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강릉 가시는 분들, 4월 지나면 이거 못 먹습니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바다 나물 고르매... 개체수 점점 감소하는 추세

등록|2023.03.22 15:47 수정|2023.03.22 15:47
강릉시 심곡해변에는 강릉 사람만 아는 바다 나물이 있다. 일반인들은 '그게 뭔데?' 하고 갸우뚱한다.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봄바다의 별미다. 바로 고르매(누덕나물)다.

김보다는 투박하고 두툼한 데다 모양새가 누덕누덕하다 해서 '누덕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르메는 음력 동짓날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다. 이때를 놓치면 제철 맛을 느낄 수 없다.
 

암반과 해조류고르매는 암반이 잘 형성된 지역에서 잘 자란다. ⓒ 진재중


해조류가 암반 지역에서 잘 자라는 것처럼 고르매도 파도가 적당히 있고 암반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린다. 동해안에는 암반으로 형성된 지역이 많지만 특히, 심곡해안은 수심이 얕고 암반이 잘 발달되어 있어 고르매가 자라기에 최적이다.
 

고르매바위틈에 자리잡은 고르매 ⓒ 진재중


폭은 3∼8밀리미터, 길이는 50∼60센티미터까지 자란다. 김이나 파래보다 먼저 나와 입맛을 돋구는 봄의 전령사다. 김, 파래와 섞어 말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막나물'이라고 한다. 동해안 바닷가에서는 '고르메, 고르매, 누덕나물'이라고 하며 김타래처럼 묶어 판다.

누나들과 함께 심곡해변을 자주 찾았다는 권오두(62)씨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해조류입니다. 봄에 밥맛을 잃었을 때 찾게 되는 나물이지요. 연로하신 누나가 건강이 나빠져서 추억을 떠올리며 밥맛을 찾으라고 사러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해조류 채취암반이 잘 형성된 지역에서 고르매를 채취하는 마을주민 ⓒ 진재중


채취는 주로 여성들의 몫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바닷가로 나간다. 손으로 뜯기도 하지만 전복이나 섭 껍데기 같은 걸로 긁거나 훑는다. 그런 다음 바닷물로 씻어내고 헹구고 모래가루를 제거한 후 한 장씩 김발 위에 올려 말리는 지난한 과정과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21일 만난 김봉녀(80) 할머니는 "고르매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60여년 이상을 일해왔나 끔찍합니다. 옛날에는 바닷가 인근에서 잠시만 뜯어도 양이 많았는데 이제는 멀리 나가야 되고 고르매도 많지 않고 모두가 어려워요"라고 하소연하신다.
 

심곡항(2023.3.21)과거에는 동해안 유일의 조약돌 해변이었다. ⓒ 진재중


강릉 심곡은 정동진에서 10여 분 바닷길을 달리다 보면 나온다.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6.25때 전쟁이 난 사실을 모를 정도로 오지였다. 이 마을에서 채취되는 자연산 돌김은 품질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바다부채길과 헌화로가 개통되어 조약돌해변은 항으로 변했고 해조류들도 사라졌다.
    

고르매말리는 할머니(2023.3.21)김봉녀(80세), 마을에서 유일하게 고르매를 채취한다 ⓒ 진재중


1990년도에는 고르매가 나는 3월이면 강릉 심곡마을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해안길가, 지붕, 담장은 검은 천을 둘러놓은 것 같았다. 그물발이나 김발에 고르매를 말리기 위해서 펼쳐놓은 장면이다. 그 모습이 재래식 김말리는 모습과 유사했다. 할머니들은 그 자리를 고수하면서 지키고 있었다. 참 정겨운 어촌의 모습이었다.

고르매 말리기김보다 까칠까칠 하면서 감칠맛이 난다 ⓒ 진재중


인근 감자옹심이를 파는 음식점에 가면 한두 장씩 이 지역의 특산품이라고 내놓곤했다. 고르매는 김보다도 까칠까칠하면서 특유한 짠맛이 입맛을 돋구었다. 기름에 살짝 튀기기도 하고 마른 채로 먹기도 한다. 김보다 거친 질감이지만 바삭하고 고소함이 있다. 기름진 누덕나물의 고소함과 짭쪼롬함은 바다향기 나는 진정한 밥도둑이다.
     

고르매 말리기옛날에는 담장위나 길거리에서 고르매말리는 추억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 진재중

   
많은 해조류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해양환경오명, 과도한 채취가 고르매(누덕나물) 개체수를 급격히 감소시키고 있다. 이제 심곡마을은 고르매를 채취하는 모습도, 길가에 말리는 장면도 찾아보기 힘들다. 바닷가에서 반찬 거리를 찾아나온 동네 주민 서원철(60)씨는 말한다.

"다른 해조류는 보이는데 고르매가 보이지 않아요, 바다부채길이 개통되지 않았을때는 해변가 바위에 고르매가 꽉 차 있었는데 해안길이 나고부터 보기가 어려워요,
사람의 욕심이 추억을 앗아갔어요."

 

김발위에 널려진 고르매옛날에는 담장위나 처마위에 널려진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 진재중


봄철 입맛을 돋구게하는 바다나물!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추억의 맛! 강릉 정동진 심곡마을 한켠에서 만날 수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