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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에 폭언, 성희롱까지... 매일 불안한 알바생 부모입니다

사회 초년생이 맞닥뜨리는 폭력성에 참담한 마음이 드네요

등록|2023.05.13 14:52 수정|2023.05.13 14:52
"저, 회원님. 사적인 대화를 좀 자제해 주시겠어요? 운동에 방해된다는 다른 분들의 민원이 있어서요."

헬스장에서 시끄럽게 수다 중인 중년회원 두 명에게 작은 아이가 한 말이다. 아이는 주말 동안 헬스장 카운터에서 일을 보며 틈틈이 청소와 회원 응대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 헬스장에서 일하는 작은 애는 종종 시끄러운 회원들에게 주의를 주는데, 봉변당할까 봐 늘 긴장한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 Unsplash


일은 할 만하지만 유독 긴장되는 때가 바로 저런 순간이라고 한다. 자기보다 곱절, 세 곱절 나이 많은 분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라고. 주저하면서도 일단 공손히 입을 뗀다고 한다.

사회초년생이 처음 마주하는 세상의 폭력성

아직까지 저 말 때문에 작은 애가 봉변당했단 말은 듣지 못했지만 어미로서 늘 노심초사다. 손님의 부당한 행태로 인한 알바생들의 피해 사례들이 어찌나 자주 들리는지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카페테라스의 흡연을 제지하는 알바생에게 중년 남성 둘의 위협적 대응이 담긴 영상은 충격이었다. 겁에 질린 듯한 그 알바생의 심리가 그대로 읽히는 듯 이입되었고, 언제든 내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였다.
 

▲ 최근 카페테라스의 흡연을 제지하는 알바생에게?중년 남성 둘의 위협적 대응이 담긴 영상 한 장면. ⓒ JTBC 화면 캡처


작은 아이와 그 동갑내기 동창들은 작년 수능 이후로 각종 아르바이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카페와 식당, 키즈카페와 프랜차이즈 버거집, 영화관 등 다양한 식음료 판매시설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비와 학비 마련에 일조한다는 기쁨으로 일하고 있다. 그 와중에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손님들이라고 한다.

"야, 이거 치워" 같은 반말이나 하대는 빈번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반품이나 환불을 폭언으로 우기기, 심지어 은근슬쩍 성희롱 발언도 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실제로 2016년 알바생의 85.7%, 2018년에는 81%가, 2020년에는 75.5%, 작년에 다시 증가하여 79.2%가 알바 중 고객이나 고용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한다.

그나마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고 위안하기에는 여전히 심각한 수치이다. 또한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어서 놀랍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세상이 이리도 폭력적이라는 게 기성세대로서 어찌나 부끄러운지. 이제 갓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고충과 괴로움에 가슴이 아프다. 더 우려되는 바는 비하, 조롱, 무시를 그저 인내로 버텨내는 사회 초년생의 미래다.

어린아이들이 각 집의 부모따라 배우듯, 사회초년생들은 기성세대의 거울일 터이다. 기성세대의 비매너와 폭력에 어쩔 수 없이 반복적으로 노출된 이들이 중년, 노년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

과연 그들은 잘못된 풍토를 극복하고 온전한 시민의식을 지닌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어른들은 질서도, 매너도 못 지키면서 초년생들에게만 배려해라, 친절해라 요구하며 참기만을 강요하는 게 얼마나 장기적으로 사회의 온기를 갉아먹는 일인지 자명할 뿐이다.

우리는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산다 

갑질의 악순환만 대대로 물려줄 것 같은 불안 속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 요즘엔 갑질에 맞서기도 한다는 반가운 일화들이 작은 애 주변에서 왕왕 들리기 때문이다. 반말에는 반말로 응수한다거나 무례한 말을 그대로 반사해 되묻기도 하고 지적해서 알려주기도 한단다.

물론 흔치 않지만, 불합리함에 주눅 들지 않는 청년들의 용기와 당당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여 홀로 대응이 버거울 때는 경찰서에 신고할 수 있음도 기억하기를!

우연인지 필연인지, 채널을 돌리다 잠시 눈길을 빼앗긴 '뽀뽀뽀'라는 유아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노래가 나왔다.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자는 내용의 동물행진곡인데, 율동을 익히느라 거듭 반복되고 있었다. 친절은 유치원 때부터 강조해서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왜 우리는 그 기본을 못해 아직도 세상이 이 모양인지...

세상이라 하니 거창한 듯 하지만 사실 세상이란 매일매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다. 세상이 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길 바란다면 오늘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상식적으로 대하면 된다. 세상이 보다 따뜻하기를 바란다면 만나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된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오늘 우리는 다음 세대까지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들임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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