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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도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탐방기] 초록빛 가득한 달성습지의 봄... 생태관광 메카가 되기 위한 방법

등록|2023.03.28 11:53 수정|2023.03.29 07:54

▲ 달성습지 전경. 저 멀리 낙동강이 고령군 다산면을 회돌아나가고 그 앞에 금호강이 흐른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어 놓은 이 일대가 모두 달성습지의 영역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서대구 달성습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어놓은 천혜의 습지 달성습지. 세계습지 목록에 이름을 올린 달성습지. 흑두루미 월동지 달성습지.... 달성습지를 수식하는 여러 문구들이다. 달성습지를 수식하는 여러 문구들처럼 이 특별한 습지는 대구의 자랑이자 보물이다.

그런데 달성습지를 대구 사람들도 사실 잘 몰랐다. 그동안 습지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데다 대구의 변방에 해당하는 성서공단의 끝자락 서대구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낙동강에 많이 나가봤던 이들이나 달성습지 제방에서 자전거를 타는 자전거 동호인들, 일부 사진 동호인들을 제외하고는 이 아름다운 습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인간과 야생의 공간 철저히 구분

그러던 것이 대구시가 2015년 무렵부터 달성습지 탐방나루조성사업이란 정비사업을 계획했고, 그것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완성된 것이 지난 2021년경이다. 지금의 달성습지를 특징 짓는 키워드는 인간의 시간과 야생의 시간의 철저한 구분이다. 사람이 접근 가능한 곳과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철저히 구분해 놓았다.

일몰 이전 사람이 접근 가능한 곳은 산책길을 만들어 시민들이 자연을 완상하면서 탐방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고,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은 차단막을 치거나 현수막 등을 이용해 가려 놓았다.
 

▲ 하늘에서 본 달성습지. 맨 왼쪽이 낙동강 가운데가 금호강 그 아래가 진천천 이렇게 세 개의 강이 만나는 곳 이 일대가 전부 달성습지에 해당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인간과 야생이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단 셈이다.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달성습지의 깊숙한 곳까지는 접근할 수 없지만 그동안 들어올 수 없었던 습지의 일부 구간이나마 탐방할 수 있게 됐고, 야생의 공간을 조금 내어줬지만 야생생물들은 그들의 영역에서 인간의 간섭 없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몰 이전의 일이고 일몰 이후 이 구간은 가로등 하나 없는, 야생의 시간이자 야생의 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연초록빛으로 시작되는 달성습지의 봄

26일 주말이자 새봄을 맞아 그 달성습지를 찾았다. 구라2교 아래 닦아 놓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생태공원을 지나 습지 안으로 들어선다. 달성습지의 봄은 우선 연초록빛으로 시작된다. 새 생명 약동의 시간을 막 피어나는 새순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무에서 연둣빛 새 순을 내어 놓았고, 그 가운데 산벚나무는 은백색 꽃을 활짝 피웠다.
 

▲ 넓은 물억새밭 사이로 자라난 왕버들이 새순을 뿜어 올리며 연초록으로 물들어간다. 달성습지에 봄이 찾아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초록빛 속에 은백의 꽃을 피운 산벚나무꽃이 아름답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초록빛 향연 속에 드문드문 펼쳐지는 은백의 벚꽃이 수놓은 한폭의 그림이 그 안에 펼쳐졌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새봄의 향기에 취해 오솔길 같은 산책길을 걷는다. 이 길도 특별히 정비하지 않고 흙길이 패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야자매트를 깔아둔 것이 전부다. 땅 다짐도 하지 않고 그 흔한 마사토도 깔지 않았다. 습지 그대로의 길이다.

그래서 길이 다소 울퉁불퉁하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 걷는 맛이 나는 산책길이다.맨발로 걷는 이른바 '맨발 로드'로도 인기가 높다. 제법 군락을 이룬 벚나무숲이나 단풍나무숲으로 산책로가 나 있어 걷기에 일품이다.

이 산책길의 압권은 왕버들 군락지로 난 탐방테크다. 이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 과하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이전에 수로였던 곳을 따라 자란 수령이 최소 50년 이상 된 왕버들 군락지 사이로 탐방데크를 깐 것은 조금 과한 선택지란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습지를 오롯이 완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필요해 이 왕버들 군락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 왕버들 군락지 사이로 난 탐방데크. 조금 과한 선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개념을 살린 나름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원시 지연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왕버들 군락지 ⓒ 정수근


원시 자연의 숲길로 그대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 길은 매력적이다. 특히 연초록의 새 순이 올라오는 이 무렵의 이 습지 탐방길은 달성습지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하는 명소가 아닐 수 없다.

이 길도 낮 시간에만 인간에게 허용되는 길이기에 이런 정도의 선택은 허용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니까 이 길은 달성습지의 속살을 살짝 옅보게 하는 길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정오를 살짝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주말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았다. 삼삼오오 산책길을 걸으며 한 탐방객은 "대구서 육십 평생을 살았지만 대구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난생 처음 알았다. 대구에도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었구나" 한다.

많은 탐방객들은 주로 산벚나무 앞에서 사진을 담느라 여념이 없다. 역시 상춘객들은 꽃에 관심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의 벚꽃은 가로수 벚꽃과는 달리 드문드문 초록빛 사이로 핀 벚꽃이라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 상춘객들이 벚꽃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산버나무가 위로 웃자라 하늘 높이 벚꽃 터널을 만들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벚꽃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는 탐방객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런 산책길이 달성습지 끝까지 이어져 있다. 이날은 끝까지 가보진 못했지만, 자연스러운 산책길이 주는 매력은 3킬로미터가 넘는 습지의 끝까지 펼쳐질 것이다.

딱 좋았다. 야생과 인간이 조금씩 양보한 결과물이 이곳 달성습지 산책길이다. 조금씩 양보해서 공존의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민들은 달성습지를 느낄 수 있어 좋고, 야생생물들은 더 깊은 곳까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좋은 것이다. 각각의 영역에서 공존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달성습지가 흑두루미 월동지로서의 명성을 되찾아가기를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지점도 있다. 달성습지가 원래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월동지였던 사실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4대강사업으로 모래톱이 모두 사라져버린 탓도 있지만 강 옆으로 넓게 있었던 먹이터가 대부분 사라진 탓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달성습지 왼쪽으로는 성서공단이 들어서 있고, 오른쪽 고령 다산 쪽엔 들판이 그대로 남아있긴 하지만 예전 밀보리 경작지들이 하나같이 하우스로 바뀌면서 들판의 낙곡으로 배를 채우던 이들 흑두루미에겐 먹이터가 사라져 버렸다.
 

▲ 달성습지 앞 고령군 다산면 들판이 거의 대부분 하우스로 뒤덮였다. 흑두루미의 먹어터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래서 순천만에서 순천시는 농경지를 매입해 밀보리 농사를 짓고 그것을 모두 흑두루미나 겨울 철새들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그런 시도로 순천만은 천학의 도시에서 지금은 만학의 도시로 발돋음하고 있다.

지난겨울 일본 이즈미시에 AI가 발생한 탓도 있지만, 지난해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 수가 처음으로 1만 개체에 육박하는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로 인해 순천만을 찾는 인구는 연간 수십만에서 이제는 수백만으로 바뀌는 새 역사가 도래하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생태관광지로서의 순천만을 이루는 중요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흑두루미들인 것이다. 따라서 대구시도 순천만의 모범 사례를 거울삼아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흑두루미 월동지로서의 달성습지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흑두루미는 서식처가 분산되어서 좋고, 달성습지는 옛 명성을 되찾아 생태관광의 새로운 매카가 될 수 있어서 좋다. 그날이 어서 도래하기를 희망해본다.

21세기의 화두는 뭐니뭐니 해도 '공존'이다. 공존의 질서를 회복해가고 있는 달성습지가 곧 흑두루미 월동지가 돼 공존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 원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달성습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원시 자연의 아름다운 그대로 간직한 달성습지의 내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오롯이 야생의 공간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필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달성습지를 다니면서 달성습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많은 이들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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