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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봄'이 오나 싶었는데... 남도엔 매화가 하나둘

전라남도 진도와 남해로 떠나는 봄맞이 여행, 매화꽃을 찾아서

등록|2023.03.04 11:38 수정|2023.03.04 11:38

▲ 미황사 홍매. ⓒ 성낙선


겨울이 길긴 길다. 좀처럼 추위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남도에 봄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이미 2월 중순부터, 남도 여기저기서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매화꽃이 만개했다. 날이 아무리 춥다고 해도 그런 소식들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매화꽃은 우리 곁으로 봄이 얼마나 빨리 다가오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꽃이다.

이쯤 되면, 서울에서도 봄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들을 만도 한데, 아직은 어림도 없어 보인다. 날이 좀 따듯해졌나 싶으면, 이내 다시 찬바람이 불어 몸이 움츠러든다. 마치 밀당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날씨에는 설중매조차 얼굴을 내미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럴 때면, 문득문득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다는 남도가 그리워진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늦겨울,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으로 매화꽃을 찾아서 조금 이른 봄꽃 여행을 떠난다.
 

▲ 꽃눈이 맺힌 상태로 봄을 준비하는 운림산방 '일지매' 나뭇가지. ⓒ 성낙선


올해 진도에서 처음 맞이하는 매화꽃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보다 1.5배가량 더 크다. 해남에서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진도대교를 건너, 섬 남쪽 끝까지 내려가는 데 승용차로 최소 40여 분이 넘게 걸린다.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아니라, 풍경이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우회하게 되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당연히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진도 남쪽 끝 바닷가에 진도자연휴양림이 있다. 진도자연휴양림은 전국의 자연휴양림 중에서도 바닷가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휴양림 숲속의 집에 앉아서 창밖으로 잔잔한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둥근 섬들을 바라다볼 수 있다. 남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이번에 땅끝이나 다름 없는 진도 남쪽 끝까지 여행을 오게 된 건 이 바닷가 풍경을 보기 위한 게 아니다.
 

▲ 진도 자연휴양림. 산등성이 핀 매화꽃. ⓒ 성낙선


이곳 자연휴양림에서 올해 처음으로 매화꽃을 마주한다. 감회가 새롭다. 남도라고 해서 매화나무가 모두 꽃을 피운 것은 아니다. 매화꽃은 아직 남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아무리 남도 해안가라고 해도 꽃을 피운 매화나무보다는 그렇지 않는 매화나무가 더 많다. 일부는 먼저 꽃을 피우고, 일부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나마 자연휴양림에서 매화꽃을 볼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였다.

매화꽃이 피는 시기가 그 해의 기후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매화꽃이 피는 시기가 일주일가량 빠르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매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울 시기가 아니다. 보통 남도 해안가의 경우 2월 중하순부터, 그리고 남도 내륙 쪽으로는 3월 중하순부터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매화축제로 유명한 광양의 경우 이미 2월 중순부터 매화꽃이 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꽃이 만개할 것을 보려면, 축제가 한창인 3월 중순경은 돼야 할 것 같다. 서울에서는 3월말부터 매화꽃이 피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화꽃이 피는 시기와 상관없이, 남도는 역시 남도인 모양이다. 들판 어디에서든 봄기운을 가득 품은 풀들이 돋아나는 걸 볼 수 있다. 길섶으로 잡초들이 제법 무성하다.
 

▲ 첨찰산 아래 고즈넉한 풍경의 운림산방. ⓒ 성낙선


따듯한 봄날을 기다리는 운림산방 '일지매'

운림산방 너른 잔디밭 위로 따듯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이런 날씨면, 운림산방 경내 곳곳에 매화꽃이 피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여행을 온 시기가 조금 일렀다. 지금 운림산방에서는 실제 매화나무에 핀 매화꽃보다 '화폭에 그려진 매화'를 더 많이 봐야 한다. 운림산방은 남종화가의 대가인 소치 허련 선생이 "(1856년경) 한양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진도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저술 활동을 하던 곳"이다.

허련 선생은 시,서,화에 모두 능통한 인물이었다. 허련 선생과 그의 후손들이 남긴 작품들이 운림산방 내 소치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운림산방 경내로 들어서면 첨찰산 아래로 소치 화실과 고택, 그리고 운림지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이 마치 허련 선생이 남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운림산방은 주변 경관이 뛰어나, 2011년에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80호'로 지정됐다.
 

▲ 운림산방 소치기념관, 허련의 묵매도병풍. ⓒ 성낙선

 

▲ 운림산방 일지매, 꽃눈이 맺힌 나뭇가지. ⓒ 성낙선


운림산방은 '일지매'가 유명하다. 소치기념관 앞 잔디밭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옆으로 길게 가지를 뻗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일지매는 '대흥사 일지암'에 머물던 초의선사가 허련 선생이 진도로 돌아와 살면서 만년에 운림산방을 지어 올린 걸 기념하기 위해 선물한 매화나무의 자손이라고 한다. 원래의 매화나무는 1995년에 수령 187년으로 수명이 다해, 나중에 그 자손 중에 한 그루를 이곳에 옮겨다 심었다는 얘기다.

일지매는 초의선사가 머물던 작은 암자인 '일지암'에서 따온 말이다. 조선시대 의적(그냥 도적에 불과하다는 설도 있다)으로 등장하는 '일지매'나, 일제 강점기에 가면을 쓰고 항일운동을 벌이던 가상의 인물인 '일지매'와 혼동이 생길 수도 있는데, 운림산방의 일지매는 그들 일지매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 그래도 일지매하면, 은연중 머리 속으로 매화꽃이 활짝 핀 나뭇가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아쉽게도 운림산방 일지매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다만 나뭇가지에 잔뜩 꽃눈이 맺혀 있는 걸로 봐서는, 날이 좀 더 따듯해지는 3월 초순에는 꽃망울을 터트릴 것으로 보인다. 일지매 말고도, 운림산방에는 '이름 있는' 매화나무가 여러 그루다. 운림지 주변과 운림사 쪽으로 '운림소매', '소치매', '운림매', '운림원앙매' 등 고유의 이름이 붙은 매화나무들이 있다. 그 나무들 역시 채 꽃이 피지 않았다. 하지만 운림산방에서도 봄기운이 물씬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 진도 쌍계사 풍경. ⓒ 성낙선


풀꽃 한 송이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봄'

운림산방에서 매화꽃을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운림산방 옆 쌍계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쌍계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절 양 옆으로 계곡물이 흐른다. 절은 아담하지만, 역사는 꽤 오래돼 867년(신라 문성왕)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쌍계사는 절도 절이지만, 사실상 계곡이 더 유명하다. 쌍계사 계곡으로 울창한 상록수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숲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록수림 중의 하나다. 천연기념물 107호로 지정돼 있다. 쌍계사 옆 첨찰산 등산로를 따라서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푸른 나무들이 무성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나무숲이 어찌나 푸르고 싱싱한지 지금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게 쉽지 않다. 상록수 나뭇가지 사이로 언듯언듯 붉은 동백꽃이 비친다. 어쩌면 이 숲에서는 계절이 이미 봄을 지나쳐 여름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 ⓒ 성낙선

 

▲ 동백꽃 한 송이. ⓒ 성낙선


쌍계사 상록수림을 떠나서는 다시 진도대교를 넘어 해남 미황사로 자리를 옮긴다. 미황사는 그 이름에 '아름다울 미'자가 들어가 있는 게 전혀 무색하지 않은 절이다. 대웅전 지붕 위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달마산 봉우리들이 높이 올려다 보인다. 달마산은 '남해의 금강산', 또는 '남도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산봉우리들이 금강산을 연상시킨다. 그 아름다운 경관으로, 2009년에 미황사와 달마산이 함께  '명승 제59호'로 지정됐다.

미황사 역시 쌍계사 이상으로 오래 된 천년고찰이다. 749년(신라 경덕왕 8년)에 창건됐다. 이런 절에 보물이 없을 수 없다. '대웅보전'이 보물 제947호로, 그리고 '응진당'이 보물 제1183호로, '괘불탱화'가 보물 1342호로 지정돼 있다. 대웅보전은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대웅보전 주춧돌에는 특이하게도 게와 거북이 같은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남도 끝까지 와서 그 동물 조각들을 볼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
 

▲ 미황사 건물 뒤로 달마산 산봉우리가 높게 올려다 보인다. ⓒ 성낙선


그래도 쌍계사에서는 보지 못했던 매화꽃을 미황사에서 다시 보게 된다. 민하당과 달마전 주변에 홍매와 백매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하지만 그곳들 모두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곳이어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할 수 없이 건물 밖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자니 자꾸만 초점이 빗나간다. 적당히 찍고 돌아설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은 길가에 피는 풀꽃 한 송이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봄'이다. 담장 너머에 있는 매화나무 한 그루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언제 봄이 오나 싶었는데, 그 봄이 어느새 코앞이다. 서울에서도 봄꽃을 보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매화가 만개할 무렵이 되면, 전국적으로 매화축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 열리는 축제들은 코로나 이후로 중단됐다가 다시 열리는 축제가 대부분이어서 예년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 어디를 가든,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미황사 백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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