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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나무, 올벚나무, 겹벚나무... 당신이 본 벚꽃은?

벚나무에 대하여

등록|2023.04.21 10:48 수정|2023.04.21 11:13

▲ 경북 청송 주왕산의 벚나무 ⓒ 용인시민신문


한 달 전 계획한 여행 일정이 아이들 사정으로 남편과 단 둘이 가게 됐다. 둘 만의 여행이 처음이라 낯설고 모처럼의 여행이라 설렜다. 목적지는 경북 청송이다.

삼월 마지막 날이었는데 경기 용인에서 청송까지 벚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경기도는 만개하고 있었고, 안동과 청송은 벌써 만개했다는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산소까페 청송'. 청송 곳곳에 쓰여 있었다. 산소 가득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주왕산에 가기로 했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차하고 올라가는 그 길에도 벚꽃이 만개했다.

입장료를 내고 주왕산에 오르니 남편은 산의 유래를 유심히 봤다. 옛 이름이 석병산인 주왕산에는 중국 주나라 왕의 전설이 서려 있다. 중국 당나라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고 칭한 뒤 당나라의 도읍지였던 장안으로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한 뒤 쫓겨 다니다가 마지막 숨어든 곳이 이곳 주왕산이었다.

당나라는 신라에 주왕을 섬멸해 달라고 했고, 신라는 마일성 장군이 주왕이 폭포에서 떨어진 물로 세수하는 사이 화살과 철퇴로 죽였다. 주왕이 흘린 피는 계곡으로 흘러 주왕산 계곡의 수달래가 그리 아름답게 핀다고 한다.

주왕이 숨어 지냈다는 주왕굴로 가는 길은 으스스했다. 어떻게 이런 곳까지 와서 숨었을까? 굴에서 내려온 우리는 용추협곡을 가기 위해 산을 올랐다. 가는 길에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진달래가 산을 봄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앙증맞은 노루귀가 바람에 살랑 흔들렸다. 한그루씩 보이는 벚꽃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 바람에 흔날리는 일본왕벚나무 ⓒ 용인시민신문


청송까지 오면서 보았던 화려한 왕벚나무 꽃과 다르게 수수하고 세월을 견디며 살아 온 기품이 느껴졌다. 내가 우리 집 주변 왕벚나무 꽃이 제일 예쁘다고 했더니 남편이 왕벚나무는 제주도에 있다고 우리 집 주변 벚나무는 일본 왕벚나무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길의 벚꽃들은 나비처럼 날리기 시작했다.

봄 구경 꽃구경을 실컷 하고 온 나는 남편의 아는 척에 빈정이 상했다. 도서관으로 가 벚나무 관련 책을 빌렸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벚나무는 산벚나무, 올벚나무, 털벚나무, 잔털벚나무, 섬벚나무, 꽃벚나무, 수양벚나무, 겹벚나무 등 자생종과 재배종을 포함해 22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올벚나무와 왕벚나무만 잎보다 먼저 꽃이 피고, 나머지 벚나무들은 잎이 피어나면서 꽃이 맺히기 시작한다.

주왕산에서 본 벚나무는 잔털벚나무나 벚나무일 것이다. 산에서 만나는 벚나무를 보통 '산벚나무'라고 부르는데, 진짜 산벚나무는 백두대간 높은 곳에서만 핀다. 올벚나무는 남해안이나 제주도 산지에서 볼 수 있다.

남편 이야기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우리 주변에서 봄을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왕벚나무는 일본에서 소메이요시노자쿠라라고 불리는 벚나무이다. 일본은 에도막부 시대부터 재배되기 시작했고, 꽃의 크기와 색깔 등이 거의 비슷하고 유전변이도 크지 않다. 일본에서는 소메이요시노자쿠라의 자생지를 찾으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자생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의 섬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을 수 있었다. 1964년 제주도 신례리와 봉개동의 왕벚나무 자생지를 각각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1966년 해남 대둔산의 왕벚나무 자생지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제주도에서 자라는 왕벚나무는 꽃이 큰 것, 작은 것, 분홍색, 순백색 등 아주 다양하고 유전변이 폭도 크다고 한다. 아마 일본왕벚나무는 에도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후 무성번식으로 일본 전역에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왕벚나무는 자생지 말고는 제주의 일부 가로수와 식물원, 수목원에서만 볼 수 있다.

벚꽃 덕분에 우리 집 주변 카페는 일년 중 가장 많은 손님이 몰리고, 심지어 장어집은 벚꽃 세일을 해준다. 도로에 내려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이 기간은 운전할 때 특히 더 신경 써야 한다.

우리 집 앞 작은 공원의 벚나무 아래에서는 인근 고등학교가 매년 졸업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벚나무가 일본에서 역수입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고국이란다. 고국에 온 나무를 더 많이 사랑해 주고 아껴주자. 동시에 우리 고유의 왕벚나무가 우리 거리에서 아름다운 봄을 선사할 수 있도록 하자.

이나경(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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