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산불, 재만 남은 현장에 어느새 새싹이...
[2박3일 취재기] 문자 한통에 시작된 아비규환... 전쟁터 따로 없어
▲ 산불 현장인 산에서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버린 나무 재로 시커먼 재가 신발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타버린 겉잎을 뒤집어쓴 이름 모를 식물에서는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 신영근
지난 2일 주말을 맞아 봄 꽃놀이가 한창인 정오쯤, 휴대전화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충남 홍성군이 보낸 안전 문자에는 '금일 오전 11시경 서부면 중리 산불 발생'이라는 내용과 함께 마을주민은 근처 마을회관으로 긴급 대피하라는 문자였다.
실제로 그 시간 산불 현장에서 20km가 떨어진 홍성 시내에서도 연기가 목격됐다. 급히 찾아간 산불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현장통제단 천막 바로 앞산 대나무숲은 활활 타오르면서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민가 쪽으로 접근해 위험한 순간도 목격됐다.
19대의 소방헬기는 쉴 새 없이 물을 퍼 나르지만, 워낙 세게 부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 꺼졌던 산불도 강풍에 되살아나면서 자욱한 연기가 하루 종일 서부면과 결성면을 뒤덮었다.
해가 지고 소방헬기가 철수하자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나갔다. 소방관과 산림청 공중진화대는 어둠을 뚫고 야간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강풍으로 진화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밤새도록 진화율은 21%에 머물며, 주택과 축사, 농기계 등을 불태웠다.
그렇게 하루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다음 날 아침 소방헬기 21대와 3000여 명이 진화에 나서 3일 오전 11시 기준 진화율이 73%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오후들어 바람이 다시 강해져 같은날 오후 6시 기준 진화율이 60%까지 떨어졌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며, 산림청은 시간대별 진화율 집계를 중단했다. (관련기사: 홍성 산불 확대, 진화율 오히려 줄어… 오후 6시 기준 73%→60%)
마스크를 착용해도 연이은 기침으로 강풍으로 번지는 산불 연기에는 소용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산불은 강풍을 타고 3일 오후 서부면 송천삼거리와 주민들이 대피해있던 서부초 강당 인근까지 번지면서 주민들이 갈산중고등학교 강당으로 긴급대피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진화율은 오르지 못하고 산불은 번지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날이 어두워져 소방헬기가 철수하자, 꺼졌던 불까지 재발화하면서 좀처럼 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산불 발생 첫날 위험한 상황을 맞았던 천년고찰 고산사 대웅전(보물 제399호)이 있는 청룡산으로 산불이 번졌다. (관련기사: 강풍에 홍성 산불 재확산, 주민 대피... 스님들 발 동동)
소방차와 공무원, 주민 등 진화인력이 총동원되어 사찰 인근까지 번진 산불 진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날 새벽 산불은 계속 번져 새벽 한때 홍성군은 긴급안전 문자를 통해 주민대피령이 내렸다.
재 가득한 산에 새싹이 올라왔다
▲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이번 홍성 대형 산불로 피해 면적은 1454ha로, 이는 서부면 전체면적 5582ha 중 26%다. 불에 탄 야산이 검은색으로 변해있다. ⓒ 신영근
그러는 사이 3일째 되는 지난 4일 바람이 잦아들고 소방헬기가 재투입되면서, 오전 5시 기준 67%이던 진화율은 이날 오후 2시 기준 91%까지 빠르게 올라갔다.
남은 잔불 진화로 이날 오후 4시 기준 100% 진화됐다. 이는 산불 발생 55시간 만으로 산림 당국은 이날 오후 5시 50분 산불 발생을 해제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홍성지역에는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비는 다음날까지 이어져 재발화 위험에서 벗어났다.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이번 홍성 대형 산불로 피해 면적은 1454ha로, 이는 서부면 전체면적 5582ha 중 26%다.
시설 피해는 주택 전소 48동, 반소 11동 등 총 59동, 축사 4동, 컨테이너 21동, 비닐하우스 48동, 농기계 35대, 수도시설 4개, 태양광 1개 등이 집계됐다.
특히, 소 3마리, 돼지 850마리, 산란계 8만 마리, 염소 300마리 등 8만 1153여 마리가 피해를 보았으며, 이외에도 조경수 8026여 주, 묘지 17기 등이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는 없으나 34세대 4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이들은 임시거처인 서부면 문화누리센터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이번 대형산불은 홍성 주민과 서부·결성면 주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자가 2박 3일 동안 지켜본 산불 현장은 전쟁터였다.
취재기간동안 도로 옆 임야가 불타면서 차량에 옮겨붙을 뻔한 아찔한 상황도 이어졌다. 지금도 당시 불타는 모습과 주민들 대피 모습, 옮겨붙은 산불을 생각하면 무서울 정도다. 산불 현장을 너무 속속들이 들여다본 탓일까. 이로 인해 밝힐 수 없는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산불 진화 후 11일이 지났다. 하지만, 지난 15일 다시 찾은 서부면 산불 현장은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특히, 산불 현장인 산에서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커먼 재가 신발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타버린 겉잎을 뒤집어쓴 이름 모를 식물에서는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정부는 지난 2일부터 3일간 이어진 홍성 산불과 관련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가운데, 홍성군이 피해복구와 피해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피해 주민들을 위한 성금을 보내오는 등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로 피해를 입은 피해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듯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때다.
▲ 대형 산불이 발생한 홍성 서부면 야산에는 불이 꺼진 후, 바람에 날린 벚꽃잎이 쌓여있다. ⓒ 신영근
▲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이번 홍성 대형 산불로 피해 면적은 1454ha로, 이는 서부면 전체면적 5582ha 중 26%다. 불에 탄 부분이 검게 변해있다. ⓒ 신영근
▲ 산불 현장인 산에서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타버린 나무 재로 시커먼 재가 신발 위로 올라왔다. 소나무가 검게 타버렸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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