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1인 가구가 두렵고 서러운 것
혼자 감당해야 하는 병치레, 내 몸은 평소에 내가 지킨다
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편집자말]
봄기운에 너무 신이 났던 걸까? 다음날 발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윽, 건강하려고 운동을 했는데 도리어 건강이 나빠지는 아이러니라니. 짜증도 나고 어이도 없지만, 내 발목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더 아파지기 전에 미리 싹수를 자를 참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가뜩이나 싫어하는 운동을 하지 말라는 말은 꽤나 마음에 들었지만, 바람이 살랑대는 봄인데 돌아다니지 말라니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1인 가구의 병치레
▲ 고작 그거 걸었다고 인대에 염증이라니, 발목마저 사십이 넘었다고 유세를 떤다. ⓒ 변은섭
그래도 절뚝거리지 않고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통증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나의 소중한 발목을 달래고 얼래서 잘 보살펴야 한다. 1인 가구에게 병치레는 아파서 힘들고, 혼자여서 서러운 일이다.
혼자 살면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응급실에 실려 간 일이다. 1인 가구의 숙명처럼 혼자였고, 몸은 아팠다. 한번도 119를 불러본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이정도 아픈 것에 119를 불러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괜찮아지겠지, 조금 참으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게 실수였던 건지, 극한의 고통이 한순간에 찾아왔다. 다른 가족들에게 연락할 새도 없이, 나는 핸드폰을 붙잡고 119에 전화를 걸어 SOS를 청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팠지만 정신줄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 모든 과정을 처리할 사람은 1인 가구의 1인, 나뿐이었다.
구급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들숨과 날숨을 들이쉬며 응급실에 당도했지만 거기서도 아프기만 해서는 안 됐다. 응급실 접수를 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한다는 서류에 사인도 해야 한단다. 앞이 노란 채로 뭐라고 쓰여 있는지도 모를 서류에 사인을 했다.
보호자가 동행했다면 보호자가 할 일이었지만,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응급실에서는 내가 해야 했다. 다른 응급실의 환자들은 보호자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난 나의 한 손을 다른 손으로 꼬옥 잡아주었다. 출산의 고통과 맞먹는다는 요로결석을 진단받고 난 그렇게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행이라면 용기가 충만했던 29살이었고, 세상에 별로 두려울 게 없던 청춘이어서인지 강렬했던 응급실의 기억은 치료가 되어가는 요로결석의 통증처럼 서서히 흐릿해져갔다. 무엇보다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긴 후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온 부모님의 지극한 간호 덕에 병도 잘 치료하고,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용감무쌍하게 혼자 응급실의 경험을 겪어낸 것도, 부모님의 간병 덕에 별 어려움 없이 병원생활을 이어간 것도 20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0대 중반인 나는 더 이상 용기가 충만하지도 않고, 연로하신 부모님의 간병을 받을 수도 없다.
나이만큼 많아진 나에 대한 책임감
40세를 기점으로 몸이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몸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더욱이 20~30대 때는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하나 둘 탈이 나기 시작했다. 한 곳이 좋아지면 다른 곳이 아프고, 계주달리기에서 바통을 이어받듯 병치레의 향연이 펼쳐졌다. 한 번 아프면 빨리 낫지도 않는다. 완치까지 시간도 오래 걸려 생각지도 않게 인내심마저 길러졌다.
나이가 들면서 아픈 것 자체도 두려운데, 1인 가구라는 키워드가 추가되면 서글픈 마음까지 보태진다. 병에 따라오는 신체적 고통과 싸워야 하고, 완치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버텨내야 하며, 그 시간을 이제는 오롯이 홀로 견뎌내야 한다.
20대엔 떨어져 살아도 부모님의 보호를 받았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위해 달려와 주실 부모님께 전화 한 통이면 혼자에서 둘이, 셋이 되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이제는 병치레를 굳이 부모님께 알리지 않는다.
늙어간다는 건 마음도 함께 약해진다는 의미인 건지, 몸도 마음도 약해진 부모님께 굳이 걱정을 보태드릴 순 없다. 지금도 부모님은 워낙 비실비실한 데다 혼자 살고 있는 내가 혹여 아프지는 않을까 늘 걱정이시다.
▲ 부모님은 비실대는 딸의 기력을 챙겨줄 보약을 지어주시겠다며 때마다 성화다. ⓒ 변은섭
부모님은 종이인형처럼 나풀거리는 나의 기력을 보강해줄 보약을 지어주시겠다며 성화다. 부모님 마음에는 혼자 사는 딸내미의 건강을 챙겨줄 마지막 보루가 보약인 듯하다.
안 먹겠다고 하면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보약~ 보약~" 노래를 부르시니 계속 거절할 수만도 없다. 올해도 환절기를 맞아 나의 건강을 책임져줄 엄마와 아빠의 보약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이제는 중년에 들어선 딸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부모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어느새 건강을 젊음에만 기댈 수도 없고, 병치레를 부모님의 보살핌에 의지할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소화불량이나 두통 같은 일상의 병마저도 '중년'과 '1인 가구'라는 카테고리와 함께 묶이니 두려움과 불안함이 배가 된다. 내 손으로 119를 불러 혼자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도 이제는 꽤나 버거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난, 20대의 용기 대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나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 더 굳건해졌다. 사소한 몸의 변화를 방관하는 것 대신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행동력도 갖추게 되었다. 회사에서 하라니 마지못해 받던 건강검진도 2년마다 빼놓지 않고 열심히 받고 있다. 불안함이 커진 만큼 나를 아끼고 보살피려는 마음도 커졌다.
나의 발목은 아직 '이상 유' 상태이다. 올해의 봄꽃 나들이는 한 시간의 산책과 맞바꾼 셈이다. 봄꽃의 싱그러운 향기가 나에게 놀러오라 손짓하지만, 나의 소중한 발목을 위해 난 단호히 거절한다. 두 발로 걸어가는 출근길에 만개한 벚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봄을 만끽할 수 있으니 이것으로 만족한다.
부모님이 보내 주신 보약을 빠뜨리지 않고 챙겨먹고,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종아리에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는 셀프마사지도 열심이다. 돌 같은 인생을 지향하던 나의 삶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결국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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