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불길이 상처만 남기고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주민들은 하늘을 원망했다.

조금만 더 일찍 비가 내렸더라면, 바람만 불지 않았더라면... 몇 년 전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똑같은 피해를 또 다시 입었다며 한결같이 하늘을 원망했다. 12일 아침 일찍 찾아간 산불 현장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고, 미세먼지 속에서도 어제 미처 챙기지 못한 집기를 찾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어제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하늘이 원망스럽지만 그나마 투숙객이 피해를 보지 않아 다행이다"라며 "뭔가 남아 있는 게 있을까 해서 새벽부터 나와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11일 오전 8시 20분께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시작된 불은 8시간만에 진화되었지만, 산림과 주택·숙박시설 등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2일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50분께까지 주택 68개소, 펜션 26개소, 호텔 등 숙박시설 7개소, 문화재 1개소, 기타 23개소 등에서 피해 접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포 해변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였던 사천 일대가 검게 변해버렸다.
   
사천진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김아무개(85)씨는 "어제 비만 일찍 내렸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라고 한탄했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건물이 불에 타자 주민들은 양동이와 바가지 등을 들고 진화에 나섰지만, 무섭게 확산하는 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불길 앞에서 겨우 몸만 빠져나온 주민들은 삶의 터가 잿더미로 변해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불이 난 지점 인근 주민 이아무개(60)씨는 "바람이 이렇게 세차게 부는 것은 처음이다"라며 "봄이면 양간지풍으로 항상 긴장하지만 이번 바람은 태풍 이상이었다"며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산불은 소나무 숲 인근에 자리 잡은 펜션들도 앗아갔다.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영업을 해온 펜션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펜션 주인 진모(64)씨는 "태풍루사 때 비 피해를 입어, 소나무가 좋아 이곳에 와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20여년 만에 또 다시 산불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라며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