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학교 알림앱... 남편 핸드폰에 설치했더니
아이들 생활 자세히 알 수 있어 좋다는 남편, 부모 역할에도 적성이 있습니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그렇게 적응을 해 가는 한 달 동안, 약은 잘 먹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점심은 잘 먹었는지, 어떤 놀이를 하면서 놀았는지 같은 어린이집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을 남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학교 알람
▲ 아이 셋의 알림장을 모두 남편이 맡게 되었다. 학교 소식을 전달받는 학교 알림앱. ⓒ 최은경
올해 중학생이 된 큰아이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초등 6년 내내, 그 사이 둘째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동안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달되는 알림을 받았다. 특히 3월 학기 초에는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고 확인해야 할 알림도 많다.
시시때때 스마트폰에 울리는 알림은 그저 알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를 챙겨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억했다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 과정에 신경이 쓰였다.
혹시 내가 놓쳐서 아이가 불편할까, 혹은 학교에서 당황스러울까 전전긍긍하면서 꼼꼼히 챙기려 하다 보니 알림이 울릴 때 마다 긴장이 되었다. 지난 8년 동안 그냥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엄마니까 아이들 챙기는 건 당연하지 생각하면서.
그러다 최근 내가 동네책방을 열 준비를 하느라 바빠지면서, 남편이 막내를 맡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입소 상담을 하게 됐다. 그때 가기로 한 어린이집이 키즈노트 앱을 통해 소통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남편이 먼저 휴대폰에 설치를 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입소하기 전 챙겨야 하는 서류들을 스스로 알아서 챙기고, 궁금한 건 선생님과 소통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던 부담감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이 신기해 중학생이 된 큰 아이네 학교 알리미까지 남편에게 설치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런다고 했다.
내 휴대폰에는 초등학교 소통 앱이었던 이알리미가 이미 있으니, 초등학생인 둘째의 소식만 챙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둘째네 반은 담임선생님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앱을 설치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둘째의 알림장까지, 아이 셋의 알림장을 모두 남편이 맡게 되었다.
습관적으로 "어머니" 부르는 기관들
▲ 남편은 알림 내용을 보며 아이에게 수학 숙제를 했는지 챙기고, 생존 수영 신청서를 제출했는지 확인한다. ⓒ 최은경
첫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남편이 말했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세 군데서 하루종일 무슨 이렇게 알림이 많이 오냐?" 그렇게 알림을 받기 시작한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들한테 숙제는 했는지, 단원평가는 잘 봤는지, 학부모 동의서 받아오라고 한 건 어디 있는지 같은 걸 챙긴다.
아이들이 미리 내놓지 않아도, 기한이 다 된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건 아이가 챙기는 거라고 선을 긋는다.
나는 아이들 것을 못 챙기면 모두 내 탓이라고 여겼다. 아이를 잘 못 키워서 습관이 안 잡혔다는 생각부터, 제대로 챙기지 못 해서 아이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혼나는 상상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알림이 울릴 때마다 한숨부터 나왔다.
스트레스를 받는 줄도 모르고 하던 일을 멈추고 나니, 비로소 내게 그 일이 스트레스였음을 알게 됐다. 남편이 아이에게 수학 숙제를 했는지 챙기고, 생존 수영 신청서를 제출했는지 확인할 때 나는 아이들과 오늘 친구와 뭐 하고 놀았는지, 간식으로는 어떤 걸 사 먹었는지 같은 걸 묻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고 싶은 간식은 있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놀다 왔는지, 요즘 축구는 어디서 하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아이가 문방구에서 사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요즘 용돈은 어디에 쓰는지 얘기를 하는 일이 즐겁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 사인 받을 거 없냐면서 알림장을 내놓으라고, 선생님이 내 준 학습지 어서 하라고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으니 '엄마' 역할이 훨씬 가벼워졌다.
며칠 전, 남편이 아이들 알림장을 보여 주면서 "선생님은 내가 아이디도 '○○아빠'라고 했는데 매번 이렇게 '어머님'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내신다~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꼬맹이 어린이집도 그러고. 내가 아빤지 아는 데도 말이야" 한다.
각자에게 맞는 부모 역할을 하기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왜 그토록 아이 학교 알림장을 챙기는 일이 엄마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했었는지를 이해했다. 무의식적으로 불리는 '어머님' 호칭에,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남편은 본인이 보호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어머님'으로 불리니 자기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엄마'를 대신해 알림만 받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어머니'라는 호칭이 바뀌어야겠다는 이야기를 이어 가다가, 한 달 넘게 아이들 알림을 받아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은 "좋아~" 하고 답했다. 어떤 게 좋으냐고 되물으니 선생님하고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으니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아이들 생활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아이들의 생활이 궁금할 때마다 나를 통해 전해 들어야 했는데, 내가 아기를 돌보느라 정신없어 보이는데 물어보기 미안할 때도 있었다면서.
그렇게 내리게 된 결론. 아하! 엄마 역할, 아빠 역할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각자에게 잘 맞는 부모의 역할이 있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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