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청년들의 직장 자랑, 좋기만 합니다
대안학교 특수교사로 11년... 학생들과 여행을 떠납니다
▲ 7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한 2023년도 취업자 신년회. ⓒ 권유정
발달장애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여러 이유 중 가장 많은 건 아무래도 취업일 것이다. "우리 아이도 취업할 수 있을까요?", "어떤 곳에 취업할 수 있나요?" 입학 전 주로 묻는 질문들이고, 대학을 홍보할 때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도 취업률이다.
그러나 장애인 의무고용 시대에 취업률이란 솔직히, 허울 좋은 통계적 수치에 불과하다. 연말이 되면 의무고용률을 채우기 위한 기관들의 계약직, 단시간 복지일자리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 그렇게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게 고용하고, 해고한다. 단기계약과 실업급여를 받는 계약해지 상태를 반복하며 2년 이상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률보다 중요한 건, 고용의 유지이다.
취업하고 졸업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이 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취업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이 슬슬 사그라들고 나면, 솔직히 직장생활이란 즐거움보다는 힘든 날들이, 열정보다는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 더 많아진다.
물론 업무가 적성과 잘 맞고, 일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 운이 좋은 경우다. 나 역시 숨만 쉬어도 바닥을 드러내는 급여에,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근무강도에도 십 년이 넘게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이 적성에도 잘 맞고 보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때는 다름 아닌, 방학이다. 일은 재미있지만 놀면 더 재미있고, 아이들은 좋지만 안 보면 더 좋다. 일보다 노는 게 더 좋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일을 잘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도, 잘 노는 것이다.
여가시간에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함께 만나 놀 수 있는 친구가,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거나 성과를 자랑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월급을 모아 사고 싶은 것들이, 떠나고 싶은 여행지가 있어야 한다. 매순간 그럴 순 없어도 행복한 기억들이 많아야 하고, 인생이 살만하다 느껴야 하고, 내일이 기대되어야 하고, 그리하여 삶이 행복해야 직장생활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나는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며 발달장애는 모두 중증으로 분류되지만, 우리 학생들은 전반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는 거의 없고 대체로 일상적인 생활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우리 학교는 경증의 발달장애 학생들이 취업을 하고 자립적인 생활을 하며, 일방적인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번듯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교육을 한다.
우리 학교에는 취업지원센터가 있다. 재학생들의 취업뿐 아니라 취업 이후의 사후관리, 보수교육이나 이직 등을 지원해 주고, 신년회, 송년회, 취업자 캠프 등을 열어 졸업생들이 주기적으로 선후배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든다.
며칠 전 70여 명의 취업생들과 신년 모임을 가졌다. 취업지원센터의 행사는 대부분 퇴근 시간 이후에 이루어진다. 자연히 교사들도 퇴근 이후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자칭 권리에 민감한 MZ세대임에도 수당도 없는 행사에 기꺼이 참석하는 건, 우리 아이들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고대해 온 만남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졸업 후에도 학교를 꽤 자주 찾아온다. 근로자의 날, 학교 축제, 체육대회, 취업자 캠프 등의 행사로 오기도 하고, 각자 연차를 내 학교에 놀러 오기도 한다. 제가 번 돈으로 음료수 한 병 들고, 학교에 찾아와 교수님들과 후배들에게 직장생활에 대해 말하는 건 아이들 인생에 큰 낙이다.
오죽하면 코로나로 학교 방문이 제한되었을 때에는 이직 등의 필요로 학교를 오는 졸업생들에게 방문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학교를 못 와 상심한 졸업생들은, 다른 누군가 학교에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화를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자 모임일이 정해지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진다. 메시지 하나, 전화 한 통마다 담긴 그리움과 설렘에 나 또한 행복해진다.
특수교사들의 고달픔 중 하나는, 발전이 더딘 우리 아이들의 특성상 교육의 성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것 같을 때, 나의 자질과 교육의 효과성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 그런 면에서 졸업하고 취업하여 번듯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을 보는 건 참 특별하고 복된 일이다.
"저 이제 곧 직장에서 10년 돼요." 입사하고 얼마 안 돼 만났던 아이인데, 어느새 10년 차 직장인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벌써 그렇게 됐어?"
숫자에 약했던 아이라 혹여 틀린 셈일까 반신반의하며 계산해 보니 정말이었다. 아직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서른이 넘고 근속 10년이 되어가는 제자들을 보니 새삼스럽게 세월이 느껴졌다. 그보다 선배인 학생들이 앞다퉈 누구는 11년, 누구는 13년이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작년에 치뤄진 졸업식이 14회였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잘난 척이 심하면 꼴불견이기 마련이지만 대놓고 제 자랑들을 해도 기특하기만 한 것이, 제자들의 직장 자랑이다. 그리고 그런 선배들을 보며 저도 그렇게 오랫동안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 눈을 반짝이는 후배들 또한 기특하다.
목표의식은, 나와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생기기 어렵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만 일론 머스크가 우주선을 사는 건 너무 다른 세상 이야기라 부럽지도 않다.
우리 학교의 역할은,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자신들과 비슷한, 혹은 그보다 부족해 보이는 선배들이 취업을 하고 직장을 유지하며 여가를 즐기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막연하고 현실성 없는 꿈이 아니라 진짜 실현가능하고 내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그런 미래. 동기부여가 된 아이들은 분명히 변한다. 그 변화와 성과를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내가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얼마 전, 3학년 졸업반 학생들과 해외 자유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했다. 쉬운 단체패키지를 놔두고 자유여행을 기획하게 된 시작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졸업여행을 계획하는데 단체 패키지가 너무 비쌌고, '발달장애'라는 말에 곤란해하며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염려가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우리 학생들이 어떤 아이들 인지도 잘 모르면서, 장애인이라는 한 단어에 모두 같은 사람으로 묶어서 치부하는 것이.
마침 올해 3학년들은 인원이 많지 않았고, 절반 가량은 대중교통 및 지역사회이용이 원활한 학생들이었다. 요즘 아이들답게 스마트폰 활용도 능숙하고. 능력이 우수한 몇몇 학생들은 1학년 때 다녀온 강릉을, 자기들끼리 모여 기차표를 끊고 다시 여행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아이들인데,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패키지여행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건 편견이고 차별이다.
억울함은 도전의식으로 바뀌었다. 지하철로 이동이 용이한 여행지를 고르고, 준비를 충분히 하면 해외도 얼마든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무작정 '불가능'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 도전기를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의 글이, 우리 아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꿈이 되고 희망이 되길 바라며.
우리 학교에서의 3년이, 아이들의 삶을 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더 다양한 경험들로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마음에 단단하게 차오르면 좋겠다. 훗날 돌아보아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인상 깊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즐거웠던 경험들을 다시 하길 꿈꾸며 열심히 일하고, 더 멋진 날들이 펼쳐지길 기대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또 새로운 달, 새로운 날을 맞아 나의 자리에서 나의 최선을 다하길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발달장애 대학생들과 해외 자유여행에 도전하는 과정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은 중복된 내용은 아니나 연관 있는 글로, 앞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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