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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요원으로 분한 양조위, 한국 상업영화와 이렇게 다르다

[미리보는 영화] <무명>

등록|2023.04.20 14:08 수정|2023.04.20 14:08
 

▲ 영화 <무명> 관련 이미지. ⓒ 콘텐츠판다




국내 커뮤니티에 때아닌 양조위 목격담이 올라왔다. 서울 모처에 그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영화 때문이 아니냐고 한껏 기대에 부푼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블 영화인 <샹치: 텐링즈의 전설>에서 카메오 같은 역할을 한 것을 제외하고 양조위가 주연으로 국내 관객과 만나게 된 게 <색, 계>(2007) 이후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영화 <무명>이 개봉을 앞두고 국내 언론에 처음 소개된 19일 서울 용산 CGV에도 많은 관계자가 모였다. 그간 홍콩 및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던 양조위의 최근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또한 있었을 것이다. 한중 합작 아이돌 그룹 출신인 왕이보 또한 젊은층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기에 주목도가 더욱 높아보였다.

<무명>은 기본적으로 스파이 액션 장르물을 표방한다.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낸 채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에도 성난 이빨을 드러냈던 1940년대 후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역사물이기도 했다. 양조위는 일본 군부 조직과 공조하는 첩보 요원 허 주임을 연기했고, 왕이보는 일종의 이중 스파이로 일본과 상하이 조직 모두에게 신뢰받는 예 선생을 맡았다.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웠던 시대인 만큼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분할해 교차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시킨다. 특정 장면이나 사건을 생략한 채 다른 시기와 공간을 제시하고, 각 캐릭터들의 고뇌와 갈등을 점진적으로 강화해 나간다. 시간순으로 나열하지 않는 이런 방식은 영화 초반 관객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지만 배우들이 미묘하게 흘리는 감정 및 표정 연기가 일말의 힌트가 된다.

같은 시대극이라도 블록버스터 요소에 집중한 한국 상업 영화와 달리 <무명>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절제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첩보조직 내에서조차 누가 적으로 돌아섰는지 가늠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펼쳐지기에 속내를 한껏 드러낸다는 게 오히려 현실감을 떨어뜨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상당한 수준의 '스파이물'
  

▲ 영화 <무명> 관련 이미지. ⓒ 콘텐츠판다


  

▲ 영화 <무명> 관련 이미지. ⓒ 콘텐츠판다



상대적으로 중국 및 홍콩 등지에서 벌어진 항일 조직에 배경 지식이 부족하기에 영화에서 언급되는 사건이나 인물, 지명 등이 생소하게 다가오지만 영화 안에서 놓고 보면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기에 큰 장애물은 아니다. 오히려 사적 감정은 배제한 채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스파이물로써도 <무명>은 상당한 수준을 보인다.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단서를 흘리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후반부에 이 모든 단서를 회수한다. 나름 예상 가능한 반전임에도 극적 긴장감을 해치는 수준은 아니기에 장르물의 좋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노련한 요원 허 주임과 패기 넘치는 스파이 예 주임의 대비 효과도 훌륭하다. 이런 장르물에 목말랐던 관객이라면 <무명>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특히 엔딩 크레디트에서 국적을 '홍콩'으로 표기한 걸 발견할 수 있는데 양조위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양조위는 주최 측에 자신의 소개 자료에도 홍콩이라는 국적을 표기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여러 사정상 결국 국적 자체를 표기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봤지만, 홍콩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의 자존심을 나름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양조위는 지난 18일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무명> 관객 시사회가 앞으로 이어질 예정이었고, 해당 무대에 깜짝 등장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할 것으로 보였는데 이후 그가 다시 한국을 찾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줄평: 묵직한 전개와 설정이 빛을 발한다
평점: ★★★★(4/5)

 
영화 <무명> 관련 정보

원제: Hidden Blade
감독: 청얼
출연: 양조위, 왕이보, 저우쉰, 장정의 외
수입 및 배급 : ㈜콘텐츠판다
러닝타임: 132분
관람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3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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