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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다시 사라진 컨트롤타워, 무너진 국민안전

[오마이뉴스·포럼 사의재 공동기획⑧-국민안전] 이태원 참사로 159명 잃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등록|2023.05.12 06:55 수정|2023.05.12 13:19
<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전 영역에서 윤석열 정부를 집중진단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세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여덟 번째로 국민안전입니다. [편집자말]

▲ 2022년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내외국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권우성


윤석열 정부의 안전정책은 평가할 만한 것이 없다. 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전은 금세 재앙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되기도 전에 이태원 참사라는 끔찍한 재앙이 닥쳤다. 서울 한복판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압사로 인해 159명이 목숨을 잃는 초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비서실 산하) 국정상황실은 대통령 참모조직이지 대한민국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국민안전, 나아가 국가 안위를 책임지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만천하에 고백한 것이다.

다시 10년 전으로

그때도 그랬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의 도가니에 빠져 있을 때였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컨트롤이 되지 않는 법이다. 재난 컨트롤이란 재난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조직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재난은 어느 한두 부처가 해결할 수 없다. 시간적 여유도 없다. 말 그대로 초비상 상황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면 누가 컨트롤한단 말인가? 컨트롤타워가 컨트롤타워를 부정할 때 국민안전은 무너지는 법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MERS)에도 국민안전은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는 다시 국민안전은 국가의 책임이며 국가재난관리 컨트롤센터는 청와대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국가위기관리체계를 재정비했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해마다 커다란 피해를 냈던 대형산불은 역대급으로 조기에 진화되었고, 피해도 극히 미미했다. 국가위기관리체제의 성공적인 복원과 정비는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정국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가까스로 국민안전 컨트롤타워가 되살아 난 것이다.

그런데 다시 컨트롤타워가 스스로 컨트롤타워임을 부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안전은 1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책임지지 않는 참담함

안전은 책임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선임자가 책임을 짐으로써 후임자는 그 직위와 직책에 따르는 안전을 기본 책무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안전은 사고와 참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한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은 물론, 재난관리주관기관인 안전행정부를 이끄는 이상민 장관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 중에 있다.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으며 용산경찰서장 등 꼬리만 잘려나간 모양새다.

책임 회피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정부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안전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는 사회는 결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책임지지 않는 관료,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 책임지지 않는 정부는 국민안전을 후퇴시키는 암적 존재나 마찬가지다. 참담한 일이다.

사과조차 하지 않는 답답함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이상민 장관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탄핵심판사건 1차 변론기일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과는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받았다고 느껴야 사과가 된다. 위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진정어린 사과와 위로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재난안전 주무 장관인 이상민 장관도, 단 한 번도 유가족이나 국민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법적인 책임과 별개로 사과는 또 다른 책임이다. 정무직에 있는 고위 관료나 정치인이라면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은 참사 앞에서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더 잘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껴안는 것이 도리이자 책무이다. 사과는 상처를 치유하고,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사회를 더욱 따뜻하고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정부와 정치가 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분열과 적개심과 변명과 회피의 정치를 버리고, 사과와 위로와 통합과 책임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실 이전, 그리고 사라진 국민안전 컨트롤타워

21세기에 위험이 대형화, 복합화, 집적화, 고도화되는 초위험사회로 접어들면서 전 세계는 국민생명과 국가 안위를 지키기 위한 국민안전 컨트롤타워를 새롭게 정비하거나 강화했다.

우리나라도 위험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한 참여정부에서 청와대에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함으로써 국민안전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열흘 전에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계기로 국가위기대응체제를 일원화하고 국가재난관리 체계를 새롭게 구축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사스(SARS)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우리나라는 사스 청정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국가위기관리센터는 해체됐고, 국가위기 컨트롤센터가 사라졌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이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 무려 8시간 35분이나 걸렸다. 국가위기관리체계가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가위기나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곤욕을 치렀고, 그때마다 국가위기관리센터 조직과 기능을 찔끔찔끔 복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어정쩡한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그래서 당시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용산으로 이전계획을 발표했다.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국가위기관리센터에 대해서만큼은 갑론을박이 아니라 대다수가 염려하고 우려했다. 우호적인 보수언론마저도 '위기관리 축소한 MB정부의 오판을 답습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정도였다. 모두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진심(?) 어린 조언이자 경고였지만, 윤석열 정부는 '문제 없다'며 일언지하에 무시했다.

초대형 참사를 겪고도 대통령실은 여전히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다는 것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윤 정부의 '개념 없음'에 대한 무서움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일 근로자 3명이 사고로 사망한 경기 안양시의 한 도로포장 공사장을 긴급 방문, 둘러보고 있다. ⓒ 윤석열 캠프 제공


지난 1년간 국민안전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을 살펴보면, 윤 정부의 '개념 없음'에 당혹감을 감추기 어렵다. 그 전조는 이미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나타났다. 2021년 12월 2일, 작업자 3명이 도로포장용 건설기계인 롤러에 깔려 숨진 현장을 방문하여 "간단한 실수 하나가 엄청난 비참한 일을 초래했다"고 말해, 산재가 노동자 실수라는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전형적인 피해자 전가 논리이자 20~30년 전의 낡은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 120시간' 노동시간 발언에 이어 '주 69시간'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분야 국정과제 첫 번째 어젠다가 '산재예방강화'다. 산재는 장시간 노동시간과 불가분이 관계에 있으며, 특히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과로사는 장시간 노동이 직접적인 원인이자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현재 정부에서 과로사를 판단할 때 노동시간 기준은 1주일 평균 60시간이다. 이쯤 되면 개념이 없는 건지 막무가내인 건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4년, 각자도생이냐 연대냐 국민안전의 갈림길

국가 안전을 포기하면 국민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전은 개인이 각자도생으로 해결할 수 없다. 초위험사회에서는 개인에게 '조심하라'는 말이 의미가 없어진다.

KTX 탈 때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서 안전해지지 않는다. 지하철도 마찬가지고, 비행기나 배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각자도생으로 내몰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각자도생으로 내몰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위험사회에서는 내 이웃이 안전할 때 비로소 나도, 내 가족도 안전해진다. 가장 취약한 자가 안전할 때, 우리 사회는 가장 안전해진다. 가장 취약한 자와 가장 큰 피해자가 연대할 때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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