒ 픽사베이


문제는 런던으로 이주한 다음부터였다. 비건 문화가 워낙 대중화된 도시라고 들었기에 이주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직장 동료들 대부분이 비건이라 처음으로 내 삶에 이것이 마침내 기본값으로 자리 잡은 것.

움츠러든 마음으로 '혹시 제가 채식을 해서 그런데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라고 눈치 보곤 했던 자아가 한껏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배려해주시겠어요?가 아닌 응당 배려받아야 할 권리로 인식하며 태도가 변한 것이다.

물론 내 성격에 권리 주장을 한답시고 이해관계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대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취하진 않는다. 그러나 휠체어로 이동하는 사람이 버스에 타면 승하차가 얼마나 오래 걸리건 승객들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 문화.

어느 식당에 갔을 때 채식 메뉴가 없다고 하면 게으르다는 인상을 풍기게 만드는 도시, 사회 전반의 분위기 등이 나 이외에도 본인이 가진 가치나 어떤 물리적/심리적 조건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용기 있는 소수의 목소리들이 누적되고 가시화 되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제는 비건이 삶의 중심이라고 생각되는 입장에서 나 또한 반대로 비건을 하지 않는 이들을 이해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친구가 내 앞에서 가공육 제품인 햄을 먹을 때 나는 그것을 폭력이 아닌 당사자에게 익숙한 서사와 문화로서 이해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비건이 아닌 사람과 연애하기 
 

▲ '난도스' 매장 ⓒ 언스플래쉬


런던에서 오래 연애를 했던 한 친구와 '난도스'라는 유명 치킨 체인점을 간 적이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끼니를 해결할 마땅한 곳이 없었고 마침 그곳에서 대세에 따라 비건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치킨을 먹는 이의 모습을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던 나는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다. 공존과 유연함도 좋지만 내게는 조리된 치킨의 이미지 자체가 너무 적나라해 왜 그곳에 가는 것이 괜찮을 거라 으레 짐작했던 것인지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사흘에 걸쳐 그 경험을 상대에게 어떻게 공유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매일 밤을 울었다.

데이트 초기 그는 주변에 '비건'인 사람이 나뿐이어서 우리의 만남이 걸림돌이 될 것이 있다면 아마 그 때문일 거라며 우려를 표했었다. 그렇기에 그날의 경험으로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었기에 두려웠다.

결국 며칠 후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울면서 얘기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앞으로 가능한 내 앞에서는 육류 식사를 지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양육자에게도 해본 적 없는 요청이자 제안을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그는 정말 육식을 하고 싶으면 나와 데이트하지 않는 때에 얼마든지 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흔쾌히 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8개월에 거쳐 만나는 동안 자신의 집 냉장고에 나조차 듣도 보도 못한 비건 제품들을 사들여 채우기 시작했다.

비건인 나도 비건이 아닌 그도 모두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노력과 정성에 너무 취한 나머지 때로는 그 친구와의 만남보다도 그가 보내온 문자 중 냉동고의 신상 비건 아이스크림 사진을 보고 더 흥분을 표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비건인 나란 사람과 그와 함께 따라오는 부가적인 문화 접근성에 대한 낯선 경험이 내게는 반대로 작용한다. 비건인 아닌 사람과 그들의 식문화/소비문화를 마주하게 될 때 그들이 폭력에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거친, 익숙한 방식을 따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전히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까지는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의 감정이 허용 가능한 부분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삼겹살집에 출입하지 않은 지는 10년이 넘었고 이제는 누구도 나를 바비큐 파티에 초대하지 않지만 어느 채식 식당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연락해온다. 나와 내 주변인들은 이렇게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들을 발견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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