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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철학 확립하고 생활화 하는 운동 일어나야"

[인터뷰] <바닥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 펴낸 박재순 박사

등록|2023.03.23 08:57 수정|2023.03.23 08:57
박재순 박사, 그는 지난 박정희 정권 때 민청학련 사건으로 억울하게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또 1981년엔 한울회 사건으로 2년 반 동안 옥살이를 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불의한 체제에 분노와 절망으로 감옥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그에게 그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었다.

"1980년 5월 전두환 군부가 광주시민을 학살했다. 나는 침묵할 수 없어서 젊은 사람들 앞에서 한국사회가 군대귀신에 걸렸다고 했다.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지만 내용적으로는 군부의 광주시민학살에 대한 비판 때문에 재판을 받고 고생을 했다. 한울회 사람들은 순수하게 성경공부하고 신앙생활을 했던 기독교인들이었다. 터무니없이 반국가단체로 처벌받은 것은 말할 수 없이 억울하지만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감옥생활이 그다지 억울하고 괴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1981년 9월 1심 재판에서 검사에게서 10년 구형을 받고 감방에 돌아오니 벌써 날씨가 춥고 기침이 나고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내 몸으로는 감옥의 겨울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부터 자기 전에 냉수마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몸에서 열이 나고 밥맛도 좋아졌다. 2년 6개월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감기에 걸리지 않고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감옥에서 지내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나의 정신과 생각은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나의 학문과 정신을 단련하는데 감옥생활이 크게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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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이 여당대표에 의해 '시대의 예언자'로 불리는 요즘 참된 기독교인이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본다. 지난해 11월 박재순 박사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내게 막 펴낸 책 <바닥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을 건네주었다. 이 책은 그가 구약성경 <욥기>를 읽으며 한국사회의 문제와 관련해 묵상한 내용이다. 이 책은 오늘 한국 현실의 문제를 그의 체험을 통해 해석한 책이기도 하다. 지난 9일부터 21일까지 박재순 박사와 이 책과 관련해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박재순 ⓒ 박재순


- 우리 역사의 독립운동가나 민주화운동가들은 대부분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 하지만 친일파의 후손과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은 지금도 편안하게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은 무엇을 하고 있다고 보는지?
"독립운동가나 민주화운동가들은 고생하고 친일파 후손과 군사독재의 하수인들을 편안하게 사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진실과 정의가 짓밟히고 왜곡된 사회다. 신이 살아 있다면서 어떻게 이런 상황이 존속하는가? 생명과 역사를 지배하는 원리는 스스로 하는 주체의 원리다.

신은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정의를 실현해 가기를 바라고 기다린다. 함석헌은 생명과 인간의 역사를 신에 의한 인간의 교육과정으로 파악했다. 인간이 스스로 깨닫고 진실과 정의를 실현하도록 신은 인간을 역사와 사회 속에서 일깨우고 가르치고 이끈다. 인간은 실패와 오류를 통해서, 병을 앓고 고통받고 신음하면서 깨닫고 옳은 길을 찾아가게 된다. 따라서 함석헌은 '앓음'에서 '앎'이 나온다고 했다.

최근에 1980년대 공안 사건의 하나인 '한울회 사건의 진실'을 관련자 17명이 책으로 펴냈다. 그 책을 읽어보면 순진한 기독교 신앙공동체인 한울모임을 빨갱이 간첩들의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차 대법원 판사 4명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한울회 사건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내린 1심 판사 가운데 한 명은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을 지낸 이인제다. 또한 1차로 대법원에서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린 사건을 2차로 대법원판사들이 전원일치로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유죄판결을 내린 대법원판사들 가운데 한 명은 대쪽판사로 자처하며 대통령후보와 여당대표,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이다. 역시 국무총리와 대통령 후보를 지낸 황교안은 '국가보안법 해설'이라는 책에서 한울회를 대표적인 반국가단체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2015~2016년에 한울회 사건의 재심을 했는데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배한 사법부는 다시 한울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표창을 받았다. 그 비슷한 시기에 재판 받은 아람회, 오송회는 노무현 정부시절에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순수 기독교 공동체였던 한울회만은 박근혜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다시 유죄판결을 받았다.

나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 모든 과정은 한국사회가 진실을 깨달아가는 교육과 학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황교안, 이회창, 양승태 같은 인간들이 정치사회와 사법부를 주도하는 한 우리 사회의 진실은 외면되고 왜곡될 것이며 민주와 정의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악인들보다 어쩌면 함석헌이나 장준하처럼 진실하고 의롭게 살려는 분들이 더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기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한 신학자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박정희 전두환은 군대의 힘을 가지고 권력과 부를 장악, 행사하고 누렸다. 이에 반해 함석헌 장준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권력자들과 부자들에 맞서 싸운 이들이다. 양심과 정의를 위해 기득권 권력자들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더 상처받고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정의와 양심을 외면하고 권력과 부를 위해서만 산다면 그 나라, 그 사회는 부패하고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책표지 ⓒ 박재순


-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런 국민들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은 선일후한(일본먼저 한국나중), 천공세상, 유검무죄 무검유죄의 세상이 되었다. 과연 민심이 천심인 것인지?
"한국근현대 백오십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굴곡진 역사였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는가 하면 좌우로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부패무능한 조선왕조 말기, 일제 식민통치, 남북분단 6·25전쟁,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로 이어진 역사는 국가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역사였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항쟁, 6월 시민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민주혁명의 역사는 국민주권과 존엄을 실현하고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한민족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역사였다.

한국근현대는 국민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국가주의 기득권세력과 국민주권과 존엄을 실현하고 완성하는 민주화운동세력이 충돌하는 시대였다. 한국근현대의 시대정신은 국가주의세력을 청산하고 참된 민주공화의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함석헌은 인류가 마지막으로 극복하고 청산할 것은 국가주의라고 했다. 헌법정신과 이념에서는 민주공화의 이념이 지배하지만 사회정치교육종교문화의 현실과 제도에서는 국가주의 세력이 지배한다. 촛불혁명이 일어날 때는 민주화운동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사회의 현실생활에서는 국가주의 기득권세력이 지배한다.

국민도 머리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정치사회의 현실에서는 국가주의이념과 관행에 예속되어 있다. 천공과 같은 엉터리 도사가 나대는 것은 국민에게 민주 생활철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검사들이 정치사회를 지배하는 검찰공화국이 된 것은 국민주권과 존엄을 실현하는 민주공화의 철학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민주철학을 확립하고 생활화하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민심은 천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고 민주사회를 어둠과 파멸로 이끌어갈 것이다."

- 죽마고우 중에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가 있다. 그래서 그와는 요즘 소통을 거의 안한다. 그런 이에게도 내 마음을 활짝 문을 열어야 하나?
"국민의 절반 가까운 수가 윤석열을 지지했기 때문에 윤석열정권이 탄생했다. 생각과 뜻이 다르다고 서로 외면하고 멀리한다면 갈수록 정치사회의 현실은 더욱 나빠진다. 나와 정치적인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맘을 연다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과 주장에 아첨하고 맞추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신념과 생각이 확실하다면 대화하고 소통하여 다른 사람을 바른 생각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과 국가 전체의 자리에서 진영논리와 당파성을 넘어서 옳은 생각, 옳은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서로 만나서 말싸움과 비난만 할 것이라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안창호는 '내게 한 옳음이 있다면 상대에게도 한 옳음이 있다'고 했다. 깊고 진실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민주공화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 지금 대한민국은 800원을 훔친 버스기사는 법원에서 유죄를 받는데 아들이 50억 원을 받은 곽상도는 무죄를 받는다.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어떻게 보나?
"판검사의 죄를 처벌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국민이 판검사의 직분과 행태를 너무나 너그럽고 안이하게 보는 것 같다. 판검사들이 힘없는 국민을 너무 쉽게 처벌한다. 심지어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게는 사법적 조작과 왜곡을 일삼았다. 본래 판검사는 법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직분을 행사하는 이들이다. 법에 의존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들은 법과 법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에 대하여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은 국민의 주권과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는 도구이고 수단이다. 판검사는 국민의 존엄과 주권을 실현하는 일꾼이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판검사가 법을 남용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50억 원을 받기로 한 자들이 모두 판검사 출신이라는 사실은 검사, 판사가 탈법적, 초법적으로 불법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판검사가 불법적 이익을 탐욕적으로 갈취하는 이런 사회가 공정한 사회일 수 없다."

* 박재순 박사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신학과 박사, 한신대 연구교수, 성공회대 겸임교수. 씨ᄋᆞᆯ사상연구회 초대 회장, 재단법인 씨알상임이사 역임, 현재 씨알사상연구소장
2008년 세계철학자 대회 '유영모, 함석헌 철학 발표회' 주관,
2009년 한일철학대회 '씨ᄋᆞᆯ철학과 공공철학의 대화' 주관.
저서: 『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애기애타: 안창호의 삶과 사상』, 『애국가 작사자 도산 안창호』. 『도산철학과 씨ᄋᆞᆯ철학』, 『인성교육의 철학과 방법』
논문: 도산 안창호의 마을공화국 철학(한국행정연구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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