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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추모 공간 만들어야" 어느 이태원 상인의 바람

참사를 기억하며 살아가기 위해... "공식적인 추모 공간이 필요합니다"

등록|2023.03.02 13:42 수정|2023.03.07 15:41

▲ 지난 2022년 11월 14일 오후 이태원압사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턴호텔 일대 골목의 통제가 풀려 추모의 글과 꽃이 놓여 있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슬퍼하고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던 시민 A씨의 말이다. 그의 바람처럼,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이태원 지역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약 4개월이 지난 2월 24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현장을 직접 찾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은 한산했다. 위로의 목소리가 담긴 포스트잇들만 외로이 붙여져 있었다. 5분에 한번 꼴로 추모객 한 팀 정도가 이태원 골목을 지나치며 찰나의 시간 동안 애도를 하는 정도였다.

참사 직후 이태원역 1번 출구 옆에 추모 공간이 마련됐을 당시에는 달랐다. 이 때 수많은 조문객들이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았다. 당시 조문객들은 인근 상권을 이용하며 상인들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추모 공간이 사라진 이태원
 

▲ 지난해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유족의 요청을 받은 재미교포 이기동씨가 희생자인 미국인 청년 2명의 사진과 국화꽃을 놓았다. 한국에 오지 못한 유족과 지인들에게는 사진을 찍어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애초 이태원 1번출구에 위치했던 추모 공간은 녹사평역으로 이전됐다. 이후 지난 2월 14일에는 녹사평역에 있던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서울 시청광장 시민분향소로 통합 이전됐다.

추모 공간이 사라지자 이태원 지역에 추모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이들의 수도 자연스레 줄은 듯했다. 실제 기자가 현장을 살펴보니, 추모 자체를 목적으로 이태원에 방문하는 이들은 드물어 보였다. 참사가 발생한 현장에서 추모 포스트잇을 작성하는 이들은 보기 힘들었다.

시민 A씨는 "아직은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라며 "애도를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날, 이태원세계음식거리에 들어서자 외국인 커플과 일부 거주민들만 오가고 있었다. 임대 문의가 붙은 가게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문을 닫은 듯 보이는 한 술집의 입구에는 수도요금청구서만 외로이 끼워져 있었다. 이 거리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B씨는 "참사 이후 찾는 손님들의 수가 줄은 것이 체감된다"고 밝혔다.

참사가 발생한 직후 발길이 끊긴 이태원 일대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추모객들의 존재는 상인들에게 버팀목이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에서 잡화점을 10년째 운영해 오고 있던 남인선씨는 "참사가 발생한 이후부터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난방비와 전기비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해 버티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변 상인들은 이태원을 찾는 이들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추모 공간의 부재를 뽑기도 했다. 남씨는 "추모 공간이 별도로 없다 보니 골목길에 잠깐 들렀다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아쉬워했다.

최근 시민분향소가 철거된 녹사평역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녹사평역에 추모 공간이 있었던 자리는 허허벌판이었다. 한때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들이 고이 놓였던 텐트와 천막들은 없어졌고, 위안부 소녀상만이 외로이 서 있었다. 녹사평 분향소가 있었을 때와는 달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 자체가 적었다.

이곳의 상인들 역시 추모 공간 철거의 여파를 체감하고 있다. 추모 공간 인근에 위치한 한 카페에 들어섰지만 단 한 명의 손님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작년 7월에 개업해 지금까지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사장 C씨는 "참사가 발생한 직후 평소에 방문하던 단골손님들이 이 장소를 기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녹사평역에 추모 공간이 생기고 나서부터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C씨는 "유가족, 자원봉사자, 시민들, 기자단, 유튜버, 정치인 등 많은 손님들이 카페를 많이 찾았다"고 부연했다.

"국가가 직접 추모 위한 공간 마련해야"
 

이태원 녹사평역녹사평역 분향소가 사라진 직후의 모습이다. ⓒ 설재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광장에 통합 설치된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를 '불법시설물'로 규정하며, 자진철거를 촉구해왔다. 다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2일 서울시의회 제316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철거를 위한 조치가) 시의적으로 맞지 않아 보류하는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태원 참사유가족협의회는 서울시에 온전한 추모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소통할 수 있는 사무실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협의회는 정부와 서울시가 이에 대해 제대로된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서울시에서 제대로된 추모 공간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변 상인들도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지역에 별도의 추모 공간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입을 모았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남씨는 "정부 혹은 서울시가 별도로 건물을 구매한 다음 문화복합공간을 조성해 시민들이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미국 9.11참사테러 이후 마련된 911 메모리얼 파크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카페를 운영하는 C씨도 이러한 제안에 대해 "뜻깊다고 생각한다"며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 추모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힘을 보탰다.

시민 B씨도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보탰다. 그녀는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모 공간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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