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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전지전능해야 한다? '오은영 월드'의 함정

['오은영'이라는 세계 ①]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가 빠진 모순

등록|2023.04.14 14:54 수정|2023.04.20 14:18
"아직도 손가락 빠는 건 심리적으로 뭐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니?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 애 문제는 거의 부모 문제라더라. <금쪽같은 내 새끼>에 손 빠는 애 이야기가 나오던데 한번 찾아봐."

졸리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손가락을 빠는 나의 아이를 보며, 엄마가 걱정스레 말했다. 손가락 빠는 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 이 정도면 됐지 엄마 노릇을 얼마나 더 잘해야 하나, 엄마에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오은영 박사가 그랬다는데, 내가 뭐라고 그의 권위에 반박하나 싶어서.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에 허우적대던 시기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국민 육아 멘토'로 성장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육아 조언에 툴툴대면서도, 나 역시 오은영 박사가 육아 솔루션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인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이하 금쪽같은 내 새끼)를 즐겨보았다.

2020년 방영을 시작한 <금쪽같은 내 새끼>가 많은 화제를 불러오자,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비롯해, SBS <서클 하우스>, KBS2 <오케이? 오케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하 결혼 지옥) 등 오은영 박사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앞다투어 방영을 시작했다. 그 사이 나의 아이는 자연스레 손 빨기를 그만두었고, 오은영 박사의 상담 대상은 아동을 넘어 크고 작은 심리적 문제를 겪는 연예인, 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성인 등으로 확장되었으며, 그는 영향력 있는 전문가를 넘어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오은영 박사의 방송 노출이 잦아지며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방송 출연 아동의 사생활 침해, 자극적 사연 위주의 소비, 전문가 한 명에게 의존하는 방식의 위험성 등이다. 특히 <결혼 지옥>에서 아동 성추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상당수 하락했다.

그럼에도 오은영 박사는 ENA <오은영 게임>에 출연하며 오은영 신드롬이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고, 이 신드롬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 오은영 박사를 내세운 방송 프로그램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오은영 박사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할까? 오은영 신드롬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오은영 없이는 육아가 힘들다는 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로서, 이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을 찾고 싶었다.

아동의 문제행동은 부모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A 컨버스> 채널, 금쪽같은 내 새끼 94회 갈무리 <금쪽같은 내 새끼> 94회에서 오은영 박사가 발언하고 있다. ⓒ 이슬기


오은영 박사를 '국민 육아 멘토'로 만든 일등 공신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는 그간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아동의 목소리다. 이 프로에 출연한 아이들 대부분은 작게는 엄마의 특정 신체 부위에 집착하고, 크게는 시청자가 깜짝 놀랄 정도의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코끼리 인형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는 나름의 사정과 판단, 고민, 감정이 있다. 가정 안의 어려움을 예민하게 느끼고, 부모를 걱정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오은영 박사와 <금쪽같은 내 새끼>는 이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문제행동의 원인이 아이에게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 있을까? "금쪽같은 내 새끼를 위해 가족이 변하는 리얼 메이크오버쇼!"라는 소개 문구처럼,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적은 가족의 변화이고, 변화를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이 밝혀져야 할 터. 화가 나면 자해하는 5살 아이가 등장하는 94화에서 오은영 박사는 선언한다.

"금쪽이를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금쪽이입니다."

아이의 문제행동은 부모의 양육태도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런 순간은 이 프로그램에서 자주 일어난다. 대부분의 문제행동은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부모가 양육 태도를 바꾸거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때 아이는 변한다. 부모의 양육 태도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부모가 아이의 기질과 상황에 맞게 말과 행동을 교정할 때 아이는 변한다.

'아이의 문제행동은 부모 때문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가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는 이 메시지는 논쟁적이다. 한 사람의 부모로서, 나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 또래집단과 사회의 영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모의 영향력을 절대화하는 이 메시지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부모'라고 뭉뚱그려 썼지만, '부'와 '모'가 갖는 책임감은 결코 같지 않고, 위의 메시지는 엄마에게 더욱 가혹하게 적용된다). 부모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지만 자녀가 훌륭하게 자란 사례, 혹은 반대의 사례를 수없이 댈 수 있다. 동시에 한 사람의 자녀로서, 부모와 자식이 얼마나 지독하게 얽혀있는지, 한 인간이 자신의 부모가 미친 영향력을 덤덤히 바라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안다.

내가 양가적 마음 사이에서 번민한다면, <양육가설>의 저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한 인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아이를 기르는 방식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현대인의 믿음을 '양육가설'이라 부르며, 양육가설로 설명할 수 없는 연구 결과들을 언급한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주장은 부모의 영향력에 대한 광범위한 믿음 역시 '진리'가 아니라 현대 심리학의 주류를 이루는 하나의 입장일 뿐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부모, 가장 전지전능하면서도 가장 무력한 존재
 

▲ 유튜브 ENA 채널 <아이와의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눈높이, 오은영게임 EP02> 갈무리. 연예인 패널의 놀이를 지켜보던 오은영 박사가 '체크 버튼'을 누르고 있다. ⓒ 이슬기


<금쪽같은 내 새끼>가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문제행동이 부모 때문이라는 이 '입장' 자체보다 이 입장이 낳은 내부적 모순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문제행동이 심각한 아이와 양육태도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부모를 반복해 보여주면서, 아이를 창조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은 부모임을 강조한다. 부모 역할에 대한 과장은 육아에 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을 낳고, 전문가에 대한 의존을 만들어낸다.

이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는 진행을 맡은 신애라, 관찰 카메라를 보며 공감하는 정형돈, 장영란, 홍현희와 달리 유일한 전문가로서 프로그램 전체를 이끌어간다. 그는 시종일관 명쾌한 어조로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솔루션을 제시하고, 연예인 패널과 일반인 출연자들은 그의 말을 경청하며 받아적는다.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하기에, 그의 솔루션이 드라마틱하게 연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오은영이라는 한 명의 전문가에 의존하는 프로그램 콘셉트는 ENA <오은영 게임>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부모를 위한 '놀이 처방전'을 제시한다는 취지의 <오은영 게임>은 아동을 5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유형별로 효과적인 놀이 방법을 가르친다. 오은영 박사는 부모와 아이의 놀이 장면을 관찰하다가 부모의 놀이 방식에 문제가 있을 때 버튼을 누르고, 버튼을 누른 만큼 부모의 '체크 포인트'가 쌓인다. 아이와의 놀이는 자발적이고 무목적적인 과정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에게 배워야 하는 일인 셈이다.

'오은영 월드'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다. 그런데 어째서 이 전지전능한 존재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는 걸까? 어째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와 놀아주고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전문가가 부모보다 전지전능해진 걸까? 오은영 신드롬 속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전문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다. 이것은 '오은영 월드'가 스스로 빠져버린 모순이며, 이 모순에서 쉽게 빠져나올 방법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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