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일본 '천황' 초청에 쐐기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 75] 일왕이 한국을 국빈으로 방문할 '자격'
▲ 2008년 4월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황궁에서 아키히토 일본 천황과 미치코 황후의 영접을 받은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김자동은 사회원로로서 권력의 반민족적 정책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그때마다 사회적 반향이 뜨겁게 나타났다. 이명박 정권이 한일관계를 풀겠다면서 '천황'을 초청하겠다고 나섰다. 2010년 1월이다. 이를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강한 어조로 기고문을 통해 '선결조건'을 제시했다. <일본 '천황'의 한국방문에 앞서>란 글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일본 '천황'을 한국으로 초청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하다. 그는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두 나라 사이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극동정책에 한때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인물은 주일 미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었다. 그는 마땅히 전범자로 처단받아야 할 '천황' 히로히토를 무죄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스가모 형무소에 있던 기시 노부스케 같은 전범자들을 전부 석방하여 군국주의자들의 집단인 자민당을 부동의 제1당으로 만들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국의 신임을 얻고자 정성을 바치고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바라는 미국의 뜻을 따르려 했던 것도 분명하다.
6.25 때 미국이 참전해 대한민국을 도운 것으로 하여 미국을 무조건 따라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올해 6.25 60주년이 되는 마당에도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면, 미국이 약 100년 전 체결한 한·미 우호조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영국과 더불어 일본의 한국 병탄을 부추기고 앞장서서 정당화시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을사늑약 당시 그 합법성에 회의적인 국가도 있었으나 미국이 맨 먼저 주한 공사관을 영사관으로 대치했다는 것쯤은 알아둬야 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참가자가 6개국이다. 미·중·러는 6.25 당사국으로서 참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무슨 자격인가? 우리 옛 지배자의 자격으로 참여한 것인가? 수십만의 우리 동포를 전쟁터 및 노예노동으로 강제 동원했던 일본이 6자회담에서 몇 명의 일본인이 '납치된 문제'로 회담에 걸림돌까지 되려고 하니 참으로 몰염치의 극치이다. 앞으로 남북한 문제를 토의하는 회담에서 일본은 배제시켜야 된다고 나는 믿는다.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은 일본에 묻혀 있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유해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했다. 세 분을 모시며 묏자리는 넷을 만들었다. 안중근 의사를 그곳에 모실 생각이었다.
김양 보훈처장이 일왕 초청의 전제조건으로 안 의사 장지에 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는 것을 보도를 통하여 알게 됐다. 백범의 뜻을 받드는 행동으로 보인다. 자민당과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으로 보이는 현 일본 정부가 그런 정도의 성의라도 보이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일왕이 한국을 국빈으로 방문할 자격이 생기지는 않는다. 한·일의 과거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기본조약'이 체결된 후에야 일왕의 한국 방문이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만의 소견은 아닐 것이다.
주석
1> <경향신문>, 2010년 1월 15일.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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