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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달리는 배달노동자들, '안라무복' 하세요

은어에 담긴 배달 노동 현장... '똥콜'보단 '꿀콜'이 좋아요, '무뚝'은 하지 마세요

등록|2023.03.12 11:52 수정|2023.03.12 11:52
현장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이야기 듣거나 글을 읽게 되면 꼭 나오는 내용이 각종 은어나 줄임말입니다. 한국사회에 알려진 은어 중 현장의 현실을 가장 가슴 아프고 정확하게 표현한 것 중 하나가 '태움'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재가 될 때까지 사람을 태운다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지요. 이 말 안에 의료 노동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믿습니다.

배달 노동도 그 나름의 현실과 고통, 애환, 자조 등이 섞인 다양한 은어들이 있습니다. 배달노동자들이 많이 찾는 온라인 카페 중에 10만 명 넘게 가입한 '배달세상(아래 배세)'에 가보면 가끔 초보 노동자들이 은어의 뜻을 물어보는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2021년에 각종 은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짧은 백과사전처럼 쓴 글이 아직도 소환될 때가 있습니다. 많이 사용하는 은어들 가운데 특성별로 대표적인 은어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배달 주문과 관련된 은어들
 

▲ 지난 1월 5일 서울 시내에서 이동하는 배달 라이더들. ⓒ 연합뉴스


주문이 항상 일정하지 않습니다. 주문을 '콜'이라고 부르는데, 이 콜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를 잘 아실 겁니다. 식사시간(점심·저녁), 주말이나 공휴일, 날씨가 안 좋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일 겁니다. 이와 관련된 은어들을 먼저 보겠습니다.

▲조대 : 조리대기

주문을 수락하고 조리가 시작된 후부터 예정된 조리시간(일반적으로 5분, 10분, 15분)을 지나 조리가 길어진 경우입니다. 라이더가 예정된 조리시간보다 먼저 도착했을 때 제일 좋은 것은 도착하자마자 음식이 준비돼 있어서 곧바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정된 시간까지는 그래도 기다릴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속이 타들어 갑니다. 제가 가장 오래 기다려본 시간은 40분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점피 : 점심 피크타임
▲저피 : 저녁 피크타임
▲야피 : 야식 피크타임


점심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저녁은 오후 5시부터 오후 8시 정도가 주문이 몰릴 때입니다. 특이하게 밤 10시 이후 새벽까지 콜이 계속 많은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주말이나 날씨, 월드컵 때가 대표적입니다. 뇌피셜이지만, 피크타임 때는 라이더들이 많아서 콜이 많더라도 체감상 피크인지 안 느껴지다가 오후 2시 이후나 저녁 9시 이후에 콜이 오히려 더 많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마 라이더들이 피크타임 이후 식사를 하러 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똥콜 : 누가 봐도 안 갈만한 콜.
▲유배지 : 가면 콜이 없어서 돌아오기 힘든 곳.
▲꿀콜 : 배달이 수월하거나 거리에 비해 요금이 높아서 선호하는 콜.


노동 현장 은어 중에 '똥'이라는 말이 들어간 말이 꽤 많을 겁니다. 건설 쪽에도 '똥띠기'라는 게 있다지요. 중간착취자가 수수료처럼 돈을 떼어 간다는 건데요. 배달에도 안 좋은 건 '똥', 좋은 건 '꿀'로 표현합니다. 대부분의 똥콜 공통점은 언덕배기이거나, 계단으로 이동해야 한다거나 유배지처럼 간 곳에서 다시 콜을 잡아 나오기 어려운 경우입니다.

▲콜사 : 콜 사망. 콜이 전혀 없는 상태.
▲전투콜 : 콜사 상황에서 어디를 가든 무조건 잡고 보자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다 뜨기만 하면 콜을 잡는 것. 경쟁이 심한 것을 두고 전투로 표현한 것으로 보임.


콜이 정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제 곧 비수기(3~5월)가 시작될 텐데요. 코로나가 풀려가면서 요즘에는 오토바이 라이더들도 20, 30분씩 콜사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뒷콜 : 배달 중 뒤에 붙여주는 콜.

요즘에는 단건 배달이 대세라서 두세 개의 주문을 한꺼번에 수행하기 어렵지만 배민 AI 배차의 경우 콜이 많을 때 다음 콜을 배달이 끝나갈 때쯤 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무조건 현재 콜이 많은 경우니까 골라서 갈 수 있는 용기를 내 볼 수 있습니다.

▲검단가 : 프로모션이나 추가 배달료가 붙지 않은 기본 배달료 금액이면 화면상에 검게 표시가 되는데 이것을 '검게 단가가 표시된다'고 해서 '검단가' 혹은 '검단'이라고도 부름.

카톡방에서 검단, 검단 그러길래 이 방은 분명히 서울 북부지역 방인데 왜 인천에 있는 검단 이야기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도한이형(도한이) : 과도한 거절.

배달의민족 AI 배차의 경우 자동으로 콜을 배정해주는데 이것을 계속 거절하는 경우 배차에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도한이(형) 왔다'고 표현을 많이 합니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무뚝 : 헬멧을 안 쓰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
▲무판 : 오토바이 번호판이 없는 사람(혹은 교묘히 번호를 가리는 사람).


'딸배헌터'라는 유튜버가 있습니다.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들의 법규 위반을 신고하는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는데,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소위 '끌바(바이시클을 끈다)' 해야 하는데 급한 경우에 그냥 가로질러 타고 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안 보이는 데서 촬영해서 공익제보를 하거나 유튜브 콘텐츠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호 위반 외에도 헬멧을 안 쓰는 경우도 여지없이 표적이 되고, 번호판을 가리고 다니면 그 오토바이를 따라가면서 위치를 경찰에 알려주면서 단속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영상을 보면 감정이 참 복잡미묘해집니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걸맞은 처벌을 하는 것도 맞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안전하게 배달해도 적정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얼른 되면 좋겠습니다.

▲자토바이 : 자전거로 등록하고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것.

요즘에는 거의 없어지긴 했을 텐데, 한때 자전거로도 콜이 엄청나게 많을 때 이야기입니다. 배달의민족에 운송수단을 등록할 때 오토바이로 하면 보험료가 어마무시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에 자전거로 하면 보험료가 엄청나게 싸기 때문에 자전거로 등록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토바이로 단거리 배달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배달의민족에서 배달 속도를 모니터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자전거는 속도가 많이 나와봐야 보통 시속 30km인데 이 속도를 일정하게 계속 유지하게 되면 운송수단 위반일 수 있다고 보고 단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지금은 자전거 콜의 빈도가 엄청 낮아서 콜 자체가 적게 들어오는데 빨리 가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서 많이 사라지긴 한 것 같습니다.
 

▲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음식점 거리에서 배달 노동자가 음식을 오토바이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쿠팡거지 : 쿠팡 문 앞 배달 완료 후 라이더가 떠나면 다 먹고서 음식 못 받았다고 고객센터에 환불 요청하는 행위.

배달노동자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한때 언론에 여러 번 나왔던 사례입니다. 잘못하면 배달노동자가 음식값을 물어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아예 그날 일 마무리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CCTV를 함께 보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지'라는 표현도 인권 측면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고, 그 음식값 얼마나 한다고 노동자 등쳐먹는 일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행동들이었습니다.

▲천룡인 : 지상, 지하 출입이 안 돼 걸어 들어가는 곳(주로 값비싼 아파트).

'천룡인'은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인물인데, 미천한 인간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싫다면서 유리로 된 둥근 마스크 같은 것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천룡'이라는 아파트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주로 집값 비싼 아파트 중에 정문에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걸어 들어가게 하거나, 심지어 헬멧도 벗고 들어가라고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파트로 들어가는 주문의 경우 추가 배달료를 주기도 한다네요. 참 씁쓸한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러면 안 되죠. 주문을 한 입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입주자대표자회에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쿠팡 전용 은어들

▲쿠태식(배태식) : 영화 <해바라기> 중 "오태식이 돌아왔다"라는 대사에서 유래한 표현. 날씨나 피크시간 대에 할증을 많이 주는 경우 쿠팡은 '쿠태식이 왔다', 배민은 '배태식이 왔다'로 표현.

▲쿠치소 : 쿠팡+구치소. 쿠팡 거절로 인해 일정한 기간 정지당함.

▲역따 : 쿠팡은 손님이 배달기사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지를 내린 모양의 역따 버튼을 클릭할 수 있으며 역따봉의 줄임말. 역따가 많으면 콜 배정에 불이익을 받게 됨.


배달 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은어

▲안라무복 : 안전 라이딩 무사복귀.

하루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야식과 캔맥주 하나 사서 따뜻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참 근사한 행복이라는 걸 최근에 자주 느낍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많은 라이더가 카톡방에서 하루의 마지막 인사를 '안라무복'이라 건넵니다. 그걸 볼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그리고 소리 없이 고생들 많았다고 인사해봅니다. 모든 라이더가 '안라무복'할 수 있도록 올해도 노동운동의 역할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창수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대표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올라잇'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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