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30여년 동안 까치발로 걸었더니 '이게' 없대요

그저 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에 생긴 이상징후

등록|2023.04.19 21:42 수정|2023.04.19 21:42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안녕하세요, 저는 까치라고 합니다. 설날의 정겹고 들뜬 기분과 세뱃돈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좀 까치처럼 걸어다녀요. 의자에 앉을 때도, 땅바닥에 쪼그려 앉을 때도. 어느새 발가락에 힘을 주어 뒤꿈치를 들고 까치발을 하고 있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왜 저는 까치가 되었을까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오래된 습관, 까치발로 걷기
 

▲ 제가 좀 까치처럼 걸어다녀요. 의자에 앉을 때도, 땅바닥에 쪼그려 앉을 때도. ⓒ elements.envato


아마도 조금 예민한 귀 탓일지 몰라요. 쿵쿵 거리는 내 발소리를 듣기 싫었던 기억이 나요. 그, 왜 있잖아요. 노란장판으로 된 바닥. 우리집도 노란색이었는지 또렷하진 않지만, 맨발로 걸어다닐 때마다 쩌억- 쩌억- 하는 소리가 유난히 귀를 울렸어요.

편찮으신 할머니도 함께 지내셔서 발소리를 죽이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집 안을 걸을 때도, 계단을 올라갈 때도. 까치발을 들어 소리 없이 살금살금 움직이면 커다란 임무를 완수한 것 같은 뿌듯함이 들었어요. 저 혼자만의 놀이였달까요.

소리 뿐만이 아니에요. 발바닥 전체로 바닥을 딛었을 때 살에 닿는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도 떠올라요. 여름은 후텁지근하고 눅눅하고 나른한 느낌까지 얹어졌었죠. 어느새 저는 총총거리며 걷는 까치로 무럭무럭 성장했어요.

그러다보니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도 자연스레 뒤꿈치를 들고 의자 다리에 기대어 놓더라구요. 부모님이 청소를 하시다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제 발을 살포시 바닥에 붙여준 기억이 많아요.

별 일 아닌 줄 알았어요. 마른 입술을 잘근거리며 뜯는 것 같이, 손가락 마디 뼈를 하나씩 누르며 우드득 거리는 것 같이 사소한 습관인 줄 알았죠. 그런데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더니, 이럴 때 쓰는 속담이 아닌 것 같지만, 까치발로 다녔더니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저에게 엉덩이 근육이 하나도 없대요. 몸에서 가장 커다랗고 중요한 근육이 엉덩이인데, 그것이 없다는 건 온몸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래요. 까치처럼 가볍게 다녔을 뿐인데, 엉덩이가 없는 고장난 사람이 되다니.

게다가 늘 뒤꿈치를 들고 다녀서 아킬레스건이 짧아지고, 종아리 근육도 짧아지고, 고관절이 굳고, 다리 모양도 못나졌어요.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다리는 왜 이런 모양으로 생겼을까? 애초에 이런 다리로 태어났나보다, 단념하곤 했는데 미련함이 흘러 넘쳐 강을 이루었네요. 잘못된 걸음걸이 때문에 몸 전체가 삐그덕거려요. 심각한, 정말 심각한 비상상황이에요.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이 까치발이었다니. 전 너무 억울해요. 뒤꿈치 드는 것이 나쁜 습관인 줄 꿈에도 몰랐어요. 진작 알아채고 고쳐주지 않은 부모님을 탓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네, 네 결국은 제 탓이겠죠.

이미 망가진 걸 되돌리려면
 

부러운 새들저도 새였으면, 이렇게 까치발로 고생하진 않았을텐데요. ⓒ 조성하


이제서야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 누구도 걸을 때나, 의자에 앉을 때나, 쪼그려 앉을 때나, 계단을 올라갈 때 까치발을 하지 않더라고요. 30년 넘게 잘못 사용해놓고 뒤늦게 알아차리다니. 한심하죠?

사실 까치뿐 아니라 팔다리가 있는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뒤꿈치를 들어 걷는다고 해요. 인간이 유독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는데, 하필 제가 그 인간이었네요. 온전히 땅을 누르며 걷지 못한 인간에게 내려진 벌이 조금 가혹한 건 아닌가 변명하고도 싶지만. 또박또박 사는 것, 제대로 된 곳에 힘을 주고 움직이는 것. 이 숨 쉬듯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요.

오늘도 열심히 스트레칭을 합니다. 굳어진 다리를 고무줄 잡아 당기듯이 앞뒤로 늘리고, 자꾸만 땅에서 뜨려고 하는 뒤꿈치를 내리 눌러요. 과거의 어리고 예민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까치발을 할 때마다 등짝을 때릴 순 없으니.

이미 망가진 걸 되돌리기엔 곱절 이상의 시간과 땀방울이 필요하겠죠? 또 얼마나 잘못 심어진 사소한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지금의 저를 만들었을까요. 깊숙히 땅을 파내어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선 무성하게 뒤덮인 잡초와 줄기를 전부 쳐내야겠어요. 진짜 내 몸 하나 온전히 만들며 살기란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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