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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장 경매, 본 적 있으세요?

[동행취재] 170마리 소, 새로운 주인 찾아 제 갈 길

등록|2023.04.26 11:10 수정|2023.04.26 11:12

서산 우시장의 경매 모습. 경매사가 해당 소의 나이·몸무게·유전자 등의 정보 보드 앞에서 해당 소를 가리키고 있으면 맨 뒤 전광판에는 낙찰된 소의 가격이 공시된 ⓒ 최미향


지난 20일 충남 서산 우시장의 경매 모습. 경매사가 해당 소의 나이·몸무게·유전자 등의 정보 보드 앞에서 해당 소를 가리키고 있으면 맨 뒤 전광판에는 낙찰된 소의 가격이 공시된다.

서산시 음암면 우시장 경매 현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소를 파는 사람들의 초조함과 사는 사람들의 매서운 눈이 모여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요즘처럼 소 한 마리 보기 힘든 도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별천지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서산시에 사는 필자로서도 우시장 풍경은 생경하기 그지없다.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170마리의 소들이 줄에 매여 도열해있는 곳에는 4월의 봄기운이 경매장을 감싸고 있었다. 여기저기 커피를 권하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저마다 자신이 데리고 온 소 옆에서 눈을 맞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튼실한 소를 사려는 매매상들의 매의 눈이 삭풍처럼 매서웠다.
 

낙찰을 기다리고 있는 육성우. ⓒ 최미향


소 한 마리가 들어가 대기하는 수백 개의 깨끗한 공간엔 커다란 눈에 말끔한 털을 가진 7개월가량 된 송아지 한우 암소들이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경매받은 소를 이동시킬 차량들이 주차장에 들어차 있었다.

파는 사람들은 서산태안 조합원들이고 사는 사람들은 주로 경기도 권역에서 몰려든다고 말한 서산태안축산농협 최기중 조합장은 "그동안 솟값이 내려갔다가 요즘은 또 올라가는 추세라서 새끼 안 낳은 소들이 잘 팔린다"고 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소가 넘어져 있는 모습. ⓒ 최미향


그때 갑자기 필자 앞에서 묵인 소 한 마리가 하늘을 보고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줄이 꼬여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사람을 불렀다. 관계자가 다가왔고 태연히 "걸렸구만"이라며 꼬인 밧줄을 노련하게 풀어 힘들어하는 소를 바로 세웠다.

최 조합장은 "아마도 집에서 풀어놓고 키운 소라 답답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온순하고 차분한 녀석이라야 새 주인에게 사랑받을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정문식 조합원의 육성우 암소가 최고가를 찍었다. 최고가는 서산 운산리에서 데려온 정문식 조합원의 육성우 암소로 478만 원에 낙찰됐다. ⓒ 최미향



같은 나이 다른 금액, 천차만별 가격대
최고가는 정문식 조합원의 암소 478만 원 낙찰


"소라는 건 싸다고 팽개치고 비싸다고 애지중지하고 그러면 안 돼요. 늘 한결같아야지." 생각보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받은 한 조합원에게 잘 키우셨는데 서운한 마음도 있겠다고 하자 "정당한 시세가 나오면 그걸로 만족하면서 팔고 하는 거지 그거 욕심부리면 안 되죠. 더 받고 싶어도 더 받아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자식 같은 소가 더 좋은 집으로 갈 거니 서운함 같은 건 없어요"라고 했다.

'오늘 떠난다 생각하니까 좀 짠한 마음은 없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없어요. 때 되면 이제 남의 집으로 가야지. 그곳에서 잘 커서 이제 또 어디서 쓰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써야 하니까 그런 마음이라야 이 일을 하지."
 

경매할 소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 ⓒ 최미향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아침 9시, 장내 방송에서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다. 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매에 귀를 기울였다. 가격 산정인이 가축 상태를 보고 최저가를 적어 놓으면, 앞에서부터 순번대로 경매가 이뤄진다. 결과는 3초 안에 전광판에 공시돼 마이크에서도 방영된다.

저마다 점퍼 속에 몰래 숨긴 기계를 누르며 원하는 소를 사기 위해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는 풍경들. 각 소들마다 특이사항이 적힌 작은 화이트보드에는 간혹 '옆구리 부종'이라든가 '앞발굽 및 밑 발 확인' 또는 '주사 흔적 부종'이라는 등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몸이 좋지않은 육성우눈매가 슬퍼보였는데 부디 좋은 주인 만나 건강하게 잘 살라고 했던 51만 원 낙찰 소 ⓒ 최미향


이날 2022년 9월 3일생 육성우 최저가가 60만 원이었지만 51만 원에 낙찰됐다. 눈매가 너무 슬퍼 보인 송아지였는데 취재 내내 마음이 쓰여 남몰래 기도까지 했다. 부디 좋은 주인 만나 건강하게 잘 지내달라고.

최고가는 같은 개월 수의 서산 운산리에서 데려온 정문식 조합원의 암소로 478만 원에 낙찰됐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인간과 소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일어나는 모습. ⓒ 최미향


인간과 소의 팽팽한 줄다리기

눈을 돌리자 입찰이 끝난 소가 트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찌나 힘이 장골인지 차에 들어가지 않으려 온몸으로 반항하는가 하면, 앞에서 줄을 당겨도 딸려가지 않으려고 두 다리로 버티는 소도 있었다. 결국 두 명의 장정들이 소의 엉덩이를 있는 힘껏 미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어떤 이는 꼬리를 제압하면서 차로 밀어 넣기도 했는데 인간과 소의 팽팽한 줄다리가 그렇게 치열한지 처음 보았다.
 

들어가지 않으려는 소와 당기는 사람간에 실랑이가 펼쳐지고 있는 모습. ⓒ 최미향


"그냥 순순히 들어가면 어디가 덧나? 꼭 이렇게 힘 뺄거여"라는 어느 어르신의 소리에도 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기 작전 돌입. 그래도 결국 들어갈 걸 무모한 반항이라니. 그렇게 트럭에 올라탄 육성우들은 어딘가로 실려 가 새로운 주인의 품에 안길 것이다. 부디 사랑받고 살기를 소원하며.

서태안 지역 1000여 조합원의 구심체이자, 사람과 동물, 환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생태 축산의 보금자리 서산시 음암면 운암로 141-6 '태안축산농협'에선 매달 두 번씩 서산가축경매시장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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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우시장 경매, 3초 만에 탄식과 환호 170마리가 새로운 주인 찾아 제 갈 길 가 ⓒ 최미향


  

낙찰을 기다리고 있는 육성우. ⓒ 최미향


  

낙찰을 기다리고 있는 육성우. ⓒ 최미향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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