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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 180명, 평균 연령 70세... 배움에는 끝이 없지

만학도의 요람, 임실군 오수면 인화초중고등학교

등록|2023.05.12 15:47 수정|2023.05.12 16:02

▲ 학교 강당 시 낭송 행사 ⓒ 이완우


11일 오전 전북 임실군 오수면 둔남천의 맑은 시냇가에 옆에 있는 인화초중고등학교(교장 김태수) 강당에는 전교생들이 모여서 시 낭송을 듣는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5월 가정의 달에 전북재능시낭송협회에서 이 학교를 방문하여 '푸른 달 찾아가는 시 낭송' 행사를 진행했다.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70세이다. 이 학교는 만학도의 배움터인 평생교육시설로 학력인정 학교이다. 4년제 초등학교, 2년제 중학교와 2년제 고등학교가 자매처럼 함께 있으며 전체 8학급으로 재학생이 180여 명인 튼실한 학교다.

오수 분지 길목에 터전을 잡은 학교
 

▲ 인화초중고등학교 전경 ⓒ 이완우


학교 운동장과 교실에서 학생인 할머니들의 모습은 어린 소녀들처럼 밝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바람이 세상을 바꾸던 수십 년 전까지도 이 땅의 딸들은 학교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피워내지 못한 배움을 향한 미련과 학교에 가고 싶은 소망을 평생 시들지 않게 오롯이 간직해 두었다가, 이제 소담스레 피워내고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듯 가족에 헌신하며 살아온 학생들이다. 이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듯 돌아와 머릿결에 서리가 내린 학생이 되었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몸의 기력도 젊은 시절 같지 않지만, 지금 학교 다니는 게 고맙고 행복하다.

이 학교는 전북 동부 산악권인 임실군, 남원시, 순창군과 장수군에서 많이 다닌다. 이 학교가 위치한 오수면은 조선 시대부터 호남 좌도에서 으뜸인 오수역참이 있던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 학교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역사와 문화가 튼실하게 뿌리내린 오수 분지의 길목에 터전을 잡았다. 이 학교는 이 지역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나이테로 자란 커다란 나무와 같다.

이 학교 옆의 냇가를 따라 흔적만 찾을 수 있는 통영별로 옛길이 있다. 고려 말에 이성계 장군의 부대가 왜구를 무찌르러 남원과 운봉 고원으로 행진하던 길이며,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나라와 민족을 구하러 백의종군하며 걷던 길이다.
 

▲ 다양한 길의 교량 풍경 ⓒ 이완우


학교 앞 냇가 건너에 있는 구홧들(국화들)은 가을 들녘에 들국화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곳은 고전소설 춘향전의 의미 있는 무대이다. 이 지역이 현재는 임실군에 속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남원부의 둔덕방의 들머리였다. 이 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오면서 춘향이의 소식을 알아보려 농부들과 대화를 나눈 곳이며, 한양의 이 도령에게 춘향의 편지를 전하러 가는 방자를 만났다. 암행어사 신분을 숨긴 채 거지로 분장한 이 도령이 춘향의 편지를 읽은 곳이다.

이 구홧들에서 냇가 쪽에는 구한말에 나라를 구하러 신명을 바친 전 해산 의병장의 생가 터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홍길동은 허균의 고전 소설 속 인물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 때에 기록을 보면 실존 인물 홍길동이 있었다. 활빈당 활동을 전개한 홍길동이 조정에서 체포하려 하자, 전남 장성에서 이곳까지 왔다가 지리산 방향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조선시대 남원부 둔덕방의 삼계강사는 앞서가는 학문과 배움의 요람이었다. 이 삼계강사가 오수보통학교의 바탕이 되었었다. 오수보통학교의 학생들이 기미년(1919년) 3월에 보통학교의 어린 학생들로서는 전국 최초로 독립 만세를 힘차게 외쳤었다. 이 학교는 가을 물처럼 정신이 반듯한 이곳에 우뚝하다.

이 지역 땅 이름 '오수'는 주인을 구한 오수개 설화로 천년 넘게 의로움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오수개 설화가 이 지역에 전승되는 것도 이 지역의 반듯한 땅 기운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노봉마을, 둔덕방, 매안방 등 이곳 오수 분지의 역사와 문화를 모델로 한 작품이 최명희의 '혼불'이다. 최명희의 '혼불'은 남원과 임실이 만나는 지역 이곳 오수 분지의 정체성으로 꽃 피었다.

이제 할머니들에게 배움의 요람이 돼주는 학교
 

▲ 교실 수업 ⓒ 이완우


이 학교에서 바라보면 둔남천 냇가를 건너는 여러 형태의 교량과 길들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통영별로 흔적으로 남은 옛길. 근대문화 유산이 가능한 신작로. 교통량이 많았던 17번 예전 국도와 현재의 개량된 국도. 옛 전라선 철도 노선이었던 농로. 고속열차가 운행되는 현재의 철도. 터널과 고가도로로 산악 지대를 거침없이 지나가는 고속도로. 이렇게 7가지 길들이 나란히 풍경을 이룬다. 마치 이 학교 학생들의 다양한 인생행로를 보는 듯하다.

이 학교 화단에는 여름이면 학생들이 심어놓은 봉숭아꽃이 피어난다. 고향 집 장독대 옆에 핀 봉숭아꽃 같은 정서가 이 학교답다. 이 학교에 80세에 가까운 선생님은 봉숭아꽃이 피면 꽃밭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다. 그는 전주에서 오수역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오수역에서 학교까지 냇가 제방의 농로 3km를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온다. 천천히 구르는 자전거 바퀴는 고향 같은 추억이며 고추잠자리 날갯짓처럼 평화로운 이 학교의 정체성이다.

이날 학생들은 오랜만에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시 낭송 행사를 경청하였다. 어느 시인의 시 낭송을 들으며 학생들은 하얀 교복 입고 학교에 가는 친구를 보며 골목에 숨어서 울먹이던 자신을 회상하였다. 학생들은 하얀 뿌리 깊게 땅에 내리고 겨울을 이겨낸 푸른 냉이가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이 학교가 있는 이곳에 예전에는 오수서초등학교가 있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어린 초등학교 학생들의 맑은 마음이 구슬이 되어 학교 운동장에서 반짝이는 듯하다. 어린 초등학생들이 공부하며 뛰놀던 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할머니들의 무지개 같은 배움의 요람이 되었다. 이 학교의 상징 꽃 목련은 봄에 교실 앞 화단에 화사하게 핀다. 아니 이 학교에는 강당 벽화에 항상 목련이 피어있다. 구홧들에 목련꽃 핀다, 학교 가자.
 

▲ 학교 강당 벽화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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