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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우주의 기운을 품고 있는 맥주

[윤한샘의 맥주실록] 우주에서 온 효모로 발효한 그라운드 컨트롤

등록|2023.03.31 11:57 수정|2023.04.01 16:49

▲ 달 표면의 우주인 발자국. 선장 암스트롱 및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등 3명의 우주인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1969년 7월 20일 달에 착륙했다. ⓒ 연합뉴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착륙선 이글에 장착된 카메라는 우주선에서 내리는 닐 암스트롱의 발을 따라가고 있었다. 전 세계 6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숨죽여 보고 있었다.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을 머금은 달 표면은 보드랍고 섬세한 먼지 같았다. 뒤이어 올드린도 달에 내렸고 둘은 지진계 설치와 샘플 채취 등 2시간 동안 선외 활동을 마치고 착륙선으로 복귀했다.

1969년 7월 21일 인류는 달의 주인이 토끼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전 우주에 천명했다. 하지만 닐 암스트롱의 소감이 무색할 정도로 그 뒤로 달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22년 8월 중단됐던 유인 달 탐사가 재개됐다. 2017년 중국의 달 탐사 계획에 자극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속적인 달 탐사와 영구적인 거주를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지속가능한 달 방문, 최초의 여성 우주인 달 착륙 그리고 화성 탐사의 전초 기지 건설, 세 가지 비전이 제시됐고 2020년 세계 20개 우주 기지국이 동참했다. 53년 만에 진행되는 새로운 달 탐사 계획의 이름은 아르테미스, 아폴로의 쌍둥이 누이이자 달의 여신이었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은 달 탐사기지 건설과 인류 거주다. 이를 위한 다양한 실험이 현재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2022년에는 마네킹을 태운 아르테미스 1호가 약 25일 동안 달 궤도를 돈 후 지구로 귀환했고 2024년에는 유인 우주선이 같은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025년에는 4명의 우주인을 달 궤도로 보내 그중 1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이 달에 발을 딛고 귀환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작년 10월 첫 번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아르테미스 1호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마네킹이다. 우주 방사선과 비행 스트레스 등 인간 생존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미션을 받은 건 마네킹만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유기체 또한 인류를 위해 우주로 날아갔다. 바로 맥주 효모다.
 

▲ 바이오 센티넬 ⓒ NASA


맥주 효모야, 우주 시대를 부탁해

나사는 아르테미스 1호에 바이오 센티넬이라고 불리는 박스를 함께 보냈다. 영화 메트릭스에서나 볼법한 이름을 한 바이오 센티넬에는 동결 건조된 1만 2000개의 효모가 실려 있었다. 인간과 약 70% DNA를 공유하는 이 단세포 유기체의 임무는 우주 방사선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오는 것이었다. 약 3주 정도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하는 아르테미스와 달리 바이오 센티넬은 태양 궤도를 따라 6개월 동안 우주에 머물렀다.

효모들은 마이크로플루이딕스 카드라는 곳에 보관되었다. 과학자들은 원격 조정으로 액체와 설탕을 주입해 효모를 활성화시킨 후 방사능을 맞게 했다.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한 녀석들이 있다면 그 이유를 분석하고 밝혀내는 것이 이번 실험의 목적이었다.
 

▲ 마이크로플루이딕스. 붉은색은 효모가 활성화된 것을 의미한다. ⓒ NASA



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코리 니슬로우 박사는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 효모의 DNA가 달과 화성에 거주할 인류 건강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미로 즐거움을 주던 맥주가 이제는 우주 시대 인류를 위한 특급 도우미가 된 것이다.

사실 맥주와 우주는 인류가 우주를 개척한 이래 꾸준히 만났다. 독일 맥주 벡스가 좋은 예다. 1873년 한자동맹 도시 브레멘에서 탄생한 벡스는 북독일 필스너를 대표하는 맥주다. 1928년 스틸 케그를 발명했고 1968년에는 최초로 6팩을 개발해 유통 혁신을 일으킨 브랜드다. 20세기 말 벡스의 이런 도전 정신은 우주까지 닿았다. 벡스는 1993년 4월 미국 우주선 컬럼비아호에서 자신의 효모를 실험했다. 무중력 상태에서 효모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2001년 나사와 쿠어스는 이보다 한 발짝 더 나갔다. 콜로라도 대학원생이자 쿠어스 연구원 컬슨 스테렛은 무중력 환경에서 효모의 발효 형태와 결과를 실험했다. 그녀는 효모를 우주로 보내 발효를 진행했고 결과물을 받아 분석했다. 샘플은 겨우 1ml였지만 단백질 분석과 비중을 정밀하게 측정했고 대조군과 비교했다. 결과는 지구에서 양조한 맥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맛과 품질에서 차이점이 없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었다. 우주에 있던 효모의 세포 수는 지구의 것보다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효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우주 효모가 당분을 더 잘 공급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력 때문에 밑으로 가라앉아 당을 고루 섭취할 수 없는 지구 효모와 달리 무중력 환경에서 맥아즙 속에 골고루 분포한 우주 효모는 발효에서 더 나은 효율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제약회사 같이 높은 발효 효율이 필요한 곳에 큰 영감을 줬다.

양조사, 우주와 만나다

우주 맥주는 학자와 연구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주와 맥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양조사다. 2020년 아마추어 양조사 닉 티어와 댄 레폴드는 발칙한 도전을 시도했다. 엣지 오브 스페이스 미션(Edge of Space Mission)이라는 과학 클럽에서 풍선을 성층권으로 보내는 실험을 계획하자 맥주 효모를 함께 싣기로 한 것이다. 지구 끝에서 우주를 경험한 효모로 만든 맥주가 향미에서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하는 것이 목표였다.

성층권까지 도달했던 효모가 성공적으로 회수되자 닉은 곧바로 우주 맥주를 만들었다. 그가 양조한 맥주는 챌린저 홉과 갤럭시 홉이 들어간 영국 골든 에일이었다. 2주 뒤 14명의 홈브루어가 시음을 위해 모였고 대조군과 비교하며 차이점을 분석했다. 그 결과 대부분이 우주 맥주가 더 맛이 없다고 평가했다. 아마추어 양조사만이 벌일 수 있는 작지만 재미있는 소동이었다.

달 운석으로 맥주를 만든 양조사도 있다. 도그피시 헤드의 대표 샘 칼라지오니는 미국 크래프트 양조사 중 실험적인 맥주를 만드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채취한 효모로 고대 맥주를 재현하거나 고구마와 아마씨 등 예상 밖의 재료를 사용한 맥주를 출시한 이력을 갖고 있다.
 

▲ 달 운석으로 만든 맥주를 마시는 샘 칼라지오니와 동료들 ⓒ dogheadfish


샘은 나사의 우주복을 제작하는 ILC 도버의 도움으로 달 운석을 손에 넣었고 이를 미세하게 분쇄한 후 맥주 재료로 사용했다. 다행히 운석의 구성물은 미네랄과 소금이었고 맥주 양조에 적합했다고 한다. 셀레스트-주월-에일(Celest-jewel-ale)이라는 이름의 이 맥주는 당연히 한정판이었고 도그피시 헤드 펍에서만 판매되었다.

우주 맥주와 관련해 가장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진 양조장은 수메르 맥주 여신의 이름을 가진 닌카시다. 2006년 제이미 플로이드와 니코스 리지는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 닌카시를 설립했다. 미국 홉의 본거지에 위치한 덕에 이 양조장의 맥주들은 강력한 홉 향과 알코올을 품고 있다.

닌카시 맥주들이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제이미와 니코스는 진짜 크래프트 맥주만 할 수 있는 도전을 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우주를 경험한 효모로 맥주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논의됐고 곧 NSP(Ninkasi Space Program)라고 명명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2014년 7월 네바다 사막, 닌카시는 두 아마추어 로켓 그룹, CSXT와 팀 하이브리다인이 제작한 로켓에 16개의 효모 바이알을 넣어 발사했다. 효모를 실은 로켓은 성층권까지 도달한 후 지구로 떨어졌지만 불행히도 추적 장치가 고장이 나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27일 후에 효모가 발견됐지만 대부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은 닌카시는 첫 도전에 미션 1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곧바로 미션 2에 돌입했다.
 

▲ 닌카시 효모를 싣고 가는 로켓 ⓒ ninkasi


같은 해 10월, 보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 이번에는 아마추어가 아닌 민간 우주 항공 회사인 UP 에어로스페이스가 함께했다. 로켓에는 드라이아이스로 밀폐된 6개의 효모 바이알이 탑재됐다. 성공적으로 발사된 로켓은 124km 고도까지 날아갔고 효모는 약 4분 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했다.

지상에서 회수된 6개의 효모 바이얼 중 4개가 오리건주에 있는 닌카시 연구실로 이송됐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5년 4월 13일 닌카시는 우주에서 돌아온 효모로 발효한 그라운드 컨트롤을 출시했다. 지상 통제팀을 뜻하는 그라운드 컨트롤은 라벨 디자인부터 특별하다. NSP가 자랑스럽게 박힌 박스 속에는 우람한 우주인과 화성으로 발사되는 로켓이 그려있다. 딱 봐도 우주와 긴밀하게 연관이 되어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다.

그라운드 컨트롤의 맥주 스타일은 임페리얼 스타우트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높은 알코올 도수를 가진 스타우트를 의미한다. 10% 높은 알코올과 80 IBU(맥주의 쓴맛을 나타내는 단위)라는 강력한 쓴맛을 가진 이 맥주는 혀끝부터 남다른 개성이 느껴진다.
 

▲ 2015 그라운드 컨트롤 ⓒ 윤한샘


매혹적인 흑색은 우주 그 자체다. 코에서는 진한 다크 초콜릿과 헤이즐넛, 견과류 그리고 고소한 토스트 향의 울림이 느껴진다. 쓴맛은 정말 세지만 이와 견줄만한 단맛이 함께 균형을 맞춰준다. 뒤에서 올라오는 옅은 향신료 향은 아마 부가물로 첨가된 아니스(anise) 때문인 듯하다.

솔직히 맥주에서 우주 효모가 주는 특별한 느낌은 발견하기 어렵다. 사실 그런 게 있다면 노벨상, 아니 최소한 이그노벨상 정도는 탔어야 하지 않겠는가. 훌륭한 임페리얼 스타우트지만 그라운드 컨트롤을 단순히 향미로만 평가해서도 안 된다. 크래프트 맥주만이 할 수 있는 도전과 혁신 그리고 재치와 진정성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라운드 컨트롤을 시음한 지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크래프트 정신을 이야기할 때마다 여전히 이 맥주를 거론한다. 인간의 위대한 도전을 맥주로 표현하고 이를 맛볼 수 있다는 건, 대단히 복합적이고 특별한 경험이다. 누가 아는가. 2025년 달 기지에 도착한 우주인들의 손에 들려있는 맥주가 닌카시 그라운드 컨트롤일지. 수메르 맥주 여신과 달의 여신이 만난다니, 상상만으로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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