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진짜 미안해" 영도 등굣길 참사 현장에 빼곡한 편지
부산 스쿨존서 10살 황예서양 숨져... "왜 사고 못 막았나" 닷새째 추모 계속
▲ 지난 4월 28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 초등학교 등굣길에 1.7t짜리 원통형 화물이 굴러와 10살 아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일 참사 현장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추모의 글. ⓒ 김보성
▲ 28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 초등학교 등굣길에 1.5t짜리 원통형 화물이 굴러와 어린이 1명이 숨지고 어린이와 어른 등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등굣길로 굴러온 화물 모습. 2023.4.28 ⓒ 연합뉴스
1.7톤짜리 원통형 어망실이 도로를 굴러 내려와 초등학교 등굣길을 덮친 사고 현장. 벽면엔 이번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난 10살 고 황예서양을 기억하는 친구들의 편지가 빼곡히 적혔다. 포스트잇에 하트 표시를 그린 한 친구는 "항상 밝게 웃어줘서 고마웠어"라며 잊고 싶지 않은 예서양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거긴 어떠니? (중략) 너무 쓸쓸하고 속상해.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 곧 있으면 생일인데. 선물로 식빵 조명 사달라고 하던 너였는데. 미안해 예서야.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그때 학교 가기 전에 너를 붙잡을 걸..."
이번 참사는 지난 4월 28일 오전 8시 22분 A초등학교 주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발생했다. B 어망 제조업체가 작업하던 대형 어망실이 지게차에서 떨어져 100여 m를 굴러 내려갔고, 현장을 지나던 4명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3명이 다치고, 예서양이 목숨을 잃었다.
어른들은 사고를 낸 이들을 대신해 고개를 숙였다. 말로만 스쿨존일 뿐 안전한 등하굣길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커다란 종이에 가장 많이 적힌 문장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었다.
영도에 살고 있다는 23살 대학생은 "너무 무서웠겠다고, 미안하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라며 슬픔을 나타냈다. 그는 거듭 "어른들의 부주의로 아까운, 예쁜 생을 이렇게 지게 한 게 한없이 미안하다"라고 모두를 대표해 사과했다.
등굣길에서 참변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추모의 발걸음도 계속됐다. 다시 사고 현장을 찾은 영도구 주민들은 곳곳에 놓인 국화와 과자 등을 보며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바로 옆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박아무개(70)씨는 "그날 창문 바깥에서 와장창 큰소리가 나길래 베란다로 나가보니 이번 사고였다"며 "왜 사고를 막지 못한 건지 너무나 답답하다"라고 울먹였다.
▲ 지난 4월 28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 초등학교 등굣길에 1.7t짜리 원통형 화물이 굴러와 10살 아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일 참사 현장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추모의 글. ⓒ 김보성
▲ 지난 4월 28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 초등학교 등굣길에 1.7t짜리 원통형 화물이 굴러와 10살 아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일 참사 현장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추모의 글. ⓒ 김보성
예서양과 같은 초등학교에 아이가 다니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침울한 학내 분위기를 전했다. 김아무개씨(45)는 "교장 선생님이 방송으로 이번 사고에 대해 공개적으로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고, (반 분위기도) 너무나 조용하다"라고 설명했다.
'명백한 인재가 아니냐'는 쓴소리도 던졌다. 지난달 6일 하윤수 부산교육감이 A학교 인근에서 통학로 안전 확보를 위한 선포식까지 열었는데 한 달도 안 돼 사고가 났단 비판이다. 김씨는 "이후에 달라진 게 무엇이었느냐"라며 제대로 된 해결책을 촉구했다.
안전불감증 비판에 경찰과 부산시, 교육청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경찰은 사고 당시 주정차 금지구역에서 작업이 이루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B업체 대표를 입건해 업무상과실치사·건설기계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조사를 하고 있다. 이에 더해 2일에는 스쿨존 집중적 안전활동 등의 추가 예방책도 내놨다.
지자체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등굣길 안전실태 전수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져선 안 된단 생각으로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어린이보호구역 관련) 교육청, 구·군과 협의해 위험성이 없는지 다시 한번 다 점검해 그에 따른 조치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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