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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표현 논란 될 줄 몰랐다" 적극 해명한 '길복순' 감독

[인터뷰]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변성현 감독

등록|2023.04.07 18:42 수정|2023.04.07 18:45
 

▲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은 분명 전도연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물일 것이다. 본격 액션에 처음 도전했다는 의의도 있지만, 단순히 오락성만 담보한 게 아닌 엄마이자 킬러의 정체성을 품었기에 서사적으로도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성현 감독이 전도연을 비롯해 영화에 품고 있는 남다른 마음을 드러냈다.

말 그대로 전도연에서 시작해 전도연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 'Kill Boksoon'이란 영어 제목처럼 중의적 의미를 품고 달려가는 이 영화는 딸을 애지중지하려는 모성과 그 모성이 가진 비윤리성을 품어주고 결국 성장하게끔 하는 딸의 주체성을 묘사한다.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배우 설경구로부터 누아르 액션의 이미지를 찾아낸 변 감독이 전도연을 통해 다시 한번 장기를 펼쳤다고 할 수 있겠다.

전도연의 사적 모습을 관찰하다

인연은 전부터 있었다. 설경구 소개로 만나게 된 전도연이 먼저 한 시나리오를 제안해왔고, 감독은 거절했다. 여기서 나아가 오히려 변 감독은 "선배와 일할 수 있는 기회니까 역으로 제가 선배님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면 하실 수 있는지 물었다"며 "당연히 시나리오를 보고 고민하겠다 하실 줄 알았는데 해보자고 하셔서 놀랐다"고 당시 기억을 꺼냈다.

"일단 작품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뭘 쓸지 오래 고민했다. 일단 액션으로 장르부터 정했다. 제게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지 물으시길래 뭘 쓸진 모르겠지만 액션을 해보시겠는지 말씀드렸다. 많은분들이 선배님의 최고 작품으로 <밀양>을 꼽으시는데 전 <무뢰한>을 좋아한다. 현실적인 캐릭터를 많이 하셨지만 저는 도연 선배님이 히어로나 킬러의 모습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 같다. 업계에선 최고기에 거칠 것 없는 분이지만 그런 분이 딸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이 영화의 설정을 따왔다. 도연 선배님이 가장 안 할 것 같은 장르를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복순은 홀로 딸 재영(김시아) 뒷바라지를 하며 킬러의 삶을 산다. 밖에선 업계의 전설로 추앙받는데 집에선 사춘기 딸과 투닥거리는 서툰 엄마가 된다. 변성현 감독은 "선배님께 부탁드려서 실제 모녀의 대화를 참고했다"고 전했다.

"처음에 제가 쓴 엄마와 딸의 대사가 너무 이상하더라. 선배님께서 집에 오라고 해서 갔는대 아무래도 낯선 사람 앞에서 편하게 대화가 나올리 없잖나. 선배님이 자릴 피해주었는데도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더라. 시간이 될 때마다 선배님이 절 불러주셨고, 같이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하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절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모습을 보니 도연 선배님은 굉장히 친구 같은 엄마시더라. 전 좀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라서 말대꾸 하다 엄청 혼나곤 했는데 두 사람은 논쟁을 벌이고 어떨 땐 친구처럼 싸우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선배님이 정말 대단하다 생각한 게 제가 등근육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린 이후였다. 사실 그렇게 만들어 오실 거라고 기대 안 했는데 어마어마하게 훈련하셨더라. 어떤 액션 영활 보면 몸은 너무 가냘픈데 싸움을 잘하는 캐릭터를 보면 괴리감이 들잖나. 그걸 피해보고 싶었던 건데 선배님이 단 몇 개월 만에 해주셨다. 다른 무명의 킬러들도 소모적이 아닌 각각의 개성이 담기길 바랐다. 제가 짧게 끊어 찍질 않아 대역을 거의 쓸 수가 없었는데 배우들이 너무 고생하시는 걸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다신 액션 영화를 안 찍겠다고 말했지. 도연 선배님은 촬영하면서 한의원, 병원을 매일 다니셨다고 들었다. 감독이지만 그걸 시킨 저도 비인간적인 것 같더라."


초반부에 배우 황정민이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도 전도연의 덕이었다. 재일교포 야쿠자로 강렬한 모습을 원했던 감독이 고충을 털어놓자 전도연이 대번에 황정민을 언급하며 직접 문자를 보내줬다는 후문이다. 변 감독은 "바로 다음날 정민 선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 바쁜 일정에도 4일 정도 빼주셔서 촬영하고 가셨다. 엄청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희생을 해주셨다"고 당시 일화를 전했다.
  

▲ 길복순 ⓒ 넷플릭스



배우를 사랑하는 마음

아역 배우 이력 때문일까. 변성현 감독은 유독 기성 배우의 새로운 면모를 잘 발굴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설경구에게 '중년 아이돌'이란 별칭이 생긴 것도 영화 <불한당>의 영향이었다. 이후 설경구는 변 감독의 영화에만 세 번째 출연하게 됐다. 전도연 또한 숱한 작품을 남겼지만,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표정과 눈빛을 보였다는 게 영화계 중론이다. 그만큼 감독이 특유의 관찰력을 발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 관찰을 많이 한다. 대화하거나 술 마실 때도 그렇다. 현장에선 첫 테이크에 제가 디렉션을 주지 않고 배우께서 하시는 걸 일단 보는 편이다. 거기에 따라 조금씩 디렉션을 바꿔 가는 편이다. 도연 선배님이 제가 테이크를 많이 안 가는 감독이라는 소문을 들으셨던 것 같더라. 근데 이번엔 정말 테이크를 여러 번 요청드렸다. 조금 더 가면 새로운 게 나올 것 같아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도연 선배기에 가능할 것 같았다. 제게 농담조로 '아니, 좋은 것 같은데 왜 오케이를 안 하냐'고도 하실 정도였다.

또 한편으론 (복순의 후배 킬러로 나오는) 구교환 배우가 있었다. 본인이 주인공인 다른 영화도 찍던 터라 바빴을 텐데 우리 영화에 참여해 주었다. 굉장히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애드리브가 많은 배우였는데 제가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많이 좋아하진 않는다. 그 장면의 목적과 다르게 전달될까 봐서인데 처음엔 서로 처음이라 부탁하는 게 어색했지만, 먼저 편하게 말해달라고 하셔서 말씀을 드렸다. 구교환 배우는 잽을 잘 치는데, 그걸 좀 아껴놓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걸 눈으로 보여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걸 아주 잘 해주셨다."


변성현 감독은 "영화는 일단 배우가 모든 걸 보여주는 매체라고 생각한다"며 "감독으로서 배우를 사랑하며 찍는 게 있다. 마음먹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작업하다 보면 저절로 그런 마음이 된다. 다른 감독들보다 더 배우를 매력적으로 담아내고 싶은 게 있다"고 설명을 더했다.
    

▲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 ⓒ 넷플릭스



논란에 답하다

감독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지만 일각에서 불거진 소위 극우 사이트 회원 논란이 있었다. 과거 <불한당> 개봉 당시 SNS에 저속한 표현 사용으로 사과하는 등 곤욕을 치른 바 있는 그다. 이번엔 영화 속 특정 장면, 그러니까 A급, B급 임무가 적힌 봉투 겉면에 '서울-한국'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 등 도시와 국가명이 병기된 것과 달리 C급 임무 봉투에 '순천-전라도'를 표기한 데서 불거진 논란이었다. 전라도가 해당 극우 사이트에서 비하 표현처럼 여겨진다는 이유인데 과잉 해석된 여지가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복순이 약속을 어기고 재일 교포 야쿠자의 뒤통수를 치는 장면, 길복순의 딸 재영이 10만 원권 지폐에 들어갈 위인에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김구, 안중근을 들며 공통점으로 "다 사람을 죽였어"라고 말한 점, 영화 속 특정 정치인이 자녀 입시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설정 등이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온라인상에서 비판받았다.

"아마 제가 영화를 하는 내내 해명해야 할 것 같다. 전 그런 극우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 좀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면 그쪽 성향과 정반대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가장 미안한 게 저와 같이 일한 배우, 스태프들이다. 이번에 정말로 논란이 될 걸 몰랐다. 제 전작 <킹메이커>에는 지역감정을 향한 제 시선을 담았잖나. 근데 이번에 반대의 논란이 일어서 최근 패닉 상태였다. 제가 아니었다면 논란이 안 됐을 것 같기도 하다.

봉투 작업은 미술팀에서 한 건데 제게 너무 미안해하고 전전긍긍하더라. 농담처럼 제가 차라리 미술감독님 고향인 충청도로 하지 그랬냐 말하기도 했다. A, B급은 국제 임무고 C급은 국내 임무라는 설정이었다. 사실 봉투 장면은 콘티엔 없었는데 촬영 감독님이 C라는 글자가 안 보인대서 새로 찍어 넣은 것이다. 영화를 수 없이 돌려봤는데 전라도가 문제될 거라 생각도 못했다. 솔직히 그때 전라도라는 걸 발견했더라도 이런 논란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 못했을 것 같다.

입시 비리는 어느 진영에서나 불거진 일이고, 영화 속 정치인이 아들을 살인교사하는 건 일종의 클리셰로 생각했다. 자기 앞길을 위해 자녀를 제거하는 설정은 할리우드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 복순이 그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정서적 이유가 이해될 것이라 생각했다."


변성현 감독은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작품 공개 첫날부터 세계 순위 3위에 오르며 흥행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쁨 보단 미안함을 먼저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분명한 건 이번 작품이 논란과 별개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 스폐셜 부문에 초청돼 상영됐고, 현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그가 전작과 달리 남성이 아닌 주체적 두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전 이 영화가 딸이 엄마에게 문을 열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둘은 각자의 비밀이 있다. 엄마의 비밀은 세상 사람들이 정말 알면 안 되는 비윤리적인 일이고, 딸은 통속적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만 하는 비밀이다. 엄마가 딸을 교육하고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선 딸이 엄마를 받아들이며 엄마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베를린에서 '여성 서사, 페미니즘 영화로써 시대성을 가져가는 것인지' 라는 질문을 받았다. 저도 응원하는 흐름인데 솔직하게 얘기했다. 전도연이라는 배우와 일하고 싶었고, 그분의 딸이 눈에 보여서 두 사람의 유대성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엄마는 남에게 떳떳하고 싶었던 반면, 딸은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은 캐릭터였다. 제 영화 중 여성이 가장 많이 나오긴 하는데 무의식적인 결과다. 제가 무슨 깨어있는 감독처럼 보이면 안 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또 남성들이 가득한 영화일 수도 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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