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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시켰는데 낯선 비주얼, 독일 여행자의 첫 메뉴

돈가스와는 또 다른 튀긴 고기 슈니첼

등록|2023.04.03 16:46 수정|2023.04.03 16:56
장기 세계여행을 나섰습니다.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편집자말]
이번 여행의 첫 입국지는 독일이다. 긴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외곽 오펜바흐의 숙소까지 찾아가 하룻밤 자고 나서도 내가 해외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첫 일정은 기차역에 가는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기 위한 기차를 한국에서 예매했는데 내 기차 편이 취소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철도국 공지로는 별도로 차표를 끊지 않아도 기존 표로 같은 날 다른 시간대의 기차를 탈 수 있는 것 같았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여행자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 중앙역 사무실에 들러 기차표와 이메일을 보여주었더니 예상대로였다. 독일 사람들이 서류를 좋아한다고 해서 기차표와 이메일을 종이로 인쇄해 갔더니 빨리 확인되었다.
 

▲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 김상희


기차표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니 그제야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인지되었다. 역에서 곧장 걸어 뢰머광장으로 갔다. 광장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섞여 활기 찼다. 주변 식당들이 야외 테이블을 내놓으며 손님맞이 중이었지만 관광지 한가운데서 첫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현지 동네 느낌이 나는 곳을 찾아 아이젤너 다리를 걸어 마인강 남쪽으로 건너갔다.
 

▲ 프랑크푸르트 관광 중심, 뢰머광장 ⓒ 김상희

 

▲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아이젤너다리. 사랑받는 만큼 견뎌야 한다, 약속의 무게를 ⓒ 김상희


독일에서의 첫 끼니는 무엇을 먹을까? 독일에 왔으니 당연히 독일 음식을 먹어야지. 설마 독일 사람들이 소시지와 맥주만 먹지는 않겠지. 구글 지도를 돌려 식당 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무사히 한 끼 먹을 수 있을까? 식당 문으로 들어서면서 여행 전 숙지한 유럽 식당 에티켓을 머릿속에서 돌려 보았다. '아무 테이블이나 빈자리에 가서 앉으면 안 되고 문 입구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라.'

자리를 잡아 앉으니 직원이 메뉴판을 갖다주었다.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였다. 사전에 구글 사진을 보고 뭘 먹어야겠다고 예습하고 들어갔는데도 알파벳의 난무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없었다.

독일어 아래에 영어가 병기되어 있었는데도 영단어조차 어떤 재료인지 조리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맹' 여행자는 서러웠다. 주머니에 돈 넣어 두고도 몰라서 못 시켜 먹을 지경이다.

한참이 지나도록 메뉴책만 뒤적거리며 도무지 주문할 기색이 없자 직원이 옆에 와서 주문을 기다렸다. 메뉴판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에 나를 위기에서 구해준 단어 하나는 바로 '슈니첼(Schnitzel)'이었다. 돈가스 비슷한 거라고 들었고 독일에서 꼭 먹어보리라 다짐했던 메뉴였다.

기본 슈니첼을 먹어보려고 했는데 급한 대로 눈에 띄는 슈니첼 글자를 가리켰더니 볶은 양파가 잔뜩 올라간 돈가스 비슷한 음식이 나왔다. 난 돈가스든 탕수육이든 절대로 '부먹(소스를 끼얹어 먹기)' 하지 않는 '강경 찍먹파(소스에 찍어 먹는 사람')인데 이건 수습 불가 상황이다.

직원에게 물어볼 걸. 홈그라운드가 아니란 사실에 촌스럽게도 주눅이 들었나 보다. 멀쩡한 사람을 모자란 사람 만드는 곳이 외국이다. 앞으론 당당히 주문해 보자. 대한민국 아줌마의 결기로!

슈니첼은 고기를 튀긴 거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우리 돈가스는 도톰한 돼지고기에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를 입혀 최대한 바싹하게 튀기는 반면, 슈니첼은 얇게 저민 고기를 밀가루만 입혀 기름에 지지듯이 부쳐낸다. 겉은 촉촉하고 속은 부드럽다. 레몬즙만 뿌려 먹어도 맛있다. 재료는 돼지고기 외에도 쇠고기, 닭고기를 다 쓴다고 한다. 슈니첼은 원래 '두들겨 얇게 편 고기'를 통칭하는 말인데 요즘은 튀긴 고기 요리를 일컫는다고 한다.

내가 주문한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쯔비벨 슈니첼(Zwiebel Schnitzel)이었다. 양송이가 토핑으로 올려지면 예거(Jager) 슈니첼, 크림소스와 같이 나오면 람(Rahm) 슈니첼이 된다고 한다. 내가 사진으로 보고 원래 시키려고 했던 건 바로 람 슈니첼이었다. 초록색 크림소스의 람 슈니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즐겨 먹는다고 한다.
 

▲ 슈니첼.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 김상희

 

▲ 볶은 양파가 끼얹어 나온 쯔비벨 슈니첼 ⓒ 김상희


닮은꼴 요리, 돈가스와 슈니첼은 우연일까? 이탈리아의 밀라노식 튀김고기 '밀라네제'가 오스트리아빈과 독일에서 '슈니첼'이 되었고 영어권에서 이것을 '포크커틀릿(Pork Cutlet)', 일본식으로 읽으면 '돈(豚)카츠레츠(Pork=돈(豚), 커트레트=카츠레츠(カツレツ), 줄여서 돈카츠)', 우리나라로 건너와 '돈가스'가 되었다고 한다(<유럽을 맛있게 먹는 방법>, 김성준). 그러니까 서울 남산에 성업 중인 돈가스 거리의 그 돈가스는 독일 슈니첼과 한 뿌리 음식인 것이다.

독일인들이 가정식으로 즐겨 먹는다는 슈니첼을 먹었으니 나는 이제 독일 사람들과 음식을 공유한 사람이 되었다. 현지 음식 한 접시를 먹는다는 건 그곳의 흙과 바람, 식생과 오랜 시간 대대로 전해온 레시피를 먹는 것이다.
 

▲ 슈퍼마켓에서 파는 냉동 슈니첼 ⓒ 김상희


언제나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 사진의 절반은 음식 사진이었다. 사람도 움직이고, 식재료도 움직이고, 요리도 움직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해외에 가면 그곳의 자연경관과 역사 건축물만큼이나 현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사는지 궁금했다.

앞으로 방문하는 곳마다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내게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이야기해 주겠다'라고 말한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의 말처럼 음식 한 접시는 현지인의 환경과 삶의 압축판이요 정체성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나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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