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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다른 우주의 글자가 아니었네요

[최우수상] <조국의 법고전 산책> 독후감 대회 청소년 수상작

등록|2023.03.12 22:07 수정|2023.03.12 22:48
<조국의 법고전 산책>(조국 지음)을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15권의 고전을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와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최우수상(청소년)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며 선택 과목을 정할 때, 우리 학년 절반 이상의 문과가 '정치와 법'을 택할 때, 나는 '윤리와 사상', '사회문제 탐구' 그리고 비인기 과목(소문으로는 20명 내외가 수강한다는)인 '한국 지리'를 택했다. 그렇다. 나는 법에 관심이 없다. 암기만으로 해결되는 학문이라면 학을 뗀다.

법에 관심이 없으니 당연히 <조국의 법고전 산책>에 나오는 열다섯 권의 법고전 중 그 어떤 것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이 책을 꺼내 든 이유는 전적으로 우리 어머니에게 있다.

2019년, 일명 '조국 사태'로 나라가 떠들썩하던 무렵 어머니께서는 뉴스만 틀면 먹던 숟가락도 놓고 일장 연설을 펼치셨다. 조국이, 문재인이, 보수가… 조국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끝내 한탄으로 퍼졌다.

나는 정말이지 엄마가 '정치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귀가 터질 것 같았다. 불난 데 기름 붓듯 어머니께서는 조국 저자의 다른 책 <조국의 시간>까지 사 오셨는데, 정치라면 질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읽었다.

자유는 자유, 평등은 평등
 

▲ 조국의 법고전 산책 ⓒ 이은영


책을 읽는 내내 사실 저자의 사설이 엄청 긴 교과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 흥미롭기도(특히 조국이 설명하는 철학자의 전반적인 생애 부분에서) 때로 감명 받기도(하나를 꼽자면 '현명함의 마지막 결론은/날마다 자유와 생명을 쟁취하는 자만이/그것을 향유한다는 점이라'에서) 또 때로 어렵고 지루하기도 한 책을 나는 꾸준히 형광펜을 그으며(책을 꺼내들었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이 책을 e북으로 읽었다) 페이지를 넘겨 갔다.

고전 법에 대하여 내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그 시절에도?' 였다. 지금은 21세기다. 수많은 문명이 발달했다. 나는 더 이상 펜으로만 글을 쓰지 않고, 책을 읽기 위해 종이책만을 사는 것은 아니며, '조국의 법고전 산책'이라는 글을 몇 번의 손가락 놀림으로 쉽게 찾았다.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런데도 그 시절, 수백 년 전의 법, 그리고 사상은 현재와 상통하는 부분이 다수라는 점에서 나는 꽤 놀랐다. 어째서 저자 조국이 21세기까지 와서 수백 년 전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비록 세부적인 것은 이 세상처럼 아주 많이 달라졌으나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근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사회 수업 시간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해 달달 외우면서도 나는 그리 큰 감흥을 얻지 못했다. 자유와 평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게 아니라, 뭐랄까, 음절이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나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단어 같았다. 다른 우주의 글자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내게 '권리'는 수학 공식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자유와 평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색하다가 왜인지 내가 멍청하다는 생각에 휩싸이곤 했다. 1이 어째서 1이고 2가 어째서 2인지 의문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노동자'를 예시로 들어주고, 또 저자 또한 본인이 절대 권력자가 아님을 상기해서 나는 처음으로 법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며 자유와 평등을 수식처럼 느끼지 않게 됐다. 그건 내 생각처럼 아주 고차원의 어떤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자유는 자유다. 평등은 평등이다.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고,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내가 가장 먼저 메모한 구절은 "만약 이런 식으로 '네 일이나 잘하라'는 요청을 따르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정치에 관심을 끊고 학교 캠퍼스에 틀어박혀 있거나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만 하고 농민이 논밭에서 농사만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정치는 특정 사람,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민주공화국은 이 나라의 주인이 바로 우리라는 뜻입니다. 나라 운영의 원리와 방향을 정하는 것이 정치인데, 나라의 주인이 그러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이다.

두 번째로 메모한 구절은 "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이다. 내가 이 구절에 마법처럼 끌렸던 것은 어쩌면 지금 나라의 정세와 긴밀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우리 부모님의 정치 성향을 따르게 된 면이 없지 않으니까.

내 나이까지는 아직 정치를 개그 프로 보듯, 자신하고는 완전히 분리된 세계라고 생각하는 애들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럴 때마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라는 곪아가는데 칠판에 '엉덩이 탐정' 따위를 끄적이며 낄낄대는 또래들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여태 살면서 지도자의 필요성을 여러 번 절감했는데, 요새는 진지하게 의문이 든다. 지도자는 필요한가? 설령 그 사람의 역량이 부족해도? 절대 다수가 그의 지도를 거부하는 데도? 우리가 책으로만, 글로만 '정치'를 배우는 데 뾰족한 비판 혹은 비난을 날리고 싶다.

앞서 말했듯 내가 자유와 평등을 수식처럼 느끼게 된 것처럼, 정치 또한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아직도 몇몇 젊은 사람들은 부모님이 찍어주는 대표자에게 투표한다. 심지어 더러는 유권을 포기한다.

나는 전적으로 "권리가 자기의 투쟁 준비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권리는 스스로를 포기한다"라는 예링의 의견을 동의한다. 그건 우리가 이 더러운 세상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쥐고 있어야 할 의무다. 찢어지거나 뺏겨서도 안 되는, 아주 아주 소중하고 불가침한 영역이다. 그런데 그걸 내 손으로 포기한다는 건, 나라가 거나하게 말아먹혀도 된다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단한 열여덟이 되고 싶다

열여섯 살의 나는 지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열일곱 살의 나는 다정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열여덟이 된 지금,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려 한다. 올곧은 사람이 되려 한다. 좇을 수 없는 지성과 다정을 바라기보다 내가 여태 모은 지성과 다정을 지키려 한다. 도덕을 배웠고 법을 배웠지만 언제나 풀리지 않는 의문을 허공에 던져 보곤 했다. 법은 정의로운가? 법은 누구인가? 그걸 알 수 없기에 내가 법을 사랑할 수 없었나 보다.

늘 체감하는 것이 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촘촘하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세계는 유지되고 있고, 또 내가 살아 숨 쉬고 있고,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일을 평화롭게 맞을 수 있다.

이 책을 나는 세계의 촘촘함의 증명서라 일컫고 싶다. 수많은 법률과 내가 살아가는 지금은 결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이 아주 많은 노력을 들어 촘촘하게 세워 놓은 성이다. 나는 그곳에서 보호 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간다. 이 얼마나 축복이란 말인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보수와 진보의 첨예한 대립이 맞서고 있다. 나는 무엇이 옳다고 정의할 자격이 없다. 나는 대통령도 신도 아니고 일개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옳다고 믿을 수는 있다. 나는 대통령도 신도 아니고 일개 시민이기 때문이다. 일개 시민인 내가 주권을 가지고, 내 삶을 가지고, 자아와 사상을 가지는 것은 의심할 수도 없이 정당하다.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궁극적인 '자유'다. 내가 유일하게 무기 삼아 휘두를 수 있는 '평등'이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다. 비록 조국의 '광팬'이 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법이란 것을 알게 됐고, 또 약간은 법을 사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고로 내게 질문한다. 법은 누구인가. 고로 내가 대답한다. 그것은 신이 아니다. 절대적 정의도, 조건 없는 답도 아니다. 법은 그저 지렛대다. 이 세상이 스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겁고 탁한 지구를 최소한, 그리고 최대한의 힘으로 지탱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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