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 보던 교사들이 무너진 까닭
서울교사노조 250명 집단관람 소감문에 나온 반성..."소희 회사와 학교 칠판, 현실과 똑같다"
▲ 영화 <다음 소희> 장면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다음 소희>는 내용을 따져보면 사실상 교원 저격 영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교사와 교감은 하나 같이 학생 취업실적 경쟁에 찌들어 산다. 그러다보니 특성화고 실습생인 소희와 같은 학생의 고통은 뒷전이다. 결국 영화 속 교원이 실랑이 중 형사로부터 주먹으로 맞을 정도로 소위 '밉상'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처럼 교원에겐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영화를 교사 250여 명이 모여 집단으로 관람했다. 서울교사노조가 지난 2월 24일 서울의 한 영화 상영관을 통째로 빌린 것이다. 그런데 "참가 안내문을 교사들에게 돌린 뒤 단 1분 만에 신청자 250명이 순식간에 마감됐다"는 게 서울교사노조의 설명이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3일 <오마이뉴스>에 "교사는 모든 계층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 담론은 대학 입시 위주로만 흘러간다. 이 속에서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면서 "제2, 제3의 소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교사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단 관람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 지난 2월 24일 '다음 소희' 영화를 보는 250여 명의 교사들. ⓒ 윤근혁
상영관 스크린 안에서 성실하게 춤을 배우던 소희가 현장 실습을 나간 뒤, 학교 교사의 무관심과 회사 간부들의 강압 속에 끝내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 모습은 무겁지도 일부러 슬픔을 자아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교사들로 꽉 찬 영화관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이 영화를 본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까? 교사들이 영화 뒤 직접 쓴 소감문을 살펴봤다.
특성화고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특수학교 진로전담교사를 맡고 있다는 한 교사는 "영화를 보면서 결국 그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고 적은 뒤, 그 이유에 대해 "그의 죽음이 슬펐던 것이 아니라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도 '참으라'고 이야기하던 선생이 나였음에 그랬다"고 자신을 되돌아봤다.
"(영화 속 소희의 교사 모습은) 과거 업체 등을 돌아다니면서 취업 좀 시켜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내가 지도하던 학생들을 취업시키고는, 그 아이들이 '힘들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내게 하소연하고 그만두고 오기라도 하면 야박하게 굴던 내 모습이었다. '소희'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할 때 내가 했던 말과 똑같이 설득하던 (영화 속) 담임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보았다."
이 교사의 소감문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영화에는) 소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형사의 모습이 나온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그런 애를 여기에 보내서....'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인식이 10·29 참사나 세월호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도, (오히려 피해자인) 개인을 조롱하고 욕하는 시대를 만든 것 같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학교는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있어야 할 텐데 '다음 소희'는 학교 또한 그렇지 못하다고 말해 준다"면서 "카메라가 소희가 다녔던 회사, 학교, 교육청 칠판을 똑같이 비췄을 때 그 똑같음(학교별 실적과 등수를 적어놓은 똑같은 글귀)에 저는 교사로서 무너지고 말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어 이 교사는 "우리가 마음 속에 그런 칠판을 안 가져 봤던 적이 있을까? 서울대에 몇 명 진학, 의대에 몇 명 진학... 소희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 모른다"면서 "교사로서 이러한 환경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학교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소희 같은 피해 학생 나오지 않게"
한 고교 교사는 "상영이 끝나고 나서도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냥 눈물이 줄줄 나더라. 그 예쁜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고, 힘들다는 말도 못하게 만든 어른들이 다 미워져서 그랬다"면서 "(이 영화를 본)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고 새 학기를 맞이한다"고 적었다.
▲ 지난 2월 24일 극장에서 '다음 소희' 영화표를 나눠주는 서울교사노조 집행부들. ⓒ 윤근혁
한 유치원 교사는 영화를 본 뒤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소희'는 아마 끝없이 나올 거예요. 내가 큰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음 소희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갈 수 있도록 모두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고 함께 싸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