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웬디와 파힘, 한국과 프랑스가 약자를 대하는 법
[김성호의 씨네만세 485] 영화 <파힘>과 김웬디군의 사연
파힘 모하마드(Fahim Mohammad)란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체스선수로, 2012년 12세 이하 전국 체스 챔피언에 오르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체스뿐 아니라 다른 일로도 유명세를 얻었는데, 직접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다름 아닌 파힘, 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문득 이 영화가 떠오른 건 뉴스 한 토막을 본 뒤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13살 소년, 하지만 외국인 이민자의 자식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김웬디군의 사연이었다. 중학교 씨름선수로 활약하는 웬디는 2년 동안 7개 대회에 출전해 네 차례나 우승을 차지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선수들이 꿈꾸는 최고의 대회인 전국소년체전에 나가려 했으나 출전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아든 것이다.
내막은 이러하다. 전국소년체전엔 대한민국 사람만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웬디는 한국에서 태어나 열세 살이 되었지만 한국인이 아니다. 부모가 콩고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출생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문에 웬디는 성인이 될 때까지 무국적자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 결국 소년체전에도 참가할 수 없다.
체스 대회 출전을 거부 당한 소년
영화 <파힘>은 파힘(아사드 아메드 분)이 전국 체스 챔피언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여느 스포츠 영화처럼 열심히 훈련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여러 강자를 뛰어넘는 과정은, 그러나 영화의 일부일 뿐이다. 영화의 중추를 이루는 건 그가 대회에 나가기까지의 이야기다. 말 그대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파힘 역시 웬디처럼 대회 출전을 거부당했다. 파힘의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 반정부시위를 하다 생명에 위험을 느끼고 프랑스까지 떠나온 파힘의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난민 인정이 되지 않아 임시보호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신세다. 정부는 아빠만 추방하고 파힘은 위탁가정에 보내겠다고 하고, 이들은 헤어지지 않기 위해 불법체류자들이 모여 사는 난민촌에까지 들어가기에 이른다.
집도 없고 체류증도 없는 그가 체스에 재능이 있다 해서 어쩌겠는가. 프랑스라고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2세 이하 체스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는 파힘의 선수등록을 받아주지 않으려 한다. 파힘의 스승 자비에(제라르 드빠르디유 분)가 프랑스 체스협회 회장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그 짧은 면담의 끝에서 파힘의 선수등록이 이뤄지게 되고, 그는 마침내 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자네는 관대함을 배웠는가
자비에는 옛 친구이자 협회장을 만나 그의 조상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노 페로니, 알프스를 건너왔지. 파시즘을 피해, 3형제와 걸어서. 1923년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때 판자촌에 들어갔고 아무도 신경 안 썼어. 이태리 것들이라고 무시했지. 그러다 한 석수가 견습생으로 받아줬고, 악착같이 일했어. 석수의 딸과 결혼해 애들도 낳았고 손주도 보고 학교도 다 보냈지. 하지만 학교에서도 관대함은 못 배웠나보군. 기회를 주게."
집도 없고 체류증도 없는 불법체류자 소년이 프랑스 12세 이하 체스 챔피언에 등극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주니어 체스 챔피언 자리에까지 오르고, 프랑스 체스계의 선수로 활약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영화는 그저 성공이며 극복의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파힘>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얼핏 관대한 것처럼 여겨지는 프랑스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하며,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대단한 악당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저보다 못한 이에게 저지르는 온갖 못난 행동들을 낯설게 드러내어 우리 가운데 스며든 악덕을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한국은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인가
프랑스 체스학원에서 파힘을 눈여겨 보아온 마틸드(이사벨 낭티 분)가 총리가 나온 TV프로그램에 전화를 해서 질문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그녀는 말한다.
"방글라데시 체스 선수가 있어요. 집도 없고 체류증도 없는데, 방금 U12 프랑스 체스 챔피언이 됐지요. 아버지와 길에서 지내다 추방당하게 됐는데... 제 질문은 '프랑스는 진정한 인권 보장 국가인가, 아니면 그냥 인권을 선포하기만 한 나라인가' 그겁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 바깥으로는 나가보지 못한 웬디가 소년체전에 출전할 수 없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또 참가불허 결정을 내린 소년체전 관계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한국은 인권 보장 국가인가, 아니면 그저 인권을 이야기하기만 하는 나라인가 하고.
문득 이 영화가 떠오른 건 뉴스 한 토막을 본 뒤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13살 소년, 하지만 외국인 이민자의 자식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김웬디군의 사연이었다. 중학교 씨름선수로 활약하는 웬디는 2년 동안 7개 대회에 출전해 네 차례나 우승을 차지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선수들이 꿈꾸는 최고의 대회인 전국소년체전에 나가려 했으나 출전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아든 것이다.
▲ 파힘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체스 대회 출전을 거부 당한 소년
영화 <파힘>은 파힘(아사드 아메드 분)이 전국 체스 챔피언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여느 스포츠 영화처럼 열심히 훈련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여러 강자를 뛰어넘는 과정은, 그러나 영화의 일부일 뿐이다. 영화의 중추를 이루는 건 그가 대회에 나가기까지의 이야기다. 말 그대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파힘 역시 웬디처럼 대회 출전을 거부당했다. 파힘의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 반정부시위를 하다 생명에 위험을 느끼고 프랑스까지 떠나온 파힘의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난민 인정이 되지 않아 임시보호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신세다. 정부는 아빠만 추방하고 파힘은 위탁가정에 보내겠다고 하고, 이들은 헤어지지 않기 위해 불법체류자들이 모여 사는 난민촌에까지 들어가기에 이른다.
집도 없고 체류증도 없는 그가 체스에 재능이 있다 해서 어쩌겠는가. 프랑스라고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2세 이하 체스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는 파힘의 선수등록을 받아주지 않으려 한다. 파힘의 스승 자비에(제라르 드빠르디유 분)가 프랑스 체스협회 회장을 만나 설득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그 짧은 면담의 끝에서 파힘의 선수등록이 이뤄지게 되고, 그는 마침내 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 파힘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자네는 관대함을 배웠는가
자비에는 옛 친구이자 협회장을 만나 그의 조상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노 페로니, 알프스를 건너왔지. 파시즘을 피해, 3형제와 걸어서. 1923년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때 판자촌에 들어갔고 아무도 신경 안 썼어. 이태리 것들이라고 무시했지. 그러다 한 석수가 견습생으로 받아줬고, 악착같이 일했어. 석수의 딸과 결혼해 애들도 낳았고 손주도 보고 학교도 다 보냈지. 하지만 학교에서도 관대함은 못 배웠나보군. 기회를 주게."
집도 없고 체류증도 없는 불법체류자 소년이 프랑스 12세 이하 체스 챔피언에 등극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주니어 체스 챔피언 자리에까지 오르고, 프랑스 체스계의 선수로 활약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영화는 그저 성공이며 극복의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파힘>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얼핏 관대한 것처럼 여겨지는 프랑스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하며,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대단한 악당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저보다 못한 이에게 저지르는 온갖 못난 행동들을 낯설게 드러내어 우리 가운데 스며든 악덕을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 파힘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한국은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인가
프랑스 체스학원에서 파힘을 눈여겨 보아온 마틸드(이사벨 낭티 분)가 총리가 나온 TV프로그램에 전화를 해서 질문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그녀는 말한다.
"방글라데시 체스 선수가 있어요. 집도 없고 체류증도 없는데, 방금 U12 프랑스 체스 챔피언이 됐지요. 아버지와 길에서 지내다 추방당하게 됐는데... 제 질문은 '프랑스는 진정한 인권 보장 국가인가, 아니면 그냥 인권을 선포하기만 한 나라인가' 그겁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 바깥으로는 나가보지 못한 웬디가 소년체전에 출전할 수 없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또 참가불허 결정을 내린 소년체전 관계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한국은 인권 보장 국가인가, 아니면 그저 인권을 이야기하기만 하는 나라인가 하고.
▲ 김웬디뉴스 장면 캡처 ⓒ JTBC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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