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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의 이면 "빨리 승진하면 빨리 퇴사하는 거야"

직장인, 연봉 인상만큼 기뻐하지만... 올라가면 갈수록 어려워

등록|2023.03.19 20:32 수정|2023.03.19 20:32
 

▲ 사무실 ⓒ Pixabay


평소 아끼던 개발팀 후배가 나를 찾아왔다. 부서는 달랐지만 내가 주로 하던 제품의 개발자라서 함께 할 일이 많았다. 예전엔 함께 어울릴 일이 적었다. 하지만 일이 겹치다 보니 함께 야근하는 일도 생겼고, 저녁도 둘이 가끔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졌고, 나이 차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부장님, 이번에 진급 못 했어요."

그 후배는 진급 대상자였고, 이번이 첫 진급이었다. 연초부터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이 먹고 들어온 직장이라 진급은 그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랬지만 너무도 아쉽게 후배는 진급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도 첫 진급 명단 누락이라 충격이 제법 컸던 것 같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첫 진급을 누락시키냐. 너희 팀장도 참 너무하네 너무해."
 "에고, 팀장님도 어쩔 수 없었나 보죠. 상대평가라 더 성과를 낸 선배들에게 점수를 줬나 보다 해야죠."


속상해서 찾아와서 제대로 된 넋두리를 들었더니 속은 시원해졌는지 후배는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거 빨리 단다고 좋은 거 아니다. 빨리 승진하면 빨리 퇴사하는 거야. 오늘 나랑 한잔? 괜찮지?"

연차가 찬다고 진급이 되지는 않는다

회사를 오래 다니면 급여 외에도 달라지는 게 직급이다. 회사에는 사원부터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 등 다양한 직급이 있다.

경력직을 제외하고 처음 입사하면 받는 직급은 사원이다. 사원에서 처음 진급하게 되면 대리라는 직급을 받는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원으로 만 3년이 지나면 대리 진급 대상자가 된다. 사원과 대리 사이에 주임이라는 직급이 존재하는 회사도 있지만 보편적이지는 않다.

이렇게 대리로 진급하면 다음은 과장이다. 과장은 대리 직급에서 3~4년을 근속하게 되면 진급 대상자가 된다. 다만 진급 대상자가 된다고 모두 과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급 대상이 되기 1~2년 전 평가가 진급을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과장이 되면 빠르면 한 부분의 장 즉 파트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만큼 업무에 대한 숙련도를 회사에서도 인정하는 직급이다. 그래서 영어로 번역해도 관리자를 의미하는 'chief'라는 단어가 조합된다.

과장 다음은 차장이다. 이렇게 차장 진급은 과장 직급으로 만 4년을 근무하면 진급 대상자가 된다. 다만 중기업 이상 되는 규모의 회사 중 일부는 차장 직급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차장 진급은 과장보다 더 어렵다.

내가 다녔던 모 그룹 IT 계열사의 진급은 정상적인 연차에 진급할 확률이 이미 정해져 있다. 진급 대상자 중 대리는 80퍼센트, 과장은 70퍼센트, 차장은 50퍼센트 그리고 부장은 30퍼센트였다. 물론 직급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 진급이 까다로운 건 당연한 현실이다.

업무의 숙련도도 중요하지만 직급이 오른다는 건 따르는 후배, 동료들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르는 직급에 맞춰서 책임과 권리도 함께 주어지는 경우도 많다. 직급이 아닌 직책으로. 자신의 위치에 맞는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이다.

진급이 오히려 더 능력의 잣대가 된다

회사에 다니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연봉 인상률이 박할 때 또 그렇지만 진급을 제때 못할 때도 그렇다. 진급 그게 뭐가 어렵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올라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진급이다.

게다가 더욱 냉혹한 현실은 연봉은 비밀규정이 있지만 승진은 표면에 드러나게 순위를 가른다. 동일한 연차의 진급 대상자라고 하더라도 누군 진급하고, 누군가는 진급을 하지 못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승패를 가르는 것과 진배없다.

함께 입사해서 누구는 진급하고, 누군가는 진급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한결같다. 승리자와 패배자로 구분 지어 능력치를 재단한다. 진급 누락의 사유는 이미 중요치 않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진급자는 능력자로, 진급 누락자는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힌다. 연봉 인상과 진급이 하등 관계없는 회사를 재직한다고 해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들보다 빨리 진급하는 경우보다 승진의 고배를 마시며 늦게 진급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도 남들보다 4년 늦게 부장 진급을 했던 경험이 있다. 누락의 이유야 있지만 무엇보다 한 해도 아니고 4년이나 늦어진 건 분하다 못해 어이 없다. 부장 진급 대상자일 때 인사평가를 난생처음 'D'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 이후 4년 동안 'D'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재직 중이던 회사의 인사총괄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전년도 고과표가 총 4년의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인사고과표가 학생기록부도 아니고. 과거 'D' 평가의 이력을 지우기 위해서 난 4년을 그곳을 더 다녀야 했다. 결국 부장 진급을 했지만 미리 알았다면 'D'평가 다음 해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수평적인 관계의 회사에도 직책이 있다
 

▲ 회의하는 직장인 ⓒ Pixabay


최근에는 수직적인 관계를 지양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수평적인 조직관계로 변화하더라도 30대의 젊은 후배가 50대의 선배를 부르는 호칭은 어려움이 따른다. A씨, B님으로 부르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고, 보는 다른 사람들도 불편해 보인다.

그래서 생겨난 호칭이 매니저나 영어 이름이다. 30대의 A도 매니저님, 50대의 C도 매니저님의 호칭으로 불린다. 한 회사의 대표이사도 마이클, 입사한 지 한 달 된 신입사원도 제인이라고 불리는 회사도 종종 있다. 젊은 IT 기업, 게임 회사나 최근 일부 대기업에서도 이런 수평관계를 선호하며 과거의 수직관계를 청산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런 수평을 지향하는 회사에서도 상하는 존재한다. 한 팀의 관리자는 팀장, 한 그룹의 부서장에게는 그룹장과 같이 모든 조직에는 관리자라는 직책이 있다. 수평관계에서도 개별 팀원, 부서원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수평이라고는 하지만 조직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회사는 새로운 변화의 일환으로 직급을 없앴다고 하자. 과연 작년까지 있던 직급이 사라졌다고 해서 한, 두 해 만에 문화가 사라지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수평적인 관계의 조직 문화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많은 직장인이 연봉 인상만큼이나 진급을 기뻐한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진급을 기대하고, 하물며 남들보다 빨리 오르길 바란다.

모든 게 우리 사회가 만든 경쟁심리와 구도 탓일 것이다. 자라오면서 우리도 모르게 그런 영향을 받아온 것이다. 진급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단지 상황이나 현실에 맞게 모범 답안이 존재할 뿐. 오랜 시간 동안 직장을 다니며 느꼈지만 빠르다고 좋은 건 아니다.

진급할 연차에 진급하지 못했다는 게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괴감은 순간이다. 올해가 아니면 내년에는 진급이 될 테고, 긴 직장생활에서 남들보다 1년 이른 들, 늦은들 중요치 않다. 영원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 조금 더 빨리 혹은 늦게 퇴사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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