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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삼풍 생존자입니다" 한 줄기 빛 같던 연락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21] '생존자'만 할 수 있는 위로 건네준 산만언니에게

등록|2023.05.02 21:27 수정|2023.05.02 21:27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해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지난 2022년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꽃, 술, 추모 글이 적힌 종이를 놓고 있다. ⓒ 권우성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산만언니(필명 이선민)에게.

언니 안녕하세요, 초롱입니다. 지난 3월, 언니께서 제게 먼저 손 내밀어 연락주신 날을 기억해요.

"안녕하세요 저, 삼풍백화점 생존자 이선민이라고 합니다."

언니의 연락은 그저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언니, 저는 그간 친구들과 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친구들뿐일까요, 가족들도, 지인들도 아니 이세상 모두와 멀어지는 기분. 참사 이후에 제가 고민하는 지점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한편으로는 점차 내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친구들이 시시콜콜 갖고 있는 고민이 제게는 시시한 고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런게 고민이라니, 좋겠다. 나도 그런 고민이 내 고민이었으면 좋겠네.'

다른 무게감으로 같은 세상을 산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을 때쯤, 내 곁의 모두가 시시하고, 웬만한 것에는 화도 잘 나지 않고, 놀라지도 않으며 '난 당신들과 자극점이 달라'라는 마음으로 뾰족하고 날카롭게 지내왔어요.

찜질방을 가자던 엄마를 따라나섰던 날, 어둡고 컴컴하고 숨 막히는 고온의 그 동굴 같은 곳 앞에 당도했을 때.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제게 들어오라고 자꾸 권유하며 '정말 몸에 좋다'던 엄마를 향해 소리 지르던 날이 생각났어요. 엄마는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나 정말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엄마마저도 참사를 겪은 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리도 어려운데 친구들, 가족들, 직장동료, 지인들은 오죽할까요. 그냥 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편이 나았습니다.

그때 언니의 연락이 왔지요. 반갑다기 보다, 언니만은 나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의 방공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언니만큼은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지나가는 차량과 소방차, 구급차가 한데 얽혀 마치 폭격맞은 전쟁터를 연상케 하고 있다. 1995.6.29 ⓒ 연합뉴스


언니를 만나자마자 들었던 말이 이거였어요.

"나는 참사 이후 30년이 지났잖아요. 내가 이후로 겁이 없어졌어요. 아무것도 무섭지 않고, 웬만한 건 놀라지도 않고. 너무 큰일을 겪으면 사람이 담대해진다고 하는데, 담대해졌다면 담대해진 거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워낙 크게 다친 사람이니까. 웬만한 상처는 상처도 아닌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언니의 말들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위안이 된다'. 살아있다는 마음이었어요.

언니, 즐겁게 일상을 살으라고 하셨지요? 노력은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저는 얼마 전에 도쿄에 다녀왔습니다. 좋아하는 밴드가 일본 도쿄돔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요. '레드핫칠리페퍼스'라고 전설적인 그룹인데,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비행기를 타고 일본까지 날아가기로 마음 먹었던 것뿐이었어요.

그런데 죽을 것 같았어요. 비행기 문이 닫히고, 이륙을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귀가 멍해지는 순간부터 폐쇄된 공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저를 억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행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과, 갑자기 비행기가 공중 분해될 것 같다는 생각들 때문에 많이 무서웠어요.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으면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빨리 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 느낌이 있잖아요. 나는 분명 물 밖에 있는데, 여기 어디에도 물은 없는데 있지도 않은 물속을 느끼며, 자꾸만 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창피함이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어린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누가 봐도 사지 멀쩡한, 어른의 모습이었거든요. 용기내어 '제가 지금 힘듭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었고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안 도와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고민해 보면, 답은 간단했습니다. 참사에 대해서 많이들 외면하니까.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들 무관심하니까. 지난 몇 달간 제가 느껴온 것들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언니는 제게, 용기 내어 참사 초반에 글을 써주어 고맙다고, 모두에게 위로되는 일이니까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라고 이야기 해주셨지요. 참사를 겪은 사람들이 자꾸 이야기해주고 나와주어야 한다고, 힘들겠지만 자꾸 이야기해 달라고.

용기 내 하나를 더 말해도 될까요?

레드핫칠리페퍼스 공연이 있던 도쿄돔은 4만 명이 수용가능한 아시아 최고의 공연장이었어요. 압도적인 공간 크기에 놀랐고, 왜 가수들이 평생 도쿄돔에 서보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지 알겠더군요.

티켓값이 무지막지하게 비쌌지만, 신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한 공간에 있는, 어마어마한 공기와 분위기는 저를 순식간에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앞뒤로 사람이 꽉꽉 들어차있는 광경, 키가 작아 성인 남성들로 둘러싸여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어두컴컴한 느낌, 무엇보다 조금만 사람이 밀집해도 가슴이 턱 막히는 듯한 공포감은 다시 저를 울렁거리고, 어지럽게 했습니다.

언니, 저는 정말 눈물이 났어요. 모든 것이 공포스럽고,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을 몇 번을 더 겪어야 할까. 눈앞이 캄캄하고 미래가 걱정되는 기분,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공연장 질서를 빠르게 확립하고, 사람들을 줄 서게 만드는 공연 관리 업체 사람들의 움직임이었어요. 단호하고, 명확하고, 빠르게 그들은 사람들을 통제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확 안심이 되더니 어지러움증이 사라지더라고요. 이건 무엇이었을까 오래도록 고민해봤습니다. 일본인들이 특별히 질서를 잘 지키는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그 4만 명을 수용하는 관리 인력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은, 시민들은 시스템이 작동하면 그 안에서 잘 따르니까요.

'비행기 타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제 질문에 언니는 이렇게 답하셨죠.

"나는 이제 괜찮아요,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동안 많이 치료했으니까."

이 말이 어찌나 제게 도움이 되던지요. 저도 괜찮아지겠죠? 저도 언젠가 다 괜찮아질 수 있다고 언니가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내가 이렇게 산증인이니까, 너도 믿어라라는 말처럼요.

그 말이 참 따스했어요, 이런 게 연대일까요
 

▲ 언니는 제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 unsplash


언니는 제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따뜻한 우동 한 그릇, 그리고 달달하고 맛있는 디저트까지 사서 먹이고 싶으시다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만남만으로도 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언니는 알고 계셨나봐요.

마지막 말이 생각나요.

"내가 삼풍백화점 참사를 겪었을 때는, 나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 이렇지 않았어요. 따뜻했어.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하고 사회적으로도 참사 피해자들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호했고, 보상했고, 관련자들 처벌했고. 그런데 요즘은 아니에요, 다들 날이 서 있지. 왜 그럴까, 이 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변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더 힘들 거 같아요. 시선들이 차가우니까, 그래서 만나자고 했어요. 이런 나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힘들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가끔 이렇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맛 나잖아요."


언니 저는요, 언니 말을 듣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렸어요. 혐오의 시대. 편한 것만 찾는 시대. 혐오는 편해요. 나와 다르면 그저 비난하고 삿대질하면 편하거든요. 똑바로 보고 아파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고, 이런 게 어려운 거죠. 사람들은 힘들고 아픈 건 못하겠으니 편한 걸 찾다가 이렇게까지 된 거라고 생각해요.

언니, 있잖아요. 언니의 말이 참 따스했어요. 이런 게 연대일까요.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위로가 되어요. 가끔은 평범해지고 싶거든요. 나도 친구들처럼 별것 아닌 것으로 고민하고 아파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참사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살았을 텐데, 하고요.

우리 5월에 만나기로 했잖아요, 꼭 따끈한 우동 한 사발 하자고. 저 그날 기다려도 되나요? 기다리고 있어요. 언니를 만나는 날, 얼음장같이 차가운 제 마음도 조금은 녹길 바라요.

다시 만나는 날을 고대하며, 초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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