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문오일장오일장 한 편에 좌판을 벌린 할머니, 필자가 보기엔 물건들이 조악하여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지는 것들이다. ⓒ 김민수
15일은 경기 양평의 용문오일장(5, 10일장)이 열리는 날, 완연한 봄이 시작된 후에 열리는 장이라 활기가 넘칠 것을 기대하고, 그 에너지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으로 용문오일장을 찾았습니다.
요즘은 오일장도 예전만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풍문이 그저 풍문이고 활기찬 오일장이길 기대하며 도착한 '용문오일장'은 그래도 활기가 넘쳤습니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들이 많고, 시장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시장 초입에서 씁쓰름한 칡즙을 한 잔 마시고 고로쇠물로 입가심을 한 후에 시장을 돌아봅니다.
오일장도 저마다 세를 내고 사용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마다 오면 그 자리에서 그분들이 좌판을 벌리고 장사를 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분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오일장 주변 길가 여기저기에 좌판을 깔고 나와 계신 연로하신 노인 분들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분들을 보면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를 뵙는 듯해서입니다. 쪼글쪼글한 거친 손은 어머니의 손 같고, 깊게 팬 주름과 검버섯도 어머니를 떠오르게 합니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비슷비슷하게 늙어가는 것이겠지요.
어떤 분은 다 팔아야 돈 만 원도 안 될 것 같은 물건을 내놓고 파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저걸 누가 살까?' 싶은 조악한 물건을 내놓고 파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거 다 팔면 얼마나 돼요?"
"돈 벌려고 나왔나, 사람 구경하러 나왔제."
그렇습니다. 저 같아도 오일장이 가깝고 팔만한 물건이 있으면 주섬주섬 챙겨나와 좌판을 깔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것이 그것 같던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들 것 같습니다.
이번 장날에 제 눈길을 끈 할머니, 그분의 물건이 그랬습니다. 조금은 시든 듯한 봄나물, 곯아버린 듯한 늙은 호박 반쪽, 말라도 너무 말라버린 버섯, 성해 보이는 것은 '국산들깨'도 아니고 '국 산들깨'와 비닐에 담긴 콩 같은 것들입니다. 게다가 아직 남은 겨울 추위 때문인지 헝클어진 머리칼... '저런 물건을 저렇게 파시면 누가 사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행색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한평생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식들 자수성가시켰더니만, 아이들은 도시로 나가버리고, 영감은 먼저 가고, 혼자 남았는데, 구차스러워. 그래서 빨리 가고 싶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맨날 '하나님, 나 좀 빨리 데려가소'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리셨는지 요로콤 죽지 않고 살고 있네. 오늘도 잠을 자기 전에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으면 기도하면서 잘 텐데, 또 깨어나겠지.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여.'
한 세기 가까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분이 얼마 전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운신도 못 해서 종일 집에만 계신 분도 계신데, 장날이라고 주섬주섬 외로움의 편린이 묻은 물건이라도 갖고 나와 사람 구경이라도 하는 할머니는 행복하신 것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